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세 박물관'이 문을 닫으면 벌어지는 일

[arte] 최승도의 파리통신 - 오르세와 음악 산책(Promenades munsicales)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

요즘 전시를 보러 갈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죠?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이라는 뜻을 가진 신조어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시에 대한 입소문이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빠르게 퍼지는 만큼, 계속해서 새로운 전시를 구상하는 박물관과 미술관도 이 단어를 사소한 잡음으로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런 열풍에 우려를 표합니다. 작품들이 가진 의도와 의미에 집중하는 등 문화 예술적 소통 코드에서 벗어나 전시들이 시각적 자극성과 화제 몰이에만 치우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사진 찍기 좋은 공간’을 보는 것과 작가들의 생각이 시각화된 예술 작품들이 만들어낸 공간을 경험하는 것은 분명 다르니까요.

확실한 점은 이런 트렌드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본질에는 ‘작가의 작품을 관람하는 일방적 소통’ 위주의 고전적 전시에서 ‘작품의 의도와 해석에 얽매이지 않고 관객들의 주관적 경험을 중시’하는 새로운 전시 문화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그렇다면 공간과 작품의 배치를 새롭게 탈바꿈시키기 어려운,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박물관과 미술관은 어떤 방법으로 우리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까요?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에서 열렸던 문화의 밤, ‘Promenades musicales’(음악 산책)을 소개하면서 이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평소 오후 6시에 문을 닫는 오르세 미술관은 매주 목요일에 한해 밤 10시까지 야간 개관을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평소와 다른 분위기의 박물관을 감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단순히 늦은 저녁까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 외에 가끔은 이 시간에만 진행되는 특별한 행사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지난 2월 23일 목요일 저녁의 오르세 미술관은 평소와 달랐습니다.

평소보다 많은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중앙 복도를 오가며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고, 1층부터 6층까지 전시실 여기저기에선 성악가들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오르세 미술관은 관내 작품들이 시각적 틀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람들의 청각도 자극할 수 있도록 2018년 로이오몽(Royaumont) 재단과 힘을 합쳐 ‘Orsay-Royaumont 아카데미’를 창설합니다.

아카데미는 젊은 성악가와 피아니스트를 직접 양성하고, 이들이 오르세에 배치된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음악적 자극으로 확대시켜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단순히 음악가들을 초빙해 공연하는 것을 넘어 직접 음악가들을 양성한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지 않나요?

성악가들은 미술관 내 아무 곳에서나 공연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인이 직접 선별한 회화 작품 앞에 서서 그 작품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개인적인 해석, 그래서 어떤 곡을 떠올리게 되었는지 관객들과 소통합니다.

성악가만의 공연이 아닙니다.

피아니스트도 작품에서 받은 인상을 곡의 어느 부분에 담아냈는지, 어떻게 곡을 변주했는지 보여주며 열정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렇게 선별된 각 작품 앞에서 매번 20여 분의 공연을 진행합니다.

이런 공연들은 단순히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공연에서 작품에 대한 해석을 들은 관람객은 작품 본연의 모습에 더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공연이 모두 끝나도 피아노를 바로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둠으로써 남은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 피아노 뒤에 걸려있는 작품에 더 호기심을 갖도록 합니다.

어떤 공연이 펼쳐졌는지 자연스레 상상하게 되는 거죠.

한 번 공연을 경험하고 나면 단순히 ‘피아노가 놓여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작품이 더 특별하게 보이게 됩니다.

작품들이 그대로 전시된 박물관에서 음악가들의 향연, 어떻게 보셨나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오르세는 화제성이 강한 다른 미술관들처럼 트렌디한 컬러로 공간을 물들이거나 관람객들이 직접 참여하는 경험을 제공하진 않습니다.

지만 저는 오르세가 자신의 품위를 지키는 동시에 오르세 다운 방식으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고 느꼈습니다.

만약 젊은 층에게 어필하기 위해 다른 미술관들의 전략을 그대로 가져와 오르세를 물들였다면 오르세가 가진 분위기와 멀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관람객들에게 새 경험을 선사하기 위한 오르세만의 ‘문화’는 이런 눈에 보이는 노력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처음 오르세 미술관을 견학하면 놀라게 되는 장면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조각상 앞에 앉아 스케치를 하는 모습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십여 명이 작품 앞에서 한 시간 넘게 그림을 그리는 바람에 관람객들의 동선이 방해받을 수 있지만, 아무도 제지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소규모 그룹으로 그림 수업이 진행되는 곳도 있습니다. 마치 미술관 전체가 거대한 문화센터가 된 모습이에요.

오르세 미술관은 더 이상 작품을 관람하는 공간에 머물지 않습니다. 오르세만의 방식으로 작품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