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나랏돈 빗장 푸는 국가재정법 개정안도 짬짜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위원회가 어제 통과시킨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대상의 면제 기준 완화에 따른 부작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총사업비 500억원, 국가재정지원 300억원’인 면제 기준을 각각 1000억원, 500억원으로 올리면 다수 재정사업이 졸속 추진된다. 예타 면제 기준 완화의 보완책으로 논의해온 재정준칙의 법제화가 쏙 빠졌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국가채무가 1000조원을 넘어선 심각한 상황에서 그 자체로 시급한 게 재정준칙의 명문화다.

예타 제도를 도입한 게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이니 커진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조정할 필요성이 없지 않다. 재정 건전성을 강화하자는 취지라고 하더라도 조사하는 데만 6개월씩 걸리기도 해 각 부처나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선 규제마냥 불편한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효율적, 성과지향적, 투명한 국가재정 운용과 건전 재정의 기틀을 확립하고 재정의 공공성을 증진한다’는 국가재정법 취지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런 예타의 힘을 빼면서 함께 입법화를 논의하던 재정준칙은 팽개친 것이다.

묘한 것은 매사 대립하는 여야가 이런 데서는 손발이 잘 맞는다는 점이다. 소위 통과도 여야 만장일치였다. 개정안을 보면 예타 완화 대상을 사회간접자본(SOC)과 연구개발(R&D)로 명시하기는 했다. 하지만 SOC 범위를 도로 철도 도시철도 항만 공항 댐 상수도 하천시설로 적시해 1년 뒤인 총선이 다가올수록 어떤 선심 경쟁이 벌어질지 뻔하다. 이달부터 정부의 예산 시즌이 시작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야가 ‘현역 의원 프리미엄’으로 소위 지역 개발 공약을 마음 놓고 하기 위한 ‘사전 짬짜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걸 야합이라고 하지 않으면 무엇이 야합인가. 가뜩이나 수출 급감, 내수 악화로 세수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그런데도 무책임한 국회는 건전재정은 뒷전인 채 예타 기능을 죽이려 든다. 안 그래도 신공항특별법 등 특별법 남발로 예타 무력화가 너무 잦았다. 17일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