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게 비지떡"…단가 4000원 점심에 뿔난 공무원들 [관가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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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단가 인상금요일인 지난 1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점심시간을 앞두고 공무원들이 청사 업무동에서 물밑 듯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근처에 있는 상가 식당으로 일제히 향했다. 반면 정부세종청사에서 운영 중인 11개의 구내식당 대부분은 최근에 지어진 중앙동을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한산한 모습이었다.공무원들을 위해 마련된 정부세종청사 구내식당이 공무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정부세종청사 구내식당은 국무조정실, 공정거래위원회,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등이 입주한 1단계(1·2·5·6동)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가 입주한 중앙동 등 11개가 있다. 이들 식당의 단가는 4000원(중앙동은 4500원). 현 물가 수준에 비해 매우 저렴한 가격임에도 중앙동을 제외한 대부분의 구내식당은 공무원들이 즐겨 찾지 않는다.이유가 뭘까. 공무원들은 열악한 품질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구내식당 중식 단가인 4000원짜리 메뉴는 밥, 국, 김치에 세 가지 반찬이 나오는 백반식이다. 단가는 2017년 이후 고정돼 있다. 민간 기업 구내식당의 중식 단가(7000~8000원)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4000원이라는 가격에 맞추다 보니 급식 품질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 공무원들의 공통된 불만이다.
세종청사 1단계 식당과 중앙동은 민간 급식업체인 본푸드서비스가 모두 위탁운영하고 있다. 1단계 식당 좌석 수는 1564개, 중앙동은 560석에 달하는 대규모 구내식당이다. 통상 대규모 구내식당은 식수 인원이 보장되고, 이용률이 높기 때문에 급식업체들이 선호하는 ‘알짜 사업장’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4000원이라는 낮은 단가 탓에 급식업체도 사업에서 철수하는 모양새다. 단가가 워낙 낮게 책정돼 식사 품질을 높이지 못하면서 식수 인원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 정부청사관리본부 관계자는 “단가가 4500원인 중앙동 구내식당은 인기가 높지만 4000원인 다른 식당은 공무원들의 불만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지난해 말 진행된 세종청사 중앙동 구내식당 선정엔 본푸드서비스만 단독 응찰했다. 기존 1단계 운영업체였던 풀무원은 입찰을 포기했다. 풀무원 관계자는 “수익성 등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한 끝에 입찰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한 대형 단체급식업체 관계자는 “현 물가수준에서 단가 4000원으로는 도저히 수익성을 낼 수 없다”며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대기업이 아니고선 이 단가에 식사를 제공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급식업계에선 낮은 단가를 유지하면서도 식사 품질을 높이려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대형 급식업체 참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제도상 공공기관 구내식당 운영은 중소 단체급식 업체만 입찰 참여가 가능하다. 앞서 정부는 2012년 중소업체보호 및 육성을 위해 대기업의 공공기관 구내식당 입찰을 원천 배제했다.
하지만 외국계 기업이 정부청사 구내식당을 독식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자 정부는 2016~2019년 공공기관 구내식당에 한해 대기업의 입찰 참여를 한시 허용했다. 한시 허용방침이 2020년 종료되면서 대기업은 구내식당 입찰에 참여할 수 없게 됐다.정부청사관리본부는 구내식당의 품질 관리를 위해 올 상반기 내에 1단계 구내식당을 비롯한 다른 식당의 단가를 현 4000원에서 4500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 구내식당 단가가 인상되는 건 2017년 이후 6년 만이다.
정부청사관리본부 관계자는 “가격을 인상하면 급식업체가 한동안은 품질을 높이다가 다시 하락하는 경우가 많다”며 “단가 인상 후 급식업체가 제공하는 품질을 꼼꼼히 모니터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