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게임 표절 잡을 때"…독창성 강조하는 게임사들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 신작 독창성 강조
"저작권 논란 안 빼질 것...베꼈다는 평가 안 받겠다"
엔씨소프트 소송으로 업계 저작권 준수 강화 움직임
법조계 "게임 저작권 인식 강화는 세계적 추세"
지난 12일 신작 '나이트크로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 자료=위메이드 유튜브 채널 캡처
엔씨소프트가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경쟁사에 소송을 걸면서 저작권을 바라보는 게임업계의 눈높이가 높아지고 있다.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나서서 신작 게임의 독창성을 강조하는 등 저작권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게임사가 안간힘을 쓰는 분위기다. 업계 내부에서도 저작권 준수에 대한 인식을 제고해야 할 때가 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메이드 "신작 수준, 지금까지 게임과 비교 안 돼"

지난 12일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는 2분기 미디어 간담회를 열고 오는 27일 출시 예정인 다중접속 역할수행 게임(MMORPG) ‘나이트크로우’에 대해 설명했다. 이 간담회에서 투자자들과 업계의 이목을 끈 부분은 장 대표가 이 게임의 독창성을 강조하는 대목이었다. 최근 불거진 업계 저작권 논란과 관련해 장 대표는 “저작권 논란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베꼈다는 평가를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일반론적으로 누군가가 각고의 노력으로 창의한 것을 쉽게 사용하는 건 부당하고 저작권은 보호돼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장 대표는 경쟁 MMORPG와의 차별성도 강조했다. 그는 “그래픽뿐 아니라 게임 전체적인 퀄리티(품질) 수준이 지금까지의 게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라며 “차별화된 게임 시스템인 ‘글라이더’를 전략적 요소로 쓰는 등 기존 MMORPG의 문법을 더 개선(업그레이드)했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는 “게임 저작권 소송에 있어서 전세계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게 우리”라며 저작권 관련 분쟁이 발생할 경우 능숙히 대응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지난달 MMOPRG ‘프라시아 전기’를 출시한 넥슨도 게임 시스템 상의 독창성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리니지의 아버지'의 회사가 리니지 제작사에 소송 당해

업계에선 위메이드를 필두로 한 게임사들이 저작권 보호와 독창성을 강조하는 데에는 엔씨소프트의 저작권 소송이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5일 엔씨소프트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카카오게임즈, 엑스엘게임즈 등에 대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두 업체가 제작한 게임인 아키에이지 워가 엔씨소프트의 모바일 게임인 ‘리니지2M’의 콘텐츠와 시스템을 다수 모방했다”는 게 엔씨소프트의 주장이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2M의 고유 시스템, 직업 획득 과정 및 합성 시스템, 유저인터페이스(UI) 등의 유사성을 문제로 지적했다.

엑스엘게임즈를 이끄는 송재경 대표의 이력도 이 소송에 대한 업계 관심을 키웠다. 송 대표는 1997년 엔씨소프트에서 리니지를 개발을 맡아 ‘리니지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어서다. 이번 소송으로 엑스엘게임즈는 자사 대표가 만든 게임의 지식재산권(IP)에서 유래한 게임으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당한 형국이 됐다.

엔씨소프트의 이번 소송은 유사 MMORPG 게임이 쏟아져 나왔던 과거와 비교하면 이례적인 행보다. 이 업체의 MMORPG인 ‘리니지’가 1990년대 후반 들어 ‘대박’을 내면서 캐시카우(현금창출원)로 정착하자 여러 게임업체가 리니지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게임을 잇따라 내왔다. 업계에선 리니지처럼 중세시대 풍의 공성전 요소를 포함하고 현금 투자로 캐릭터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RPG 게임들을 ‘리니지 라이크(like)’로 지칭하기도 했다.

2019년 대법원 판례로 게임 저작권 보는 시선 달라져

엔씨소프트가 리니지 라이크류 게임에 대한 소송전을 불사하기로 결심한 데에는 게임 저작권 평가에 더 엄격해진 최근 법조계의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9년 대법원은 영국 게임사 킹닷컴이 “한국 게임사 아보카도에터테인먼트가 ‘포레스트 매니아’ 제작 과정에서 자사 게임인 ‘팜 히어로즈 사가’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킹닷컴의 손을 들어줬다. 1심과 2심에서는 두 게임의 규칙 유사성에 대해서 법원이 저작권 침해 여부를 부정했지만 최종심에서 게임 규칙에도 저작권을 인정하는 쪽으로 판정이 뒤집힌 것이다.

이는 과거 판례와는 대조되는 양상이다. 부동산 거래 게임인 ‘부루마불’의 제작사인 아이피플스는 ‘모두의마블’ 개발사인 넷마블에 대해 2016년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아이피플스는 게임 맵의 구조, 게임 규칙의 유사성 등을 주장하며 저작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두 게임의 진행 방식은 비슷하다고 봤지만 이를 ‘모노폴리’와 같은 다른 부동산 게임에서 나타난 공통적인 특징으로 판단했다. 일본 허드슨이 “넥슨의 ‘크레이지 아케이드 비엔비’가 자사 게임인 ‘봄버맨’을 표절했다”며 제기한 2007년 소송에서도 법원은 봄버맨 게임 규칙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유관우 정보기술(IT)·게임 전문 변호사는 “이미 미국에서는 2010년대 초반 ‘테트리스’, ‘트리플타운’과 같은 게임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해주는 판례가 나오면서 게임 규칙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해주는 쪽으로 세계적인 분위기가 바뀌는 추세”라며 “산업 발전으로 음반업계에서 표절에 대한 눈높이가 까다로워졌던 과정이 게임업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업계 일각에선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까다로워지면서 다양한 게임이 생겨날 수 있는 생태계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미 대형 게임사들은 자체 팀을 두고 경쟁 게임사가 신작을 낼 때마다 게임의 유사성 여부를 평가하고 있다”며 “엔씨소프트의 소송까지 겹치면서 개발사들이 게임의 독창성을 강조하는 데에 더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