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가면 늘 마주치는 이 장비, 설마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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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 CT' 개발기업 토모큐브 창업자 박용근 KAIST 교수정기 건강검진 뿐 아니라 정형외과 등 병원 외래, 응급실 등을 방문하면 기본으로 찍는 X선 촬영. 이 X선 해상도를 전자현미경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원천기술이 '수학의 힘'으로 개발됐다.
X레이를 전자현미경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KAIST 물리학과 박용근 교수와 이겨레 박사후 연구원은 포항가속기연구소 임준 수석연구원과 함께 이런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고 13일 밝혔다. 박 교수는 '세포 CT' 개발 스타트업 토모큐브, 레이저 기반 초소형 수질측정기 개발 스타트업 더웨이브톡을 창업한 의광학 분야 전문가다.X선 현미경은 물질을 손상시키지 않고 투과하기 때문에 나노미터(㎚)단위로 해상도를 끌어올리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반도체, 2차전지 등 핵심 산업에서 광범위하게 쓸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런 투과성은 광학계를 설계할 때 상당한 골칫거리다. 대부분 매질을 통과해버리기 때문에 렌즈와 거울 같은 기본적 광학 부품을 사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X선 나노 현미경은 굴절 렌즈가 없고, 렌즈 대용으로 동심원 회절판을 쓴다.
동심원 회절판의 해상도는 회절판 나노구조의 품질이 결정한다. 고해상도 동심원 회절판은 제작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가까스로 제작한다고 해도 사용 과정에서 쉽게 깨져버리는 문제가 있었다.연구팀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X선 나노 렌즈 구조를 고안했다. 이 렌즈는 입사되는 빛을 무작위로 회절시켜 얼핏 입사 빛과 전혀 관계 없어 보이는 무작위 회절 패턴을 생성한다.
연구팀은 역설적으로 이런 무작위 회절 패턴 속에서 시료의 고해상도 정보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규명했다. 그리고 이 정보를 추출해 14 ㎚(코로나 바이러스의 7분의 1 크기) 수준의 해상도 영상을 얻는 데 성공했다.
무작위 회절의 수학적 성질을 활용한 영상 기법은 박용근 교수와 이겨레 연구원이 2016년 학계에 처음 제안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실었다. 이후 7년간 후속 연구를 통해 이번 논문이 나왔다.KAIST 관계자는 "동심원 회절판 제작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던 X선 현미경 해상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원천 기술"이라며 "이 기술과 차세대 X선 광원 등을 결합하면 해상도가 전자현미경 수준인 1㎚에 근접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세종과학펠로십 사업과 한국연구재단 리더연구 지원을 받은 이번 연구결과는 광학 분야 글로벌 학술지 '라이트:사이언스 앤 어플리케이션'에 실렸다.
이번 연구를 지도한 박 교수는 광학을 이용해 의학, 생명과학 문제를 푸는 의광학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다. 그가 창업한 스타트업 토모큐브는 인체를 촬영하는 CT의 세포 버전인 3차원 홀로단층촬영현미경(HT)을 개발해 미국 하버드대 의대, 매사추세츠공대(MIT) 등에 납품했다. CT가 수많은 X-선 이미지를 3차원으로 구성하듯, HT는 세포 안을 레이저로 찍어 3차원 영상을 만들어낸다.그의 또 다른 창업 기업 더웨이브톡도 이런 레이저 기술을 토대로 세균 및 박테리아 체외 진단 장비 및 수질 측정 기기를 개발했다. 상수도관 노후로 인한 수질 문제를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유럽, 동남아, 미국 등에서 더웨이브톡의 기술을 주목하고 있다. LG전자, SK 등이 이 회사에 지분을 투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