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규제 혁신 발목 잡는 '대기업 특혜 논란'

경제활성화하는 포스코 광양 투자
공무원들 보신주의로 난항 겪어

박상용 경제부 기자
“키를 쥐고 있는 국토교통부 공무원들이 대기업 특혜라는 비판을 받을까 봐 좀처럼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중앙정부에서 규제혁신 업무를 담당하는 한 간부급 공무원은 20일 “전남 광양국가산업단지 규제를 푸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며 이같이 털어놨다. 포스코는 전날 광양국가산단에 국가전략사업을 중심으로 10년간 4조4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광양국가산단에 철강 관련 사업체만 들어갈 수 있게 돼 있던 입지 규제를 풀기로 하면서 물꼬를 튼 대규모 투자 계획이었다. 하지만 규제를 완화하기 위한 부처 간 협의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지난달 경기 용인시 남사읍 일대를 국가산단 후보지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대기업 특혜’ 논란에 시달린 국토부가 내내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남사읍 일대에 300조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할 계획이다.대기업 특혜 논란에 민감한 것은 국토부 공무원만의 얘기가 아니다. 조세나 산업지원 정책 등을 맡은 다른 부처 공무원들도 정책 수립 과정에서 늘 의식하고 있는 사안이다.

그렇다면 이번 광양국가산단 규제 완화가 정말 대기업만을 위한 것일까. 포스코는 광양국가산단에 2차전지 소재와 수소 생산, 황산니켈 정제 등 신성장 산업 투자에 나설 예정이다. 이번 투자로 인한 생산 유발 효과는 연간 약 3조6000억원, 고용 효과는 연간 약 9000명으로 추정된다. 관련 중견·중소기업, 지역 경제도 투자 효과를 누리게 될 전망이다.

포스코만을 위한 규제 완화도 아니다. 정부는 특정 업종으로 제한된 국가 산단 입지 규제 자체를 확 풀기로 했다. 자동차, 석유·화학 등 전통 산업 관련 업종으로만 구성된 국가산단에 첨단산업이 들어서는 융합산단이 추가로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전국에 있는 국가산단은 47개, 이곳에 들어선 기업은 6만853개에 달한다.규제 완화로 신규 투자가 활성화하면 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 소멸’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지난 2월 기준 228개 기초지방자치단체(시·군·구) 중 118곳(51.8%)이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을 1.7%에서 1.5%로 낮추는 등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과감한 투자를 통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에 정치적인 특혜 시비가 규제 혁신의 발목을 잡을까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