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신고 잦던 인왕산…이번엔 진짜였다" 산불 진압 영웅들

종로소방서 대원들, 드론 날려 등산객 대피 도와
축구장 21개 규모 타버려…서울 대형산불 수십년 만
4월 2일 일요일 오전 11시 53분. 자하미술관 앞 서울 종로구 부암동 362-5 건물 화재 신고가 접수됐다. 점심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던 종로소방서 대원들은 출동 지령을 받고 나갈 채비를 했다.

화재 진압 25년 경력의 최진오(55) 종로소방서 진압1팀 대장은 이날도 여느 화재 신고 때와 다름없이 침착하게 준비했다. 개인 장비와 공기호흡기를 챙기고 소방차에 올랐다.

군부대와 청와대가 인근에 있어 화재에 민감한 부암동 일대

“인왕산 인근에 군부대와 청와대가 있어 평소에도 신고가 자주 들어왔었어요.” (최진오 대장)

그간 부암동 주민들은 분기에 한 번꼴로 종로소방서에 화재 신고하곤 했다. 열에 여덟은 신고자가 연기나 불빛을 화재로 오인한 경우였다. 그러나 이번엔 진짜였다. 출동 1분 후인 11시 59분, 최 대장은 남산관제센터로부터 “산불로 추정된다”는 내용의 무전을 받았다. 최 대장을 비롯한 진압 1팀 대원들은 공기호흡기를 벗었다. 산불 현장에서 공기호흡기를 쓰고 효율적으로 불을 진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불은 축구장 21개에 해당하는 임야 면적 15.2ha를 태웠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낙엽은 다 타고 없었다.

산불의 연소 확대를 최대한 지연시켜야 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초속 2.5m의 바람이 불었다. 체감상 초속 10m의 강풍이 불었다고 최 대장은 전했다. 연기가 바람을 타고 인왕산 6부 능선을 넘어 서대문 쪽으로 향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대원들은 지름 65mm인 소방호스 5개를 이었다. 그런데도 화마가 있는 곳까지 닿지 않았다. 호스를 나르는 몇몇 대원들은 돌길에서 미끄러지기도 했다. 40mm 수관을 추가로 두 번 더 연장해야 인왕산 자락에 물을 간신히 뿌릴 수 있었다. 연결한 호스의 총 길이는 600m가량이었다. 인왕산 바위를 타고 탄력을 받은 불은 북서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최 대장은 후발대 직원들에게 수관을 가져오라고 끊임없이 지시해야 했다.

불이 산등선을 타고 성덕사 약수터 등으로 넘어가면서 개미마을 쪽으로 옮겨갔다. 소방 당국은 낮 12시 51분 인근 소방서 장비와 인력을 총동원하는 대응 2단계를 발령했다.


하늘 위 소방관 '드론'도 투입

인왕산은 해발 338m로 높진 않지만 산세가 가파르다. 타포니(풍화로 파인 암석), 핵석(核石·풍화로 둥글어진 암석) 때문에 산 진입이 위험해 많은 대원들이 진화 작업에 애를 먹었다.

이날 현장엔 '드론'이 투입되기도 했다. 문성환(44) 종로소방서 구조1팀 대장은 드론을 띄워 화재 피해 현황과 방수 위치를 빠르게 확인하고자 했다. 구조 1팀 대원 두 명에게 산 밑자락에 남아 드론을 띄우라고 지시했다.

드론을 조종한 선혁(34) 구조1팀 대원은 암벽 등반 중이던 등산객 두 명을 발견했다. 이들은 기차바위에서 로프를 잡고 하강 중이었다. 카메라와 스피커가 장착된 소형 드론을 300m쯤 날렸다. 드론 스피커와 연결된 무선 마이크에 대고 산불이 났으니 대피해야 한다고 알렸다.
문 대장은 나머지 대원 4명을 데리고 기차바위 쪽으로 전속력으로 달렸다. 15분이면 오르는 익숙한 길이었다. 도착해보니 등산객 두 명은 이미 대피하고 없었다.잡히지 않을 것 같던 불은 오후 5시8분께 80% 가까이 잡혔다. 소방 당국도 대응 2단계를 해제했다.

부암동 주민센터 앞에는 소집된 긴급구조통제단은 일몰 전까지 주불 진압을 목표로 했다. 일몰 전에 철수하라는 지휘 본부의 지시에 따라 진압 1팀은 오후 7시30분께 소방서로 복귀했다.

다음 날 오후 1시 27분, 화재 발생 25시간 만에 인왕산 산불은 완전히 진압됐다. 그래도 작은 불씨가 큰불로 다시 번질 것에 대비해 종로소방서 진압팀과 구조팀은 3시간씩 교대로 불이 난 구역 순찰을 했다. 그러다 화요일 오후 4시쯤 전국에 비가 내렸다. 윤 대장은 "비가 이렇게 고마웠던 적은 없었다"며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2~3일 정돈 더 순찰을 이어 나갔을 것"이라고 전했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