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대회 돈봉투는 차비·밥값?…11년전 '이미 유죄'

정성호·장경태 등 발언에 2008년 '박희태 사건' 재조명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을 놓고 당내 일각에서 파장을 축소하는 주장이 나오자 법조계에서는 '이미 법적 판단이 끝난 사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의혹으로 법조계에선 2008년 '한나라당 돈봉투 사건'의 판례가 재소환됐다.

당시 박희태 전 의원은 7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표최고위원에 선출될 목적으로 한나라당 의원 고승덕씨에게 300만원을 전달했다.

고씨는 전당대회 3년여 뒤인 2011년 말 한 언론 기고문을 통해 2008년 전당대회 과정에서 한 후보 측 인사가 300만원이 든 돈봉투를 줘 이를 바로 반환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한나라당은 검찰에 수사의뢰했고, 돈봉투의 출처가 당시 국회의장이던 박 전 의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박 전 의장은 수사 초기 혐의를 부인했으나 결국 불구속기소됐다.

2012년 12월 말 항소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뒤 한 달 뒤 사면됐다. 뒤늦게 불거진 이 사건으로 박 전 의장은 국회의장직을 사퇴하고 사실상 정계를 은퇴했다.

이번 사건과 여러모로 유사한 당시 사건에서 박 전 의장은 현재 민주당 일각에서 나오는 주장과 같은 논리를 폈다.

박 전 의장은 "당원협의회 위원장 등에게 투표장에 오기 위한 교통비, 식비 등 실비를 제공하는 관행에 따른 것이지 대의원들 의사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는 취지로 항변했다. 민주당 정성호 의원이 1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민들은 전체적으로 큰 금액이라고 생각하지만 대개 실무자들의 차비, 기름값, 식대 이런 정도 수준"이라고 말한 것과 '판박이'다.

선거 당일 대의원들이 함께 식사하고 버스를 대절해 전당대회장으로 이동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런 비용을 지원하는 '관행'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국회 및 국정운영 전반에 대해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권 여당의 대표최고위원을 선출하는 선거에서 당원협의회 위원장에게 돈을 지급한 행위는 위법성 및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결문에는 "큰 죄의식 없이 법을 무시하고 돈으로 선거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침해해 온 관행에 경종을 울릴 필요도 있다"는 질책도 나온다.
박 전 의장은 항소심에서 "(돈 봉투 살포 행위가) 실제로 경선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았다"는 논리도 주장했다.

19일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이 "국회의원이 300만원 때문에 당 대표 후보 지지를 바꿀 가능성은 작고, 50만원은 한 달 밥값도 안 되는 돈"이라고 언급한 것과 비슷한 취지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선거 결과에 직접 또는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는 별론으로 하고 비난 가능성이 작지 않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다만 2심 재판부는 형량을 정하면서 "전당대회에서 지역구 당협위원장에 대한 금품제공 혐의는 정치권의 오랜 관행이었던 것으로 보이고, 비용 지원의 측면이 일부 있었다"는 점을 일부 유리한 사정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수사 결과 박 전 의장이 전당대회를 위해 마련한 자금은 1억9천만원 정도로 파악됐지만 고씨가 받은 300만원 외에 돈봉투를 전달한 사실은 추가로 밝혀지지 않았다. 이번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김영철 부장검사)는 이런 두 사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염두에 두고 당시 판결문에 대한 법리 검토와 함께 자금의 흐름에 관여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사실관계를 추궁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