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잭팟' 터졌다…해외서 인기 폭발한 60살 한국 라면 [하수정의 티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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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판매 '2조원 시대' 연 K라면올해로 탄생 60주년을 맞은 한국 라면이 신(新) 전성기를 맞고 있다. 연간 해외 판매 2조원 시대를 열며 'K푸드'의 선봉에 올라섰다. 농심, 삼양식품 등 라면업체들은 '전세계 식품 격전지'인 미국의 주요 유통 채널을 잇따라 뚫고 있어, 올해 이후에도 K라면의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1963년 국내 라면 탄생 후 60년
꿀꿀이죽 대신 허기 채우던 한 그릇
이젠 150개국 세계인 입맛 사로잡아
해외 판매 4년새 두배 늘어
식품격전지 미국서 판매 급증
스위스 융프라우·아프리카도 인기
12일 한국경제신문이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 팔도 풀무원 하림 등 6개 라면제조사와 이들 업체의 해외법인 실적을 집계한 결과, 지난해 해외에서 판매된 라면 규모는 총 2조3288억원에 달했다. 수출과 해외 생산분 판매를 합친 수치다.이는 2021년 1조8471억원보다 26.0% 증가한 규모로 사상 처음으로 2조원을 돌파했다. 4년 전인 2018년(1조1252억원)에 비해선 두 배(106.9%)로 늘었다.
한국 라면의 해외 판매 급증은 단순히 K팝, K무비 등 한류 열풍에 편승한 일시적 현상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중국, 일본 등 라면 강국과 대적할 수 있는 국내외 생산기지를 확충하고 수 십년간 제품 개발을 하면서 품질을 높인 결과다.
해외 유력 유통 채널들이 국내 라면업체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도 라면 판매에 가속도를 붙이는 요인 중 하나다. 농심은 지난 달 미국 창고형 매장인 샘스클럽의 600개 전점에 신라면 등 제품을 입점한 것으로 확인됐다. 삼양식품은 이달 중 미국 코스트코 일부 매장에 불닭볶음면 입점을 확정짓고 연내 560개 전점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같은 K라면의 선전은 올 들어 수출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등 무역적자로 비상등이 켜진 상황에서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올 1분기 라면 수출액은 2억800만달러(2752억원)로 농수산식품 품목 중 최대 실적을 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1963년 서민의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탄생한 라면이 60년 후 전세계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는 한 끼 식사이자,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발전했다"고 분석했다.
○K라면의 영토 확장...150개국 입맛 사로잡다
스위스 최고 관광 명소 융프라우와 마테호른의 전망대에선 관광객들이 입김을 불며 후루룩 먹는 것이 있다. 바로 농심 신라면컵. 개당 약 8프랑(약 1만2000원)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전망대 별미’로 소문나면서 연간 20만개 이상 팔리고 있다.구독자 1620만명의 미국 유명 ‘먹방 유튜버’ 매트 스토니는 삼양 불닭볶음면 15개를 먹는 영상을 찍었다. 이 영상의 조회수는 무려 1억4000회를 넘겨 그가 올린 427개 영상 중 최고 조회수를 얻었다.
한국 라면이 전 세계 곳곳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1963년 ‘꿀꿀이죽’ 대신 허기를 채우기 위해 국내 도입된 라면은 이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K푸드’의 대표주자로 변신하는 기적을 일으키고 있다.
○농심의 거듭된 도전
관세청에 따르면 국내 라면 수출국은 지난해 기준 143개국에 이른다. 2019년 136개국이었던 라면 수출국은 코로나19 기간에도 감비아, 세르비아, 사이프리스, 가이아나 등 한국 음식 불모지까지 영토를 넓혔다.국내 라면업체들은 1970년대부터 해외시장을 두드려왔다. 초기엔 실적이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수 십년간 이어져온 기업인들의 도전 정신이 지금의 결실을 불렀다. 여기에 세계적으로 흥행한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게임’ 등 한국 컨텐츠를 통해 라면이 소개되며 ‘K라면’은 그야말로 ‘성장 모멘텀’을 갖게 됐다.
농심 창업주인 고(故) 신춘호 회장은 사업 초기부터 ‘글로벌’을 외친 기업인 중 한 명이다. 그는 “해외 어느 국가를 가도 신라면이 보이도록 해야 한다”며 해외 진출을 독려했다.농심은 1996년 중국 상하이에 해외 첫 공장을 세우고 2005년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도 생산기지를 구축하며 글로벌 공략에 가속도를 냈다.
고(故) 신 회장의 장남인 신동원 회장은 아버지의 꿈을 넘어 “일본 도요스이산을 제치고 미국 시장에서 1등이 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전세계 식품 격전지인 미국 시장에서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일본의 장벽은 낮아지고, 농심의 점유율은 오르고 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미국 라면 시장에서 농심의 점유율은 2021년 기준 25.2%로 일본 도요스이산(47.7%)에 이어 2위다. 3위인 일본 닛신의 점유율은 17.6%로 2017년 농심에게 2위 자리를 뺏긴 뒤 점차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삼양식품 살린 불닭볶음면
글로벌 시장에서 젊은 계층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삼양식품 불닭볶음면의 성공도 몇 명의 유튜버의 홍보로 어쩌다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80년대 후반에 터진 우지 파동과 1997년 외환위기로 화의까지 겪었던 삼양식품을 살리기 위해 전 직원들이 신제품 개발에 매달렸다.2011년 전중윤 삼양식품 창업주의 며느리인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불닭볶음면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세계 모든 지역의 고추를 혼합해 맛봐야했던 연구원 일부는 위에 탈이 나 약을 복용하면서까지 최적의 소스 비율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불닭볶음면을 수출하기 위해 김 부회장은 1년 중 서너달은 해외 출장을 다니며 현지 거래선 확보에 직접 나섰다. 삼양식품은 연내 코스트코와 크로거, 알버슨 등 미국 전역 입점을 성사시켜 현지 매출을 지금보다 두배 늘리는 것을 내부 목표로 내걸었다.
○오뚜기·팔도 ‘선전’..하림도 수출 개시
해외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은 농심과 삼양식품 뿐 만이 아니다. 내수에 강한 오뚜기 역시 해외 라면 판매가 뛰고 있다. 2018년 베트남 현지에 라면 공장을 세우고 베트남 뿐 아니라 홍콩, 대만 등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러시아에선 hy(옛 한국야쿠르트)의 지주사인 팔도가 만든 용기면 ‘팔도 도시락’이 ‘국민 라면’ 대우를 받고 있다. 지난 1991년 러시아에 진출한 팔도 도시락은 현지 용기면 시장에서 6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후발주자인 하림도 지난해 말레이시아, 홍콩, 싱가포르, 대만, 필리핀 등 아시아 5개국에 ‘더미식 장인라면’ 수출을 개시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