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 '고용세습' 노조에 칼 뺐다

고용부, 첫 사법처리 착수

민노총·기아 관계자 입건
사진=연합뉴스
장기근속한 직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고용세습’ 조항을 단체협약에 유지하고 있는 기업에 대해 정부가 처음으로 사법 조치에 들어갔다. 윤석열 대통령의 ‘노사 법치주의’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고용세습은 ‘균등한 취업 기회’를 보장한 헌법과 고용정책기본법 위반이라며 지난해부터 노사에 시정을 요구해왔다.

16일 노동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안양지청은 기아 노동조합이 소속된 산별노조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와 금속노조 위원장, 기아와 기아 대표 등을 시정명령 불이행에 따른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최근 입건했다. 고용부는 특별사법경찰권을 행사해 수사 후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인정되면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할 수 있다.기아 단체협약 26조에는 ‘재직 중 질병으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 정년퇴직자 및 장기근속자(25년 이상)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는 내용이 있다.

앞서 고용부는 100인 이상 사업장 1057곳의 단체협약을 전수조사해 위법한 우선·특별채용 조항이 확인된 60곳에 대해 작년 8월부터 시정 조치에 나섰다. 현재까지 54곳이 개선을 완료했다.

하지만 고용세습 조항이 있는 사업장 중 가장 규모가 큰 기아는 작년 말 지방노동위원회의 시정명령 의결로 석 달여간 시정 기한이 주어졌지만 아직 단체협약을 개정하지 않았다.

60곳 중 54곳 고용세습 접었는데…기아 노조만 "기다려달라"

고용노동부의 사법처리 압박에 기아 노조는 “사측과 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을 개정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니 기다려달라”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기아지부 관계자는 “노조에 유리한 조항을 폐지하는 것에 조합원 반대가 강한 상황”이라며 “아무리 빨라도 6월 전에는 개정 안건이 논의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아 사측은 고용부에 “2014년부터 단체교섭 때마다 고용세습 조항 삭제를 요구했으나 노조 측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의견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 관계자는 “십수 년 전부터 실행에 옮겨진 적 없는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라면서도 “노조와의 교섭을 통해 개선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했다. 비슷한 조항이 있던 현대자동차 노사는 2019년 이를 삭제했다.

정부는 작년 8월부터 고용세습 조항 시정조치를 추진했고, 시정명령에 따라 법상 주어진 2개월의 시정 기한도 이미 지난 점을 고려하면 기아 노사에 대한 사법처리 절차 개시는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당국 관계자는 “기아 노조는 과거부터 고용세습 조항 철폐 요구에 ‘기다려달라’는 말만 반복해왔다”며 “다른 대부분 사업장은 노사 협의를 통해 철폐했는데 기아만 아직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용세습은 가장 공정에 어긋나는 일인 데다 이미 사문화된 조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적거릴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기아와 비슷한 시기에 고용부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은 LG유플러스와 현대위아, 효성중공업, STX엔진, HSD엔진 등 13곳은 노사 협의를 거쳐 단체협약을 개정했다. OCI 경북 포항공장과 동국산업, 단국대부속병원, 건국대충주병원, 영남대의료원 등 41곳은 정부의 시정조치 개시 후 자율 개선을 마쳤다.

노동계에서는 시정명령 미이행에 따른 처벌 수위가 최대 벌금 500만원에 불과해 거대 노조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힘들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연내 마련할 공정채용법(채용절차법 개정안)에 고용세습을 채용 비리와 같은 불공정 채용 행위로 규정하고, 미이행 시 처벌 수위를 징역형으로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오형주/곽용희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