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in] "피땀 흘려 모은 전세금 허공으로"…2030들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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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개업자가 '문제없다'며 안심시켜…알고 보니 한패"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은 20대 사회초년생에게 저렴한 신축 전셋집은 큰 유혹이었다. 2021년 말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을 둘러보던 이모(28·여)씨 눈에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는 방 3개, 화장실 2개짜리 오피스텔이 눈에 띄었다.
준공 3년차라 집 상태가 좋았고 전세보증금도 9천만원으로 다른 지역 시세보다 많이 저렴했다.
지방에서 올라와 인천에 직장을 잡은 이씨의 수중에는 학교 졸업 후 5년 넘게 일하며 아등바등 모은 2천400만원이 있었다. 나머지는 전세 대출을 받을 요량이었다.
계약 전 이씨가 떼어본 집 등기부등본에는 1억원 넘는 근저당과 함께 세금 미납으로 인한 압류가 걸려 있었지만 부동산에서는 연신 그를 안심시켰다.
공인중개사는 "집 주인이 큰 사업을 여럿 하고 있어 세금이 많을 뿐 아무 문제도 없다"며 "당장 압류를 풀어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불안해하는 이씨를 설득했다. 신축 오피스텔이나 빌라에는 대부분 근저당이 잡혀 있다며 보증금은 무조건 돌려받는다고도 했다.
부동산 측 설명대로 이씨가 2022년 1월 전세 계약을 맺기 전 압류는 풀렸고, 중소기업청 전세자금 대출도 무사히 받았다.
나중에 드러났지만 이들 공인중개사는 월급 200만∼500만원과 함께 실적에 따른 성과급을 이른바 '건축왕'으로부터 받고 범행에 가담한 상태였다. 새 전셋집에서 종잣돈을 모아보겠다는 이씨의 꿈은 오래 가지 못했다.
불안함에 다시 떼 본 등기부등본에는 사라졌던 압류가 다시 걸려 있었다.
이씨는 곧바로 거래했던 부동산에 연락해 "압류가 다시 걸려 집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공인중개사는 이씨의 연락을 피했다.
이씨는 "그때 다시 확인해보니 이미 집이 경매에 넘어간 상태였다"며 "당장 내년 1월이면 전세 계약이 끝나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데 보증금도 못 돌려받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집에 경매에 낙찰되더라도 이씨가 받을 수 있는 최우선변제금은 보증금의 3분의 1인 3천200만원뿐이다.
이 돈이라도 받으려면 계속 이 집에서 살며 낙찰만 기다려야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집 계약이 끝나는 내년 1월에는 전세자금 대출 원금 6천600만원을 한꺼번에 갚아야 한다.
이를 내지 못하면 통장이나 자가용에 압류가 들어간다.
이씨는 "돈을 모으려고 전셋집을 구했는데 전세금마저 다 날려 월세로 들어가거나 길바닥에 나앉아야 할 형편"이라며 "20대 청년들은 가뜩이나 비싼 집값에 집을 포기하는 상황인데 이게 악순환이 아니면 뭐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이미 집이 경매에 낙찰된 또 다른 피해 30대 남성 역시 전세 사기 탓에 인생 계획이 어그러졌다.
4년 전 직장 때문에 인천으로 이사한 최모(39·남)씨는 2021년 1월 미추홀구 숭의동 한 나홀로 아파트에 전세보증금 7천500만원을 주고 전셋집을 얻었다.
이전에 살던 집도 유치권 소송에 걸려 있었던 터라 '그저 살 만한 집이면 된다'는 생각에 저렴히 구한 곳이었다.
근저당이 걸려 있어 살짝 불안했지만 걱정하지 말라는 부동산의 호언장담을 믿었다.
회사 일을 하며 모은 돈 1천500만원에 나머지 6천만원은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치렀다.
결혼 준비 자금도 알뜰살뜰 모으던 중이었다.
새집에 이사했다는 기쁨도 잠시 이 아파트도 조직적인 전세 사기에 휘말려 지난해부터 차례로 경매에 넘어갔다.
최씨의 집도 지난해 12월 경매에 넘어가 낙찰됐다.
최우선변제금 2천700만원이나마 받으려면 낙찰자로부터 인감증명서와 명도확인서를 받아야 했다.
낙찰자에게 퇴거를 조금만 미뤄달라고 요청하는 과정조차 최씨에게는 설움이었다.
결국 최씨는 최우선변제금을 제외한 나머지 4천800만원을 고스란히 떼인 채 지난달 집을 비워줬다.
자금이 없어 새로 이사할 집은 월세로 구했고 내년으로 생각했던 결혼도 연기했다.
변제금 2천700만원으로는 전세자금 대출을 상환하고자 받은 신용 대출과 마이너스 통장만 일부 갚은 상태다.
최씨는 "어제는 갑자기 돌아가신 사기 피해자가 꿈속에 나와 밤새 잠을 설쳤더니 눈이 빨갛게 부어올랐다"며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건 경매 중지인데 아무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게 가장 미칠 노릇"이라고 하소연했다.
이들처럼 등 전세사기 피해자 상당수는 20·30대 청년 서민층으로 알려졌다.
경찰청이 지난해 7월부터 6개월간 진행한 특별단속에서도 전세사기 피해자 1천207명 중 20∼30대 청년이 602명(49.8%)에 달했다.
전세사기 일당은 집 없는 19세 이상∼33세 이하 청년이라면 누구나 정부 보증으로 최대 1억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는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청년층을 '먹잇감'으로 삼았다.
청년들은 대부분 부동산 거래 경험이 적고 주로 공인중개사만을 의존해 전세 계약을 맺어 범죄 표적이 됐다. 최근 인천 미추홀구에서는 건축왕 일당의 조직적인 전세 사기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20∼30대 청년 3명이 잇따라 숨졌다.
/연합뉴스
준공 3년차라 집 상태가 좋았고 전세보증금도 9천만원으로 다른 지역 시세보다 많이 저렴했다.
지방에서 올라와 인천에 직장을 잡은 이씨의 수중에는 학교 졸업 후 5년 넘게 일하며 아등바등 모은 2천400만원이 있었다. 나머지는 전세 대출을 받을 요량이었다.
계약 전 이씨가 떼어본 집 등기부등본에는 1억원 넘는 근저당과 함께 세금 미납으로 인한 압류가 걸려 있었지만 부동산에서는 연신 그를 안심시켰다.
공인중개사는 "집 주인이 큰 사업을 여럿 하고 있어 세금이 많을 뿐 아무 문제도 없다"며 "당장 압류를 풀어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불안해하는 이씨를 설득했다. 신축 오피스텔이나 빌라에는 대부분 근저당이 잡혀 있다며 보증금은 무조건 돌려받는다고도 했다.
부동산 측 설명대로 이씨가 2022년 1월 전세 계약을 맺기 전 압류는 풀렸고, 중소기업청 전세자금 대출도 무사히 받았다.
나중에 드러났지만 이들 공인중개사는 월급 200만∼500만원과 함께 실적에 따른 성과급을 이른바 '건축왕'으로부터 받고 범행에 가담한 상태였다. 새 전셋집에서 종잣돈을 모아보겠다는 이씨의 꿈은 오래 가지 못했다.
불안함에 다시 떼 본 등기부등본에는 사라졌던 압류가 다시 걸려 있었다.
이씨는 곧바로 거래했던 부동산에 연락해 "압류가 다시 걸려 집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공인중개사는 이씨의 연락을 피했다.
이씨는 "그때 다시 확인해보니 이미 집이 경매에 넘어간 상태였다"며 "당장 내년 1월이면 전세 계약이 끝나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데 보증금도 못 돌려받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집에 경매에 낙찰되더라도 이씨가 받을 수 있는 최우선변제금은 보증금의 3분의 1인 3천200만원뿐이다.
이 돈이라도 받으려면 계속 이 집에서 살며 낙찰만 기다려야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집 계약이 끝나는 내년 1월에는 전세자금 대출 원금 6천600만원을 한꺼번에 갚아야 한다.
이를 내지 못하면 통장이나 자가용에 압류가 들어간다.
이씨는 "돈을 모으려고 전셋집을 구했는데 전세금마저 다 날려 월세로 들어가거나 길바닥에 나앉아야 할 형편"이라며 "20대 청년들은 가뜩이나 비싼 집값에 집을 포기하는 상황인데 이게 악순환이 아니면 뭐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이미 집이 경매에 낙찰된 또 다른 피해 30대 남성 역시 전세 사기 탓에 인생 계획이 어그러졌다.
4년 전 직장 때문에 인천으로 이사한 최모(39·남)씨는 2021년 1월 미추홀구 숭의동 한 나홀로 아파트에 전세보증금 7천500만원을 주고 전셋집을 얻었다.
이전에 살던 집도 유치권 소송에 걸려 있었던 터라 '그저 살 만한 집이면 된다'는 생각에 저렴히 구한 곳이었다.
근저당이 걸려 있어 살짝 불안했지만 걱정하지 말라는 부동산의 호언장담을 믿었다.
회사 일을 하며 모은 돈 1천500만원에 나머지 6천만원은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치렀다.
결혼 준비 자금도 알뜰살뜰 모으던 중이었다.
새집에 이사했다는 기쁨도 잠시 이 아파트도 조직적인 전세 사기에 휘말려 지난해부터 차례로 경매에 넘어갔다.
최씨의 집도 지난해 12월 경매에 넘어가 낙찰됐다.
최우선변제금 2천700만원이나마 받으려면 낙찰자로부터 인감증명서와 명도확인서를 받아야 했다.
낙찰자에게 퇴거를 조금만 미뤄달라고 요청하는 과정조차 최씨에게는 설움이었다.
결국 최씨는 최우선변제금을 제외한 나머지 4천800만원을 고스란히 떼인 채 지난달 집을 비워줬다.
자금이 없어 새로 이사할 집은 월세로 구했고 내년으로 생각했던 결혼도 연기했다.
변제금 2천700만원으로는 전세자금 대출을 상환하고자 받은 신용 대출과 마이너스 통장만 일부 갚은 상태다.
최씨는 "어제는 갑자기 돌아가신 사기 피해자가 꿈속에 나와 밤새 잠을 설쳤더니 눈이 빨갛게 부어올랐다"며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건 경매 중지인데 아무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게 가장 미칠 노릇"이라고 하소연했다.
이들처럼 등 전세사기 피해자 상당수는 20·30대 청년 서민층으로 알려졌다.
경찰청이 지난해 7월부터 6개월간 진행한 특별단속에서도 전세사기 피해자 1천207명 중 20∼30대 청년이 602명(49.8%)에 달했다.
전세사기 일당은 집 없는 19세 이상∼33세 이하 청년이라면 누구나 정부 보증으로 최대 1억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는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청년층을 '먹잇감'으로 삼았다.
청년들은 대부분 부동산 거래 경험이 적고 주로 공인중개사만을 의존해 전세 계약을 맺어 범죄 표적이 됐다. 최근 인천 미추홀구에서는 건축왕 일당의 조직적인 전세 사기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20∼30대 청년 3명이 잇따라 숨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