골프장부터 아트센터까지…한국이 사랑하는 안도 다다오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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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정준모의 아트 노스탤지어“건물은 있되 건축은 없다”는 자조적인 말이 한국건축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나라 살림이나 국민들의 형편이 조금 핀 요즘에는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한국의 건축은 건축가보다는 구청이나 군청 앞 건축사무소가 좌우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규모가 제법 큰 건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도시를 구성하는 대다수 건물은 설계자 즉 건축가의 이름을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누가 어떻게 설계했는지 모르는 건물이 대부분이다.
규모가 있는 건물의 경우 대부분 종합설계사무소 즉 설계회사의 이름이 전면에 나타날 뿐 도대체 설계과정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건물은 있지만 건축가는 없는 비상식적인 상황이 연출된다. 건축 이후 50년이 지나면 근대 문화재 지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50년 뒤 문화재로 지정되더라도 그 건물을 누가 설계했는지 서류상으로 남아있는 공식적인 기록은 없어 설계자 즉 건축가의 이름은 없는 건물이 되고 말 것이다.
간혹 설계와 상관없이 오직 인허가 과정에서 참여한 건축사 이름이 문화재 대장에 설계자처럼 기재되는 경우도 나올 것이다. 우리나라에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을 수상한 건축가 왜 안 나오냐고 볼 멘 소리를 하는 이들이 많다. 그 배경는 우리나라 건축법이나 건축관례상 건축가의 이름보다는 건설사의 이름이 앞에 나서는 관행이 있다.
유명 아파트 이름에 건축가 이름이 들어간 경우보다 지역 불문하고 대형 건설사 이름이 앞선 아파트가 대부분인 것이 한국건축계의 실상을 반증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건물은 있되 건축과 건축가가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따라서 한국의 건축가들은 건물에 가려 있다. 이런 형편에 프리츠커상을 논하기보다는 건축가들의 이름을 찾아주는 일이 급선무가 아닐까.
사실 한국의 건축가보다 한국에 더 잘 알려진 건축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Ando Tadao, 1941~ )가 아닐까.LG아트센터서울 방문한 안도 다다오
그리고 그 이유는 그가 국내에 설계한 건물에는 항상 그의 이름이 붙어 다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일반국민들에게 조금 알려진 김중업(金重業·1922~1988)이나 김수근(金壽根·1931~1986)의 경우도 이름은 기억하지만 그들이 설계한 대표적인 건축물은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도 다다오는 경우가 다르다.
안도 다다오가 대한민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88년 당시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지금의 양주시에 토탈야외미술관을 설립 운영한 토탈디자인(대표 문신규, 건축가)이 발행하던 잡지 <꾸밈>에 일본 고베대학에서 건축학 박사과정에 있던 이영일(1959~ )이 안도 다다오에 관한 글을 연재한 것이 처음이다.안도_타다오-정준모
그리고 토탈디자인은 이 연재물을 모아 1988년 1월 토탈 북스의 10번째 책으로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란 제호의 작은 책을 발간했다.
그리고 안도 다다오의 전시가 1998년 6월12일부터 7월29일까지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 제2전시실에서 열렸다.
이것이 한국 최초의 안도 다다오 전시로 전시명칭은 「안도 다다오;건축, 그 창조의 과정」전이었다.
그리고 전시 협의를 위해 1996년 6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을 방문했던 그는 현장답사 후 인근 경기도 의왕시 계원조형예술학교 우경예술관에서 「가능성을 찾아서」란 주제로 자신이 지향하는 건축철학을 설파했다.
그의 1996년 한국방문은 전시 준비를 위한 것으로 1988년에 이은 두번째 방문이었다.
1998년 안도 다다오의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이후 처음으로 개최한 건축 전시였다.
이미 1995년 건축계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지만 아직 안도 다다오의 신화가 완성되기 전이라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일반 관람객보다는 건축가 또는 건축 관련 종사자와 특히 건축 학도들이 전시장을 많이 찾았다.
물론 건축 전시가 거의 없었던 당시 상황도 한몫했지만.
아무튼 개막식날 열린 안도 다다오의 강연회는 450석 내외의 국립현대미술관 대강당에 약 700여명의 청중이 몰렸고 2시간 남짓의 특별강연이 시간이 지난 후에도 질문과 사인을 받으려는 대학생들이 줄을 잇는 바람에 그가 뒷문으로 빠져나가야 할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당시 언론은 ‘현대 건축의 살아있는 신화’로 그를 지칭했지만 실은 1998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이후 한국에서도 안도 다다오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고 이후 그의 활약이 세계를 종횡으로 누비면서 이어져 오늘의 명성을 일구어냈다.
따라서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여러 가지 면에서 그의 신화가 기승전을 넘어 결을 향해 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시는 그의 건축의 키워드인 ‘빛’과 ‘여백’을 구현하는 건축을 보여주었다.
단순하고 분명한 인공적인 주변과의 조화와 이를 통해 자아내는 ‘평안한 경건함’을 통해 자연과 건축을 하나로 만든다.
여기에 자연광을 건축물 내부로 끌어들여 마치 회화에서 어둠과 밝음의 극적인 대비를 의미하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처럼 긴장된 숭고함을 이끌어 내는 동시에 공간을 확장시킨 그의 대표작들 「물의 교회」(1988), 「빛의 교회」(1989), 「물의 절」(1991),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문을 연 「베네세 하우스」(1992), 고베의 「로코 하우징 II」(1993), 오사카의 「산토리 미술관」(1994), 「히메지의 문학관」(1996) 등의 드로잉 44점, 스케치 29점, 사진 104점, 모형 18점 등 총 195점이 전시되었다.
이때 전시를 담당했던 필자도 그의 주 무대인 일본 관서지방은 물론 일본 전역에 산재된 그의 건축작품을 돌아보기 위해 조사연구출장을 다녀왔다.
이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건축의 큰 특징인 “비어있는 공간”이었다.
이 빈 여백의 공간은 환경과 주변을 연결해 하나의 자연으로 만들어내는 사유의 공간이자 자연과 인공을 통합해 건축을 또 다른 하나의 자연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의 장소라는 점이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건축주들의 열린 자세였다.
건축가를 믿고 위임하고 일임하는 건축주의 태도는 일본 건축이 세계적인 건축으로 자리매김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사실 국립현대미술관이 안도 다다오전을 준비한 것은 한국에도 건축미술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제기하는 차원이었다.
여기에 건축전을 통해 건축이 예술의 영역이라는 사회적 인식의 기반을 다지려는 생각도 있었고, 미술관에 건축분야 큐레이터를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1995년부터 시행한 <올해의 작가>전에 건축가를 선정해 건축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보려는 생각도 한몫했다.
또 1999년 건축의 해를 맞아 국립현대미술관과 한국건축가 협회가 공동으로 추진한 <한국건축 100년전>을 위한 테스트 베드로서의 기능도 있었다.
한 번도 건축 전시를 해 본 적 없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안도 다다오 전시를 통해 그가 직접 디자인한 공간연출과 전시기법을 함께 구현하면서 건축전시의 기본을 수업한 셈이다.
이후 <한국건축 100년전>에 이어 그 여세를 몰아 2002년 올해의 작가로 건축가 승효상(1952~ )을 선정해 큰 문제없이 전시를 무난하게 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전시 이후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이 국내에 세워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해외건축가 중에 한국에 가장 많은 건축물을 완성한 이는 안도 다다오일 것이다.
전시가 끝나고 10여 년이 흐른 2008년 제주 서귀포 성산읍의 휘닉스 제주섭지코지에는 유리로 세운 ‘글라스 하우스’와 ‘유민미술관’이 완공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안도의 건축물이다. 두 건물중 하나는 원래 명상센터로 설계한 것으로 지니어스 로사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하지만 2017년부터 홍진기(1917~1986)가 수집한 아르누보시절 유리 공예품 컬렉션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되면서 유민미술관이란 이름을 얻었다.
2008년 같은 해 한화그룹도 자사의 인재경영원을 경기도 가평에 새웠다.
자연에 순응하는 겸손함으로 주변의 숲과 자연환경과 부드럽게 융화를 이룬 작품이다.
건축이 자연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서양 고대 건축에서 등장하는 열주가 건축의 존재감을 더한다.
그리고 4년뒤인 2012년 서귀포 안덕면에 본태박물관이 완공되었다.
‘본래의 형태’를 의미하는 ‘본태’는 산방산과 형제섬이 내다보이는 한라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데 특유의 건물의 존재를 뒤로 넣어 찾아가는 발견하는 재미를 준다.
특히 한국 전통 기와 담장을 잘 살린 배치도 독창적이다.
억지스런 한옥, 한국적인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노출콘크리트에 녹아드는 기와가 건축자체가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라면 기와 담장은 전통과 현재가 조화를 이루는 형국이다.
그리고 2023년 3월 31일부터 안도 다다오의 전시가 열리는 원주의 뮤지엄 산(SAN)이 2013년 원주 구룡산 자락에 들어섰다.
‘뮤지엄 산(SAN)’은 ‘뫼 산(山)’이 아니라 ‘자연(Nature)’과 ‘예술(Art)’이 있는 ‘공간(Space)’을 의미하는 세 단어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특히 생전에 미술품 수집에 열정을 지녔던 이인희(1929~2019) 전 한솔그룹 고문의 컬렉션과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1943~ )의 스카이스페이스(Skyspace) 등 빛을 통해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하게 되는 우주주의적인 작품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나오시마의 지중미술관에서 합을 맞춘 두 사람의 힘과 예술이 자아내는 맛과 멋은 새로움을 넘어 우주를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1년 뒤인 2014년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용은리의 마임비전 빌리지 내에 마음의 교회(Church of the Heart)도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다.
숲과 나무 사이를 따라 올라가는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에 자리한 3개 동으로 이루어진 마음의 교회는 마치 광물의 결정체처럼 다면체의 조형물처럼 각각 자리한다.
외장은 매끄러운 철판을 사용하여 각각 프로그램에 따라 용도를 달리하는 공간이다.
철판지붕 아래 유리와 콘크리트의 이중구조로 만들어진 예배당과 유리와 철판의 삼각형 지붕이 만들어내는 터널 형태의 건축물로 마치 터널처럼 자연을 관통하며 자연속으로 흡수되는 공간이다.
지면에서 이어지는 매끈한 철판으로 마감된 지붕 아래 유리로 만든 벽이 자연과 하나가 되는 라이브러리도 새로운 공간을 체험하게 한다.
2014년 동국제강은 자신들이 세운 퍼블릭 골프장의 클럽하우스를 안도 다다오에게 부탁했다.
그가 설계한 최초의 골프장 클럽하우스로 원초적이며 기하학적으로 가장 완전한 형태인 원을 모티프로 한 건축물은 바깥 면이 둥그스름한 곡선으로 된 두 개의 지붕이 겹쳐 있는 형태다.
코스 쪽에서 바라보면 자연을 향해 열려 있는 모양새로 그 모습이 마치 ‘돛’을 연상케 한다.
안도는 작가메모를 통해 ‘바람을 듬뿍 머금은 돛’과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날개’를 모티프로 삼았다고 한다.
여기에 동국제강의 ‘럭스틸(Luxteel)’을 건축 콘셉트에 맞게 개발해 외관에 적용함으로서 새로운 안도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럭스틸이 적용된 부산 스타벅스 화명점 전경. /동국제강 제공
2015년 교육문화사업을 하는 재능교육은 ‘재능문화센터(JCC)’를 건립하면서 안도를 건축가로 택했다.
2개 동의 노출 콘크리트 건물로 이루어진 재능문화센터는 177석의 콘서트홀과 미술관을 갖춘 JCC아트센터와 연구동과 연수원을 겸한 JCC크리에이티브센터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22년 개관한 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LG아트센터도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다.
건축면적 1만 5000㎡에 1300석 규모의 대극장인 LG SIGNATURE홀과 365석 규모의 다목적 공연장 U+ 스테이지로 이루어진 아트센터는 구본무(1945~2018) 전 LG 회장이 전 세계 건축가를 물색한 끝에 안도를 낙점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는 빛의 흐름은 움직일 수 없는 건축물에 움직임을 부여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건물의 외관은 시간을 머금는다.
그리고 1998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이후 25년 만에 안도 다다오 전시가 원주 구룡산 자락의 뮤지엄 산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기존 건축에 도전한 열정을 역사를 조망하는 전시로 2017년 일본 도쿄를 출발해 파리, 밀라노, 상하이, 베이징과 타이페이를 거쳐 일곱 번째 한국에 오는 국제 순회전이다.
<안도 다다오-도전> (TADAO ANDO:ENDEAVORS)전은 4월 1일 개막해 7월 30일까지 열릴 예정인데 안도 다다오의 작품 약 250여 점이 출품됐다. 이번 전시는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가 자신이 설계한 건물에서 자신의 건축여정을 집대성해서 보여주는 전시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안도 다다오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우리 국민들에게 매우 유의미한 전시 임에 틀림없다. 이번 전시가 우리나라 건축가들이 자신의 이름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