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실사에 인권·환경 강조 … 현장 조사보다 체계 구축이 중요"

한경 ESG 리포트
이슈 분석

소송 사례로 본
공급망 실사

EU·美·中 공급망 재편
관련 정책, 위험 평가, 예방 등
환경·인권문제 위험관리 중요

프랑스 토탈, 우간다 원유 시추
EDF社, 멕시코 풍력발전 사업
인권·환경보호단체와 소송 불거져
최근 유럽연합(EU)과 미국, 중국의 공급망 재편 정책에 환경·인권 이슈가 포함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공급망 실사라는 이름으로 협력사의 인권·환경문제에 대한 위험관리의 중요성이 더 강조되고 있다.

여기서 실사는 ‘due diligence’를 번역한 단어로 사전적 의미는 ‘타인에 대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를 뜻하며, 관련 법상 정책과 위험 평가, 예방 및 해결과 유효성 검토 등 일련의 체계를 아우른다. 즉 실사는 현장 조사만을 의미하는 개념이 아니다. 이 글에서 공급망 실사는 공급망 지속가능성 실사 관련 정책과 위험관리, 위험 제거 및 보고 등의 절차를 통칭한다.
하지만 국내는 아직 공급망 실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한 실정이다. 공급망 실사와 관련한 해외 분쟁 사례와 주의점을 살펴본다.

토탈에너지스에 대한 NGO의 소송

프랑스에서 공급망 실사 의무에 근거해 제기된 첫 소송은 토탈에 대한 프랑스 및 국제 시민단체의 소송이다. 토탈은 해외 자회사를 통해 우간다 틸렝가 지역에서 10억 배럴가량의 원유를 시추하기 위해 400개가량의 유전을 개발했다. 매일 20만 배럴의 원유를 1445㎞ 송유관을 통해 탄자니아 항구로 운송하는 사업이다.

프랑스와 우간다의 인권·환경보호 단체는 이 사업이 강압적 토지 취득, 미흡한 보상, 원주민 생활 및 생물다양성 파괴, 기후변화 가속화 등의 위험을 초래한다며 2019년 6월 인권과 환경에 관한 실사 의무 위반 혐의로 경고장을 발송했다. 이어 같은 해 10월 소송을 제기했다.2022년 12월 토탈은 법원의 중재 제안에 따라 대화를 시도했지만, NGO들은 이를 거부했다. 토탈은 개발 프로젝트의 영향을 받는 주민들의 상황에 대한 제3자 모니터링을 의뢰했고, 이에 따라 보상금 지급 현황, 이주 현황, 시행 조치, 생물다양성 보존 등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등 실사 의무가 적절하게 이행됐다고 주장했다.

2023년 2월 프랑스 민사법원은 약식재판에서 시민 단체의 소 제기가 절차법상 하자가 있다며 소를 기각했다. 2019년 발송한 경고장과 소 제기의 내용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이유였다. 또 시민단체의 공사 중단 명령 요청은 심층적 조사가 필요하다며 기각했다.

EDF에 대한 NGO의 소송

2013년 멕시코는 재생에너지회사의 사적 투자에 대해 시장을 개방했다. 2015년 프랑스 에너지기업 EDF와 자회사 EDF리뉴어블스는 현지에서 풍력발전 단지를 운영하고 있는 멕시코 자회사와 함께 멕시코 원주민 거주 지역에 새로운 풍력발전 단지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2017년부터 정부 인허가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그러나 토지 사용에 대해 토착민 공동체와 적절한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2020년 10월 멕시코 인권단체와 유럽 인권단체, 토착 커뮤니티 대표는 토지 사용에 대해 토착민 공동체와 적절한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며 프랑스에서 EDF를 상대로 실사 의무 위반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은 EDF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제169조에 따라 원주민과 적절한 협의를 거치지 않고 지역사회 내 분쟁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또 EDF는 실사 의무에 따라 글로벌 공급망 및 운영에서 인권을 존중할 의무가 있으며, 이에 따라 △위험성 평가 △자회사와 거래처 및 공급망에 대한 정기적 평가 △위험 완화 및 부정적 영향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 △노동조합과 연계를 통한 공급망 신고제도 운영 △효과성 평가 체계를 갖추는 데 관련 조치가 미흡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지방법원은 절차적 미비를 이유로 운영 중단 요구 소송을 기각했다. 하지만 2022년 6월 2일 멕시코 에너지부가 EDF리뉴어블스와 멕시코 국영 전력회사가 체결한 전력 공급 계약을 취소했고, 이에 따라 EDF의 풍력발전 단지 개발은 취소됐다.

전략 및 위험관리와 연계한 공급망 관리

국내에서는 공급망 운영 차원에서 실사 의무에 대응하는 경우가 많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실사법에 근거한 소송 제기는 해외 신사업 진출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이는 전략 수립 과정에서 확인된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할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공급망 운영 정책을 별도로 수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체적 위험관리 측면에서 회사와 밸류체인을 포함한 행동 규범을 세우고 이를 신사업 진출 등 전략 수준에서도 적극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보통 기업 경영에서 전략과 지속가능성의 측면이 분리된 경우가 적지 않다. 지속가능 경영은 결국 경영전략과 지속가능성, 즉 인권과 환경에 대한 관심을 통합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실사 절차의 정확한 이해를 통한 적법성 제고

공급망 실사법은 앞뒤 맥락 없는 현장 조사만을 요구하진 않는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공급망 실사 대응 체계를 구축하며 현장 조사만을 중요시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이 경우 협력사에는 일종의 갑작스러운 ‘갑질’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EU의 실사 지침은 먼저 일관된 정책을 세우고 행동 규범을 공유해 계약 등 형태로 이를 준수하는 것을 우선한다. 준수 여부 확인은 산업 이니셔티브 또는 제3자의 감사를 참고한다. 따라서 정확한 실사 절차를 따를 경우 계약에 근거하게 돼 갑작스러운 현장 조사 요구로 인한 갑질 논란이 불거질 염려가 없다.

또 EU 지침은 부정적 영향평가 방법으로 영향을 받는 대상자와 대화를 우선하고 있다. 토탈의 사례처럼, 중재를 위한 피드백 역시 제3자에 의해 대상자에 대한 영향을 측정하도록 하고 있다.

EDF 사례에서 원고가 요구했듯이 실사 정책은 위험성 평가, 자회사 및 밸류체인에 대한 정기적 평가, 위험 완화 및 부정적 영향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 신고 제도 운영, 효과성 평가에 관한 사항을 망라한다. 각 절차가 빠진 현장 조사로 실사 의무를 다했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ESG 평가와 공급망 실사의 차이

일부에서는 공급망 실사를 ESG 평가의 일종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ESG 평가와 공급망 실사를 동일하게 보고 접근할 경우, 비즈니스 파트너의 특성을 간과해 오히려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할 수도 있다.

공급망 실사는 결과 책임이 아닌 수단 책임이다. 따라서 적절한 정책 수립과 이행은 위험관리의 실효성을 높일 뿐 아니라 본사의 사업과 관계없는 인권 및 환경에 대한 부정적 사건이 발생할 경우 면책과 방어 수단이 될 수 있다.

공급망 실사의 제도화는 아직 초기 단계다. 관련법이 확정되지 않아 기업의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섣불리 대응하기에 앞서 규정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 선제 대응의 정확성을 높여야 비용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장윤제 법무법인 세종 ESG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