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도·감청 파문의 핵심 '포탄', 한국 기업이 만들었다는데… [안재광의 대기만성's]

동전부터 포탄까지…야무지게 돈 버는 풍산
류성룡의 12대손 류찬우 회장이 설립
동 가공 사업으로 지난해 매출 4조원 넘겨
포탄 사업 재조명 받으며 주가도 급등


▶안재광 기자
만약에. 이런 일은 없길 바라지만. 미국과 러시아가 싸운다면. 혹은, 미국과 중국이 싸운다면. 어떻게 싸울 것 같아요? 항공모함 뜨고, 전투기가 출격하고. 미사일 서로 쏘고. 뭐, 이런 그림이 그려지지 않나요?
물론 이런 첨단 무기도 많이 쓰이겠지만. 결국에는 총 쏘고, 포탄 쏘는 재래식 전쟁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이건 제 얘긴 아니고. 미군 합참 의장이 최근 미국 하원 청문회에 나와서 밝힌 내용입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에서 그랬죠.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우크라이나가 강력하게 저항했는데. 이때 가장 큰 역할을 한 게 포병이었어요. 유럽연합(EU)이 두 나라가 개전 이후 얼마나 많은 포를 쐈나 분석해 봤더니 러시아는 2만에서 5만발을, 우크라이나는 4000에서 7000발을 쏜다고 해요. 단 하루에. 상황이 이러니 미국이나 유럽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포탄만 이미 200만발 이상 라고 하죠. 그래도 부족하다고 우크라이나는 계속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포탄. 아무리 만들어도 수요를 못 따라가고 있어요. 미국과 EU가 포탄 만들어서 우크라이나에 계속 줬더니, 자기들 무기고가 바닥난 건데요. 러시아도 그렇죠. 얼마나 부족한지, 북한 것도 받아서 쓰고 있다고 올 초에 미국이 위성사진을 증거로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이 포탄 주고, 러시아는 식량 주고.
뭐, 다 됐고. 그래서 한국은 괜찮은 거야? 이렇게 물으면, 다행히 괜찮습니다. 포탄, 탄약은 한국 기업의 기술력이 높고, 공장도 잘 갖춰져 있습니다. 이번 주제는 류성룡의 후예, 숨겨진 K방산 풍산입니다.
풍산은 잘 알려진 회사는 아니죠. 사업은 심플해요. 동을 생산합니다. 동은 구리에 아연, 니켈 같은 금속을 섞어서 만든 것인데. 이 광고 기억하시나요. 녹물 안 나오는 동 파이프. 이런 게 동제품이에요.
또 다른 동제품이 동전이죠. 동전에 글자나 모양이 새겨지기 전 형태를 '소전'이라고 하는데. 풍산은 세계 소전 시장의 약 50%를 점유하고 있는 이 분야 1위입니다. 70여개 국가에 수출하고 있어요. 유로화 동전도 풍산이 만들죠.
또 탄약도 만드는데요. 탄약에 들어가는 화약은 한화 같은 회사가 만들고, 껍데기에 해당하는 탄피나 외피를 풍산이 제조합니다. 동으로 할 수 있게는 게 많죠. 탄약은 굵기로 구분하는데 5.56mm 소구경탄부터 155mm 곡사포탄, 227mm 다연장 로켓 등 거의 모든 탄약을 군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풍산을 창업한 사람은 류찬우 회장이란 분이에요. 원래 일본에서 무역업을 크게 했어요. 한국서 사업을 하게 된 것은 박정희 정부 때인 1968년이었어요. 박정희 정부가 일본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을 불러서 한국에 투자해라. 그게 애국이다. 그래서 세운 게 풍산입니다.
풍산이란 회사 이름은 류찬우 회장이 '풍산 류씨'여서 여기서 따 온 겁니다. 뭔가 가문에 대한 애정이 넘치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더라고요. 류찬우 회장은 조선 최고의 명재상으로 꼽히는 류성룡의 12대손인입니다. 류성룡은 정치, 경제, 군사 등 다방면에서 활약했지만, 이순신을 천거한 인물로 더 잘려져 있죠.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꿈 얘기가 여러 번 나오는데, 류성룡이 네 번이나 등장할 정도로 두 사람이 가까웠다고 합니다. 류성룡은 임진왜란사를 담은 '징비록'이란 책을 썼는데, 그래서 풍산이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 제작을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풍산은 재계에서 인맥이 넓기로 유명한데요. 특히 미국 정치인들과 인연이 깊다고 해요. 한국과 미국의 관계 개선이 힘쓴 사람들에게 주는 밴 플리트상이란 게 있는데. 작년 9월에 이 상을 류찬우 회장의 아들이자 현재 풍산을 이끄는 류진 회장이 받았어요. 시상식에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참석해 축하해 줬다고 해요.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집안과 류진 회장 집안은 매년 볼 정도로 가깝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 대통령이 미국 순방할 때 류진 회장이 종종 같이 가는데,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풍산의 사업은 소비재도 아니고. 또 방산은 알려지는 것을 꺼려서 홍보, 마케팅을 그동안 거의 안 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근데, 요즘 갑자기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어요. 방산 사업 때문인데요. 지난해 폴란드가 한국에서 15조원어치나 무기를 사 갔는데. K2 전차, K-9 자주포가 핵심이거든요. 이 전차와 자주포에 들어가는 포탄. 이거, 당연히 사 갔습니다. 누가 공급했을까요. 공식 발표는 안 됐지만, 업계에선 다 알아요. 풍산이죠. 풍산이 작년 말 K2 전차를 수출한 현대로템과 약 2900억원, K-9 자주포를 수출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1600억원의 대구경 포탄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습니다.
앞으로 폴란드는 계속 포탄 사가겠죠. 프린터는 한 번 사면 오래 쓰는데, 프린터 카트리지는 소모품이라 계속 사야 하잖아요. 폴란드는 풍산에 자기들 나라에 공장 지어달라, 이런 요청까지 한 것 같습니다. 보도가 일부 나왔죠.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무기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요.
폴란드는 자국 방산 기업 PGZ란 곳을 통해 18억달러를 공장 짓는 데 쓴다는데. 생산 노하우, 품질 면에서 풍산과 비교가 안 되기 때문에. 풍산 공장을 유치하고 싶어 합니다.
여기에 미국 국방부도 한국에 포탄 달라고 하고 있어요. 미국은 세계 최대 군사 강국이어서 포탄 공장도 당연히 많았는데. 1990년대 소련과 냉전을 끝낸 뒤 대부분 정리했습니다.
포탄, 그거 언제적 얘기야 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해인 1945년 86곳에 달했던 미국 내 포탄 공장이 지금은 5곳밖에 안 된다고 해요.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미군의 M777이란 견인포를 지원했는데, 이 견인포에 들어가는 게 155mm 포탄입니다. 155mm 포탄은 한국 포병이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미국은 한국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22만발의 포탄을 수입했는데. 추가로 계속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포탄이 엄청 부족하거든요.
폴란드 이외에 유럽연합 차원에서 한국 포탄을 구매할 가능성도 있어요. EU가 우크라이나에 추가로 일 년간 보내기로 한 포탄이 100만발인데요. 이 물량을 맞추려면 유럽 회사들만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우선 EU 국가들이 자기들 창고에 있는 것 주면, 그 창고는 풍산 같은 한국 회사들이 채워줄 가능성이 있어요. 풍산의 폴란드 공장, 정말 지을 수도 있겠네요. 포탄 수요가 이렇게 늘고 있으니 풍산 주가도 요즘 좋아요. 최근 6개월 새 42%가량 올랐어요.
사실 풍산은 증시에서 방산주로 분류는 안 됐어요. 방산은 매출 비중이 30%도 안 되고, 70% 이상은 동 사업이거든요.
동 사업은 구리 가격과 밀접한데. 구매처에서 원료인 구리 가격을 보고 제품 가격을 정하거든요. 구리 가격이 올라가면 제품 가격도 오르고. 반대로 구리 가격이 내려가면 제품 가격도 떨어집니다. 그래서 구리 가격이 올라야 실적도 좋아진다. 이런 논리가 작용해서. 투자자들은 구리 가격 오를 때 주식 사고, 구리 가격 떨어지면 주식을 팔았어요. 이게 구리 가격과 풍산의 주가인데요. 꽤 비슷하게 움직이는 게 보이죠.
그런데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요즘 이런 시각을 바꿉니다. 매출은 여전히 신동이 크고, 방산은 적은데. 이익을 봤더니 방산 비중이 신동을 넘어섰거든요. 풍산은 요즘 드론처럼 날아가서 터지는 탄약, PCD란 것도 개발하고 있는데. 이런 신무기들이 상용화되면 방산 부분의 매출은 더 커질 겁니다.
증시에서도 이런걸 반영하고 있죠. 사실 풍산은 과거에 '가치주'로 통했어요. 돈 잘 버는 데 주가는 별로였다는 얘깁니다. 실적만 보면 굉장히 우량해요. 매출 계속 늘고, 이익도 꾸준히 잘 나고. 2020년 2조5000억원쯤 했던 매출이 2021년 3조5000억원. 작년에 4조3000억원으로 계속 늘었어요. 영업이익은 조금 들쭉날쭉한데. 작년 기준 2300억원가량 했습니다. 순이익은 1750억원. 이 기준으로 PER, 주가수익비율은 5~6배밖에 안 합니다. 코스피 평균이 13배인데, 그 절반도 안 하는 거죠. 주가가 더 오를 여지가 있다는 얘깁니다.
방산에 더해 동 사업까지 실적을 잘 내면 금상첨화인데요. 아까 동 사업은 구리 가격과 함께 움직인다고 했잖아요. 구리 가격은 그럼 앞으로 더 오를까 하는 것인데. 오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구리가 들어가는 분야 중에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그리고 전기차 같은 분야가 있는데. 이런 사업들은 계속 클 수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중국 공장들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럼 구리 수요가 더 늘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어요. 이게 전 세계 동 재고량인데. 올 3월 말 기준 약 6만5000톤가량. 거의 바닥 수준이죠. 재고가 떨어지면 수요는 오를 수 밖에 없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체코가 요즘 방산 특수를 맞고 있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에 전차, 미사일, 대구경 탄약 등 총 134억달러, 우리 돈으로 17조원어치를 수출하기로 했다고 해요. 특히 미국과 서유럽 국가에 없는 152mm 곡사포, 122mm 로켓포 등 대구경 포 탄약을 지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올해 체코의 무기 수출 규모가 1989년 냉전 종식 이후 최대치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어요. 전쟁하면 원래 주변국들이 돈은 벌잖아요. 한국에서 6.25 전쟁 났을 때 돈은 일본이 다 벌었죠.
한국의 기본 입장은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은 없다는 입장인데. 유럽, 미국 같은 우방국에 수출하는 형태로 간접적인 지원은 이뤄질 것 같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K방산 세일즈 외교관을 자처한 만큼, 추가로 수출 계약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전쟁이 없는 세상이면 더 좋겠지만,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최대한 한국에 기회가 되는 방향이 되면 좋겠네요.
류성룡의 후예 풍산, K방산의 새로운 신화 쓸지 눈여겨보겠어.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