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곡 연주하고서야 모차르트를 알게 됐어요"
입력
수정
지면A26
인터뷰 - 피아니스트 손열음피아니스트 손열음(37)에게는 ‘건반 위의 젊은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으레 따라붙는다. 열여섯 살의 나이로 이탈리아 비오티 국제콩쿠르에서 우승(2002)한 뒤 2009년 미국 밴클라이번 국제콩쿠르 2위, 2011년 세계 3대 콩쿠르 가운데 하나인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연주자라서다.
내달부터 전국 7개 도시 돌며
피아노 소나타 18곡 전곡 연주
"모차르트의 꾸밈없는 매력
고스란히 들려주고 싶어요"
"무대 없으면 죽겠다 싶을 정도로
피아노 공연 때마다 쾌감 느껴"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손열음이 모차르트 독주회로 국내 청중을 찾아간다. 다음달 2일부터 6월 25일까지 서울 원주 통영 광주 대구 고양 김해 등 7개 도시에서 공연을 열고 모차르트가 피아노를 위해 지은 소나타 전곡(18곡)을 연주한다. 지난달 프랑스 명문 음반사 나이브 레이블을 통해 같은 레퍼토리의 앨범을 발매한 것을 기념한 무대다. 그는 17일 서울 청파로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이제야 비로소 모차르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손열음은 “모차르트가 처음 피아노 소나타를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마지막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탐구하면서 ‘음악 천재’라는 별칭에 가려진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었다”고 했다. “모차르트라고 하면 천부적인 재능으로 처음부터 모든 작품을 쉽게 써낸 인물처럼 느껴지잖아요. 그런데 그의 어린 시절 작품을 면밀히 들여다보니 새로운 걸 계속해서 시도해보려는 강한 욕구와 창작의 고통이 드러났어요. 음악가로서 고민과 열정을 마주한 것이 모차르트의 작품 세계를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됐어요.”
손열음은 수많은 피아노 작품 중에서 왜 하필 모차르트의 곡을 선택했을까. 그는 “무언가를 인위적으로 꾸며내지 않아도, 내 손으로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해낼 수 있는 음악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손열음은 모차르트와 뗄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다. 그는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준우승할 당시 모차르트 작품에 대한 탁월한 해석력을 자랑하며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특별상’까지 거머쥐었다. 2018년에는 영화 ‘아마데우스’ 음악감독으로 유명한 지휘자 고(故) 네빌 마리너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음반을 발매해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모차르트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집 같아요. 변화무쌍한 악상부터 명료한 아티큘레이션(각 음을 분명하게 연주하는 기법), 총천연색 빛을 내는 음색까지 제가 가장 편하게 연주할 수 있는 요소들이죠. 마치 모국어처럼요. 이번 공연에서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모차르트 본연의 순수하고도 꾸밈없는 매력을 고스란히 살려낸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요.”손열음은 한 달 보름여간의 전국 투어 중에도 해외 공연 일정을 잡았다. 다음달 10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핀란드 방송 교향악단과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을 연주하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미국 세인트 폴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 협주곡 23번, 베토벤 협주곡 2번을 협연한다. 올해 계획된 공연만 60여 개에 달한다.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고 있지만 손열음은 여전히 자신의 연주에 만족할 수 없다고 했다.
“무대를 마치면 홀가분한 마음을 즐기기보단 제 연주가 어땠는지 끊임없이 곱씹어요. 머릿속에 그린 이상향에 가까워지기 위해 매일 자신을 다그치는 편이죠. 연주에 대한 욕심이 커지면서부터는 무대 위에서 주체할 수 없는 떨림을 느끼기도 해요. 더욱 섬세히 표현하고 싶은 음형들과 정교하게 추구하고 싶은 소리가 떠올라서요. 가끔은 아무것도 몰랐던 어릴 때처럼 긴장하지 않고 무대에 오르고 싶어요. 하하.”
손열음은 인터뷰 내내 자신이 얼마나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사랑하는지, 얼마나 음악에 몰두하고 있는지를 찬찬히 풀어냈다. 그에게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무대에 올라 피아노를 연주하는 순간에는 희열을 넘어 엑스터시라고 할 만큼 짜릿한 쾌감을 느껴요. 무대가 없다면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시공간을 초월한 세계에서 오로지 제 음악만이 모든 걸 컨트롤하는 신비로운 경험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어요.”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