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에 질린 손정의…알리바바 손 뗐다

소프트뱅크, 지분 대거 정리

중국 빅테크 규제로 주가 폭락
올들어 남은 72억弗어치 매각
마윈과 20년 우정도 사실상 끝
"펀드 손실 메우고 현금확보 주력"
사진=연합뉴스
손정의 회장(사진)이 이끄는 소프트뱅크그룹이 20년간 보유한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 주식을 대부분 매각했다. 중국 정부가 최근 몇년간 빅테크 기업을 강하게 규제한 데다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 시장의 수요 부진으로 알리바바 주가가 폭락한 탓이다. 소프트뱅크는 지난해 비전펀드 사업 부문에서도 엄청난 손실을 보면서 알리바바 지분 매각 등을 통한 현금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알리바바 지분 3.8%만 남겨

1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된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소프트뱅크는 올해 들어 ‘선불 선도계약(포워드 세일)’을 통해 알리바바 주식 72억달러(약 9조5450억원)어치를 매각했다. 이에 따라 소프트뱅크가 현재 보유 중인 알리바바 지분은 3.8%인 것으로 확인됐다. 소프트뱅크는 지난해에도 알리바바 지분을 23.7%에서 14.6%로 축소해 340억달러(약 45조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소프트뱅크는 상당한 손실을 감수하고 알리바바 지분을 매각했다. 금융정보 업체 워싱턴서비스에 따르면 소프트뱅크가 최근 14개월간 매도한 알리바바 주식의 평균 매각 금액은 주당 92달러다. 2020년 10월 기록한 최고치인 317달러에 비해 70%가량 감소한 수치다.

소프트뱅크가 손해를 보고도 지분 매각에 나선 것은 주력 사업인 비전펀드의 대규모 손실을 메워야 해서다. 비전펀드가 투자한 스타트업의 기업가치 하락에 따른 결과다. 소프트뱅크는 올 2월 초에 지난해 4분기 59억달러(약 7조60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으며, 손실의 대부분은 비전펀드가 차지한다고 발표했다.소프트뱅크는 “알리바바 지분 거래는 불확실한 사업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경영전략을) 방어 모드로 전환한 상황이 반영됐다”며 “유동성 확보로 금융 안정성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소프트뱅크의 지분 매각 소식이 전해지면서 알리바바 주가는 뉴욕 증시에서 5.93% 급락한 93.8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20년 인연 끊은 中 규제

손 회장의 소프트뱅크가 급성장한 것이 알리바바를 알아본 선구안 덕분이었다는 점에서도 이번 지분 매각은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알리바바 창업 초기인 2000년 이 회사에 2000만달러(약 265억원)를 투자했으며 이후 알리바바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2014년 알리바바가 뉴욕증시에 상장하자 기업가치가 3700배 이상 뛰었다. 손 회장은 당시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에 대해 “(알리바바는) 수익도 없었고 직원도 35~40명 수준이었다”며 “하지만 마윈은 눈빛이 굉장히 강렬한 데다 리더십과 카리스마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손 회장은 알리바바 투자 성공을 기반 삼아 2017년 1000억달러 규모의 비전펀드 1호를 결성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벤처캐피털(VC) 펀드였다. 손 회장은 이 펀드를 활용해 정보기술(IT) 기업에 투자했다. 비전펀드 1호 투자액의 50%는 중국 스타트업 주식으로 채웠다.하지만 소프트뱅크와 알리바바의 인연은 중국 당국의 빅테크 규제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2020년 10월 마윈이 중국 규제당국을 비판한 게 발단이 됐다. 이때부터 중국 당국은 자국 빅테크 규제를 강화했다. 알리바바의 핀테크 자회사인 앤트그룹 상장은 무기한 연기됐다. 이듬해 4월 알리바바는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역대 최대 규모인 182억위안(약 3조4744억원)의 과징금을 냈다. 과징금 탓에 알리바바는 7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작년 8월 손 회장은 실적발표회에서 “우울하다. 과거 큰 이익에 도취한 자신이 부끄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손 회장은 2020년 마윈이 소프트뱅크 이사회에서 물러난 뒤 알리바바 이사직에서 사임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