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죽이려 한 이들까지 품은 '티토 황제의 자비'

[arte] 이경재의 사운드 오브 오페라
전 세계 인구가 2억 명 정도였던 서기 1세기, 백만 명의 인구와 문화, 유통의 중심에 로마가 있었다.

백만의 인구 중 삼십만은 노예였다. 이들은 유럽은 물론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잡혀 온 거대한 ‘도시의 소비재’였다. 이들이 각자의 언어를 쓰는 덕분에 로마는 세상의 언어들이 넘쳐나는 도시이기도 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는 이들을 포함하는 로마 거주자들을 한데 모아 지도자를 경외하고 따르게 하는 수단이 필요했다. 그 중 하나가 로마 중심부에 건설한 콜로세움이었다.


콜로세움은 폭정으로 유명했던 황제 네로의 화려한 궁전 자리를 허물고 지어졌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건설을 시작해 그 아들 티투스가 완공시켰다. 세기를 초월하는 초대형 건물을 짓다보니 건축 기간만 8년이 걸렸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귀족은 물론, 일반 시민과 어린아이, 여성에 이르기까지 로마에 거주하는 누구나 이 건물에서 검투사들의 싸움, 해상 전투, 기이한 맹수들과의 싸움 등 다양한 볼거리를 즐길 수 있었다.

로마 시민들의 각양각색의 언어는 이곳 콜로세움의 함성 속에서 소멸돼갔다. 로마 황제는 그렇게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 위엄으로 다스렸다.

아버지 황제 베스파시아누스는 콜로세움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지만, 아들 티투스는 이곳을 정치적 목적의 중요 도구로 쓸 수 있었다.피를 봐야 하는 콜로세움의 이벤트는 잔인했지만, 시대의 선정을 시민에게 베풀고 나누는 모습으로 티투스 황제는 자애롭고 인기 있는 군주로 이름을 높였다.


티투스 황제 재임 기간, 폐허가 된 폼페이로 유명한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수천명이 매장됐다. 이듬해에는 로마에 큰 화재가 나고 역병이 도는 등 재앙이 연속되었다.

하지만 이후 재건과 민심 회복에 힘쓴 티투스 황제는 역사에서 성군으로 기록이 된다. 티투스 황제는 서기 81년, 짧은 재임 기간을 뒤로하고 젊은 나이에 서거한다. 그로부터 1500여 년이 지난 뒤 티투스 황제는 모차르트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 작품이 ‘티토 황제의 자비’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791년 모차르트에게 관심을 주었던 오스트리아 황제 요제프 2세가 세상을 떠나고 레오폴트 2세가 다음 황제가 되자, 보헤미아 즉, 지금의 프라하에서 대관식이 기획되었다.

이 지역의 극장장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모차르트에게 작품을 의뢰해 성군의 덕을 기리는 오페라를 만들기로 한다.

새로운 관심이 필요했던 모차르트로서도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을 받은 셈이다.

사실 당시로부터 50여 년 전, 극작가 메타스타시오가 티투스 황제의 이야기를 다룬 대본 ‘티토 황제의 자비’를 집필했고, 이 대본을 근거로 많은 작곡가들이 곡을 붙이기도 했다.

유년 시절부터 이 이야기와 곡들을 접했던 모차르트는 마촐라라는 대본가와 함께 바로크 시대의 작품을 새롭게 구성해 자신의 음악으로 풀어나갔다.

성군 티토(티투스) 황제는 유대의 공주와 결혼하기를 원했으나, 로마 혈통이 아니라는 대신들의 의견을 존중해 결혼을 포기한다. 티토는 자신의 친구이자 충신, 세스토의 여동생 세르빌리아와 결혼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세르빌리아 곁엔 이미 정혼을 약속한 안니오가 있었다. 안니오는 황제의 결혼이라면 자신이 물러서겠다고 하지만, 적극적 여성인 세르빌리아는 황제 앞에 나아가 자신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밝힌다.

황제는 진지하고 솔직한 마음을 칭찬하며 자신의 결혼 계획을 철회한다. 그리고 이전 황제의 딸, 비텔리아와의 결혼을 생각한다.

이런 티토 황제의 의중을 모른 채, 지난 세월 왕좌를 빼앗겼다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던 비텔리아는 황제의 심복 세스토를 꾀어내 황제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실행에 옮긴다.
사진출처 =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천만다행으로 황제를 시해하려던 계획은 실패로 끝나고, 세스토의 단독 범행으로 밝혀진다.

세스토는 자신의 마음을 허락한 비텔리아를 감싸는 동시에 황제와의 우애에 대한 죄책감에 휩싸여 모든 죄가 자신에게 있다며 홀로 짐을 진다.

이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비텔리아가 콜로세움으로 나아가 사실은 본인의 음모였다고 황제에게 자백한다. 진실과 참회의 마음 앞에 티토 황제는 다시 한번 이들을 용서하고 하나로 맺어준다. 시민들은 이를 찬양하며 막이 내린다.
Glyndebourne 유튜브 영상 캡처
로마 백성을 측은지심으로 보살핀 황제 티투스 이야기를 담은 오페라 ‘티토 황제의 자비’는 진지한 내용의 전형적인 오페라 세리아다. ‘피가로의 결혼’, ‘돈조반니’, ‘마술피리’ 등 희극적 요소가 가미된 모차르트 오페라에 비해선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콜로세움이 결국 로마 시민을 통합해내듯, 20세기 들어 관객들에게 또다시 사랑받는 작품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