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주 69시간제라는 '유령'

정승국 고려대 노동대학원 객원교수
한국에 ‘근로시간 69시간제’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69시간제란 개정안이 허용하는 주 최대 근로시간을 산출한 것인데, 어느 나라도 한 주에 허용하는 최대 근로시간으로 제도 이름을 짓지 않는다.

이 개정안처럼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1주 이상으로 확장해 평균치로 관리하는 제도는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 이 제도가 유럽 전역으로 확대된 계기는 1993년도 유럽 근로시간 지침이었다. 이 지침은 하루 근로시간 상한으로 연속 휴식 11시간, 4개월 평균 주 48시간을 내세웠다. 지침은 왜 4개월 평균 주 48시간이라는 규제를 도입했을까? 48시간 상한은 ‘1주 최대 노동시간 48시간’이라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따라 노동자의 건강권과 휴식권을 보호하기 위해서고, 이를 4개월 평균으로 한 것은 1주 단위로는 예측할 수 없는 수요 변동 등 기업의 경영 사정을 반영하기 위해서였다. 이 지침은 회원국이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사항이다. 유럽 각국의 근로시간제도는 이 지침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유럽의 근로시간제도는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1유형은 ‘연속 휴식 11시간, 4주 평균 48시간’이라는 유럽 근로시간 지침을 따른다. 연속 휴식 11시간을 적용하면 하루 상한은 13시간이다. 그러면 1주에 가능한 근로시간은 78시간(13시간×6일)이다. 유럽에서는 1유형이 다수를 차지한다.

2유형은 1유형에 ‘주 절대적 상한 60시간’을 덧붙인다. 오스트리아, 덴마크, 네덜란드 등이 이에 해당한다. 3유형은 1유형에 연장근로 총량규제를 덧붙인 형태다. 스웨덴은 4주, 한 달(상한 50시간), 1년 단위의 연장근로 총량규제를, 노르웨이도 1주, 4주 및 1년 단위의 총량규제를 한다.

4유형은 하루 근로시간 상한을 연속 휴식 11시간보다 더 빠듯하게 규제한다. 독일이 근로시간 상한을 하루 10시간, 1주는 60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24주 동안 하루평균 8시간도 지켜야 한다.위 유형 분류에 따르면 한국의 근로시간 개정안은 스웨덴형에 가장 가깝다. 스웨덴은 기준근로시간 단체협약 규제 평균 39.8시간(우리나라 법정 근로시간 40시간), 11시간 휴식제(개정안에 반영), 4개월 평균 주 48시간(개정안은 월평균 주 52시간), 연장근로 총량규제 월 50시간(개정안은 월 52시간)이다.

물론 포괄임금제 오남용, 연차를 쓰기 어려운 기업 문화는 제도의 개혁과 상관없이 개선돼야 할 사항이다. 이번 개정안에 대해 근로시간이 불규칙적으로 되고, 근로자의 건강뿐 아니라 ‘일-생활 균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는 조치도 함께 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