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은 노예해방에 관심 없었다

[arte] 최윤경의 탐나는 책

김유석 지음
(틈새책들, 2023)
출처: Unsplash
크리스티와 함께 세계 경매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소더비. 왕실의 보석, 유명인의 애장품, 고흐나 칸딘스키의 미술작품 등 수천억을 호가하는 물건들이 거래되는 이곳은 일반인에게는 ‘부의 상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거래 목록 사이에서 책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얼마나 대단한 책이기에?’라는 의문이 먼저 떠오를 테다. 한 땀 한 땀 손으로 쓰고 그린 15세기 기도서라면? 조금 납득할 수도 있겠다. 불에 타고 그을린 노트나 편지 한 장이라면?

<소더비가 사랑한 책들>은 소더비 경매에 등장한 책과 고문서에 얽힌 역사적 배경과 뒷이야기를 추적해가는 책이다. 전쟁터에도 책을 한 수레 가져갈 만큼 독서광이었던 나폴레옹의 친필 메모가 가득한 이집트 기행서나,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원작과 그 모델에 얽힌 이야기는 영화 이상으로 생생하고 흥미롭다. 풍부한 이미지 자료가 재미를 더해주는데, 그 이미지를 찾고 고르는 대부분은 편집자의 수고임을 알기에 더욱 마음이 간다.역사를 공부하고 영국에 거주 중인 저자의 글에는 현장성과 전문성이 잘 배합되어 있다. 고서와 고문서에 얽힌 인물과 사건으로 호기심을 자극하고, 또 그에 얽혀 있는 역사를 유쾌하고 매끄럽게 풀어가 계속 다음 페이지가 궁금하게 만든다.

책은 6억 원 가까운 금액에 낙찰된 아이작 뉴턴의 불탄 노트 이야기에 근대 과학의 시작점으로 추앙받는 뉴턴이 매우 진지한 연금술사였다는 반전의 사실을 연결시킨다. 링컨의 자필 서명이 담긴 217만 달러짜리 ‘노예 해방 선언문’에서는 링컨이 실은 진정한 노예 해방에나 인종 갈등 해결에는 별 관심이 없었음을 폭로(?)하기도 한다. 막연하고 불투명하게 알고 있던 역사 지식이 뜻밖의 매개체를 거치며 선명해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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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그 자체로도 가치 있지만 누가 소유했었느냐, 어떤 일을 겪었느냐에 따라 가치가 더해지거나 덜해지기도 한다. 저자는 보석과 귀중품 사이에 책과 문서가 나란히 놓이게 된 이유에 대해 “인류가 기록을 남기고 보존하는 문명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쓰고 생각하고 널리 알리는 일을 소중히 여기고, 가치를 부여할 줄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소더비 경매에서 비싼 가격에 팔린 고서와 고문서 역시 그 자체로 훌륭한 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가치는 책에 얽힌 이야기가 역사적·문화적 유산으로 남은 데 있지 않을까.

국내 대학 도서관에 보관되던 희귀도서나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중국 고서들이 단지 ‘이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기되어 중고책방으로 넘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책뿐 아니라 모든 것의 가치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폐기의 이유가 ‘역사가 없다’, ‘이야기가 없다’가 아니라 ‘돈이 안 된다’라면 그건 너무 부끄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