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된 탄소배출, 스코프 4가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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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프 4는 제품 사용 결과로 발생하는 배출 감소를 뜻한다. 기존의 스코프 1~3에서는 파악되지 않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스코프 4 측정과 보고가 아직 일반화 되지는 않았지만 최근 이를 한발 앞서 공개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스코프 4 배출량을 줄이려면 소비자가 제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탄소를 더 많이 줄일 수 있도록 하는 연구개발비용이 필요하다[한경ESG] 이슈 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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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관리’로 불리는 스코프 4
스코프 4 배출을 저감할 수 있는 제품은 저온 세제나 연료 절약 타이어, 원격회의 서비스 등을 사례로 들 수 있다. 저온 세제를 사용하면 물을 데우지 않고도 저온에서 사용할 수 있어 소비자가 물을 데우는 데 드는 에너지가 절약되는데, 이 절약분이 세제 회사의 스코프 4 배출량에 포함된다. 또 통근하거나 고객을 만나기 위해 이동하지 않고 직원이 집에 머물 경우 피할 수 있는 온실가스 배출분은 원격회의 제공업체의 스코프 4 배출량이 된다. 세탁기를 제조업체가 사용 단계에서 제품의 효율성 또는 지속가능성을 개선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자원을 투자하는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 연구개발 기간에는 회사의 탄소배출량이 증가할 수 있지만, 개발한 제품의 사용 단계에서 효율성이 증가해 결과적으로 더 많은 양의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 이때 회피된 배출량이 세탁기 제조업체의 스코프 4에 포함될 수 있다.
운송회사의 경우 새로 개발된 기술을 이용해 트럭의 연료 효율성을 높이면 운송의 탄소발자국을 줄였다고 할 수 있다. 또 식품에서는 동물성단백질을 식물성단백질로 대체하면 육류 생산에 드는 탄소배출량이 줄어든다. 클라우드 데이터 스토리지 공급자는 고객을 온프레미스(on-premise) 스토리지 솔루션에서 클라우드로 전환해 잠재적으로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WRI는 ‘저감 배출 추정 및 보고’ 백서를 내고 스코프 4 배출량 측정 시 주의할 점을 제시했다. 이 백서에서는 2가지 방법론을 제시한다. 우선 귀인적(attributional) 접근법은 저탄소 제품 또는 서비스와 동등한 기능을 제공하는 제품 또는 서비스 간 전체 수명주기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의 차이에 주목한다. 결과적(consequential) 접근 방식은 기준선인 평상시 비즈니스 시나리오와 비교해 저탄소 제품 또는 서비스로 인해 발생하는 배출 시스템 전체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WRI는 스코프 4 배출량을 추정할 때 단일 제품 간 비교할 것, 제품 수명주기의 모든 단계를 고려할 것, 소비자 행동 변화를 고려할 것, 시장규모와 영향력을 혼동하지 말 것, 회사의 전체 제품 포트폴리오를 분석할 것 등을 권고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기업 중 스코프 4를 산출해 공개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고객이 제품 사용 과정에서 배출을 저감할 수 있도록 목표를 설정한다. 특히 슈나이더는 데이터를 활용해 전기와 수도를 최적화하는 스마트 파워북과 디지털화된 건물로 고객이 탄소배출을 회피하고 물을 절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슈나이더는 산업용 사물인터넷 플랫폼인 에코스트럭처(EcoStruxure)를 사용한 고객이 2018년 이후 1억3400만 미터톤의 CO2를 절감했다고 보고했다. 이는 1년 동안 휘발유 승용차 2887만2877대의 배출량에 해당한다.슈나이더 계열사인 소프트웨어 회사 아비바도 스코프 4 배출량을 고려한다. 아비바는 제품이 고객의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데 미칠 수 있는 긍정적 영향을 ‘지속가능성 손자국’이라 부른다. 예를 들어, 에너지 생산자는 아비바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함으로써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엑세스 및 제어 솔루션 제공업체 르그랑도 2021년 매출의 약 21%를 차지하는 에너지 효율 제품 라인을 통해 1200만 톤의 고객 탄소배출 방지를 목표로 내걸며 스코프 4를 언급했다. 스위스 통신사 스위스콤은 액센추어와 함께 개발한 새로운 스코프 4 기후 전략을 통해 2025년까지 탄소배출량 100만 톤을 줄인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스코프 4 배출량을 보고하는 것은 회사 내에서 저탄소 전환 아이디어를 모색할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회사의 환경영향에 대한 투명성을 제고해 고객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스코프 4 배출량을 공개하는 기업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코프 4는 투자자에게도 유용한 기업 비교 수단이 될 수 있다.다만 아직 표준화된 프레임워크가 없고, 가상 시나리오에 기반한 분석이 필요해 자의적 해석이라는 비판을 받을 여지는 있다. 전문가들은 스코프 4는 스코프 1~3과 별도로 보고돼야 하고, 스코프 1~3를 조정하는 데 사용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과학 기반 목표 이니셔티브(SBTi)도 스코프 4 배출량은 단기 또는 장기 배출 감축 목표에 포함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이선경 한국 ESG연구소 센터장은 “스코프4까지 감안한 의사결정을 통해 보다 종합적인 탄소감축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에서 회피된 배출량에 대한 그린워싱을 유발할 소지도 크다”고 지적했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