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우선매수권 주어지지만…'최고가 낙찰'에 실효성 우려도

충분한 경매자금 대출 뒤따라야 실효성 확보
"피해자 대부분 전세대출 떠안고 있어…또 대출?"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이 거주하는 주택이 경매에 나왔을 때 임차인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는 방안은 피해자들이 줄기차게 요구해 온 사안 중 하나다. 다만 우선매수권을 받은 임차인은 경매 최고가로 주택을 매입하게 돼 있어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20일 당정협의회를 열고 피해주택 경매 때 일정 기준에 맞춰 임차인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제도 보완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경매에서 우선매수권은 현재 공유지분자에게 부여된 권리다. 예를 들어 부부가 공동으로 소유한 아파트가 경매에 나왔을 때 공유 지분자에게 물건을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여러 사람이 부동산을 소유할 경우 뜻하지 않은 분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사전에 방지하자는 취지의 제도다.

단 우선매수권자는 최고가 입찰자가 써낸 가격으로 지분을 살 수 있다. 정부는 공유지분자 우선매수권 제도를 준용해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우선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민사집행법 등의 개정을 검토 중이다.

피해자는 경매 최고가에 피해 주택을 매수해야 하는 것이다. 전세사기 피해 주택이 감정가 1억원으로 경매에 올라왔을 경우 응찰자들이 경합을 벌이면 낙찰가가 1억2천만원, 1억3천만원까지 올라갈 수 있다.

그러면 임차인이 비싼 가격에 주택을 매수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우선매수권은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더 비싼 가격에 주택을 사야 할 수도 있다는 게 문제"라며 "실효성이 큰 제도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임차인의 우선매수권 행사 시 다른 입찰자가 참가하지 못하도록 시장을 막는다면 최저가격 구매도 가능하겠지만 이는 반시장적"이라고 했다.

인천 미추홀구처럼 선순위 채권자들이 있는 경우 이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세입자 피해를 구제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과거 부도 임대아파트 문제 해결에도 우선매수권 제도가 적용된 적이 있지만, 최고가 낙찰제 등의 문제로 활용한 임차인이 많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 건설경기 악화로 임대주택을 지은 민간 건설사가 도산하면서 이 회사들이 지은 임대아파트 단지 전체가 경매로 넘어가는 일이 있었다.

세입자들은 대거 보증금을 떼일 위기에 처했다.

정부는 2007년 '부도공공임대주택 임차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을 시행해 경매에 나온 공공임대아파트를 공공이 매입해 국민임대아파트로 전환하고,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줬다.

임대주택이 경매로 넘어갔더라도 임차인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지방공사 등 '부도임대주택 매입 사업자'에 매입 동의를 하면 우선매수권을 양도한 것으로 간주했다.

임대주택법에는 임차인의 우선매수권을 담은 특례조항을 담았는데, 최고 매수 신고가에 우선 매수할 수 있도록 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우선매수권에 대해 "또 다른 사람의 재산권에 정부가 일방적으로 손해를 끼치는 일이나, 제도를 악용해 2차 피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정밀하게 합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선매수권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피해자에 대한 경매자금 대출 지원이 충분한 수준으로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피해자들의 상당수는 전세대출을 떠안고 있다"며 "(우선매수권 부여는) 여기에 또 대출받아서 집을 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도 "2만원이 없어서 비극적 선택을 하는 청년들이 있는데, 저리 대출을 한다고 해서 어느 정도가 가능하겠느냐"며 "우선매수권이 있어도 일단 돈이 있어야 살 것 아니냐"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