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표 "'부자 증세는 善' 프레임 버려야…정책 정당 만들 것"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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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원내대표 후보 릴레이 인터뷰더불어민주당의 새 원내사령탑을 뽑는 선거를 앞두고 홍익표 의원(사진)은 2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실력 있는 정책 정당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해 민주당의 과거 정책 중 개선이나 폐기·삭제가 필요한 것은 과감히 고쳐나가겠다고 했다. 특히 정부·여당에 ‘부자 감세 서민 증세’ 프레임으로 공세를 했던 건 "과거 패러다임에 사로잡힌 것"이라며 "민주당이 지지층을 넓힐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홍 의원은 정책위의장과 민주연구원장을 두루 지낸 당내 '정책통'으로 꼽힌다.
그는 희생과 헌신의 리더십도 강조했다. 홍 의원은 지난해 민주당이 대선·지방선거에서 패배한 뒤 3선을 지낸 자신의 지역구(서울 중구 성동갑)가 아닌 서초을에 지역위원장 출사표를 내 주목받았다. 민주당에 우호적인 지역을 스스로 내려놓고 '험지'로 먼저 향한 것이다. 당시 그는 "당이 위기 상황이니 중진들도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민주당의 재건을 위해선 강남·서초도 포기하면 안 된다"고 이유를 밝혔다. 홍 의원은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원내대표가 돼야 한다"며 "나는 나부터 기득권을 내려놨다"고 자신이 적임자임을 강조했다. 다음은 홍 의원과의 인터뷰 전문.
▷왜 차기 원내대표가 홍익표여야 하나.
“이번 원내대표는 내년 총선을 이끌 지도부의 일원이 된다. 원내 협상은 물론 내년 총선 승리를 어떻게 책임질 수 있느냐가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총선 승리에 꼭 필요한 원내대표라고 할 때 몇 가지 기준이 있다고 본다.
첫째, 정책적으로 유능해야 한다. 나는 정책위의장, 민주연구원장 등을 맡으면서 오래 당 정책을 이끌어왔기 때문에 정책에 관해선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두 번째는 소통하고 책임지는 리더십이다. 소통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닌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고, 그 결과를 책임 있게 끌고 갈 수 있는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세 번째는 용기 있는 원내대표여야 한다. 민주당은 이제 야당이지 않나. 윤석열 정부의 무능과 독선에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고, 원내 협상도 뚝심 있게 끌고 가는 원내대표여야 한다. 그러면서도 당내 잡음이 있을 땐 흔들리지 않고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원내대표가 돼야 한다. 민주당은 내년 총선에서 혁신을 통해 국민에게 신뢰받는 정당으로 선택받아야 한다. 희생과 헌신은 남이 하는 게 아니라 자기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니겠나. 나는 나 스스로 기득권, 여러 가지 주어진 것들을 먼저 내려놓고 당의 험지라고 할 수 있는 서초에 출마를 결심했다. 서초로 가면서 뭔가 변화를 만들어내려 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당이 혁신하고 변화하는 데 내가 가장 앞장서서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이 원내대표가 돼 총선을 준비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민주당이 가장 혁신해야 할 부분은 어떤 것이 있나.“우선 혁신을 통해 신뢰받는 정당이 돼야 할 것 같다. 흔히 메시지보다 메신저가 중요하다고 하잖나. 메신저의 신뢰가 떨어지면 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내놔도 그 메시지가 신뢰를 얻지 못한다. 민주당이 신뢰받는 정당으로 가기 위해선 먼저 우리 당내 문화나 태도 등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면 그런 것도 해야 하지 않을까.
두 번째는 당이 실제로 '실력 있는 정책 정당'이 돼야 한다. 지난 3년간 우리 민주당이 도대체 어떤 부분에서 정책적으로 잘 못 했고, 잘했는지에 대해 자기 평가를 좀 해야 한다. 우리가 했던 정책 중 잘한 것은 계속 확대하고, 부분적으로 수정·개선이 필요한 것은 고쳐야 한다. 전면적으로 폐기할 것, 아예 삭제하고 없앨 것은 과감하게 지워야 한다. 현실에 맞게 우리의 실력을 정책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또 당의 혁신을 위해 민주성과 다양성이 확보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당이 가진 최대 장점은 다양성과 민주주의 원칙·가치를 지켜온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문화가 좀 위축되거나 보이지 않는다는 안팎의 우려가 크다. 최대한 당의 다양한 목소리, 그리고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하는 절차적 기준과 시스템을 보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언급한 민주당이 '전면적으로 폐기하거나 삭제하고 없앨' 정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예를 들면 너무 과거 패러다임에 사로잡히는 게 있다. 정부·여당이 ‘부자 감세 서민 증세’를 한다며 정치적 공세를 한 것이 대표적이다. 감세와 증세 문제를 그렇게 바라보면 해법이 없다.
나는 물론 법인세, 소득세율 낮추는 건 반대다. 그러나 투자 세액 공제나 고용 유지·촉진 관련 세액 공제 등 일정 수준의 감세는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감세와 증세를 단선적으로 놓고 '부자 증세는 선'이라는 프레임은 아니라고 본다. 민주당이 과거 10~20년 전에 했던 얘기에 계속 빠져 있는 부분이 있다. 이로 인해 지지층을 넓힐 기회를 상당히 놓쳤을 거라고 생각한다.
재정 운영 관련해선 정부에 '지금 미래에 대한 투자를 안 하면 미래 세대가 어떻게 먹고살라는 거냐, 현세대를 위해 미래 세대를 포기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하는 게 차라리 맞았다. 싸움을 세대 간 논쟁으로 만드는 것이다."
▷김민석 정책위의장이 최근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부동산 정책 등이 실책이었다고 규정했다. 민주당이 자성하고 현대화해야 할 부분으로 지적했는데.
"소득주도성장은 처음부터 당에서 우려가 컸다. 한국은 자영업자가 25% 가까이 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현실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 서구 유럽식 임금주도성장을 끌고 와 도입하면 소규모 자영업자, 5인 미만 업자들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을과 을' '을과 병'의 싸움이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또 한국은 최저임금이 거의 중위소득에 육박한다. 최저임금 경계선이 너무 많기 때문에 외국 따라 최저임금을 올리면 고용 부담이 너무 커지는 문제가 있다.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할 때 임대료, 카드 수수료, 갑질 문제 등 자영업자의 부담·문제가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있는지를 챙겼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부족했다. 너무 속도감 있게만 밀어붙이면서 을과 을·병의 싸움을 방치했다.
코로나19 상황도 아쉽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인플레이션이 좀 더 빨리 왔을 거다. 물가상승률이 2% 정도만 됐으면 자영업자에게 최저임금 부담이 심하게 몰리지 않았을 것이다.
부동산 실패는 정확히는 부동산 세제 정책 실패다. 꼭 부동산뿐 아니라 모든 조세 정책에 있어 두 가지 원칙의 균형감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나는 과세 정의, 또 하나는 조세 안정성. 돈을 많이 벌어 소득이 생겼으면 세금을 내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납세자 입장에서 인상 폭이 너무 급격하다고 느끼거나, 현재 가처분 소득을 줄여가면서 세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 초래돼서는 안 된다. 예측 가능하고 납세 가능한 부담에서의 세율 인상을 고민했어야 하는데 그런 점이 부족했다.
특히 세금으로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고 했던 것은 정말 패착이었다. 당 지도부 일각에서도 우려는 있었다. 차라리 국민들에게 소상히 설명하는 게 좋았다고 본다. 경기가 안 좋을 때였으니, 금리를 낮춰 시장 유동성을 높이는 상황에 대해서. 부동산을 잡겠다고 금리를 올리면 많은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의 도산 우려가 있고, 가계부채 부담이 급격히 커지게 된다고. 정부로선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시장 유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국민에게 소상히 경제 흐름을 얘기하는 게 맞았다고 본다."▷'친명'(친이재명) 인사들에게 지지받는 후보로 알려졌다. 이런 평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그분들이 왜 나를 지지할까 생각을 한번 해달라. 나는 지금까지 당에서 어떤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았거나 권한을 갖고 있었을 때 사사로이 내 개인이나 특정 계파·그룹의 이해관계에 치우쳐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나를 신뢰하고 지지하는 것이지 특정인과 관련해 지지한다고 보지 않는다.
무엇보다 주로 친이재명계라고 분류되는 이들은 사실 내가 초·재선 때 꾸준히 교류하던 분들이다. 개혁적 정책 등을 놓고 예전부터 토론하고 정치를 같이 해오던 분들이다. 이재명 대표를 통해 고리가 형성된 게 아니다. 나에 대한 지지를 밝힌 의원 중에는 특정 계파만 있지 않고 비이재명계도 많다."
▷내년 총선까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안고 현 체제로 갈 수 있겠냐는 의문이 당 안팎에서 나온다.
"그냥 원칙대로 판단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먼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라고 얘기하는 부분은 실제 검찰의 공소장을 보는 순간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낮아졌다. 검찰이 '428억원 뇌물' '변호사비 대납' '쌍방울 대북 송금' 등을 '망신 주기'로 꺼내 들었지만 정작 공소장에 이런 내용은 빠졌잖나. 그런 내용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나는 작년 12월부터 이 대표 측근을 통해 '검찰 수사를 빨리 받고 재판으로 넘어가는 게 좋다'고 조언해왔다. 검찰은 어차피 기소를 무조건할 테니 차라리 법정으로 가야 양쪽 주장이 균형 있게 다뤄질 것이란 생각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현저히 낮아졌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우리 당헌·당규상 이 대표를 당대표직에서 내려오게 할 어떤 근거 조항도 없다. 원칙적으로도 그렇고 정무적 판단으로도 이 대표가 물러나야 할 이유는 없다. 물론 정치라는 게 여러 상황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봐야 하지만, 그것은 그때 가서 판단할 문제다. 다가오지도 않은 상황을 가정하기보단 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신뢰를 회복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으로 당이 시끄럽다. 송영길 전 대표가 탈당하고 귀국하기로 했다.
"당 지도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가능한 범위에서 하는 것으로 본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런 논란 자체가 국민들에게 송구스럽다. 논란의 중심에 송 전 대표가 있기 때문에 귀국해 책임질 부분, 해명할 부분을 투명하게 밝힐 것으로 본다.
송 전 대표를 비롯한 관계자들의 진술이나 의혹은 수사기관의 조사를 보면서 당이 책임져야 할 부분은 확실하게 책임져야 한다. 당이 더 혁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민주당이 '돈 봉투' 등 이슈가 있었지만, 지지율은 정부·여당이 더 부진한 모양새다. 왜 그런 것으로 보나.
"'돈 봉투' 건은 아직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봐야 한다. 다만 '돈 봉투' 건은 민주당 전체의 문제는 아니고 그 당시 송영길 캠프에서 일부 있었던 문제다. 당 전체로 아직 비화하고 있진 않다 보니 영향이 제한적이다.
반면 윤석열 정부의 최근 실정은 너무 굵직했고, 누적됐다. 한·미 도청 등 외교 현안뿐 아니라 양곡관리법 처리 과정 등도 정부·여당에 오히려 마이너스였다. 또 민생·경제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상대적으로 무당층이나 중도층으로의 이전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국민의힘에서 지지를 철회한다고 바로 우리 쪽으로 오진 않는다. 단계를 거쳐 올 수 있다는 얘기다. 또 하나는 실제 여야 모두에 마음을 선뜻 주기 어렵다는 분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도 지금 지지율에 안주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치 현안이 생기면 지지율은 쉽게 움직이기 마련이다.
중요한 건 정책적 이슈로 지지율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쌓이는 지지율은 매우 조금씩 올라가지만, 꾸준히 누적돼 커진다. 확실한 득점·실점이 구분되는 것은 이 지점이다. 현재 우리로서 긍정적인 부분은 두 가지가 같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여당의 정책적 실패로 인해 쌓이는 지지율과 정치 현안으로 인해 움직이는 지지율."
▷원내대표가 되면 대여 전략은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노란봉투법, 양곡관리법, 간호법 등 쟁점 법안이 줄줄이 예고돼 있다. 민주당이 단독 처리를 하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은데. 민주당에도 이런 상황이 유리하게만 보이지 않는다.
"먼저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현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돼 가는데 지금까지도 뭘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야당이 발목 잡았다고 주장하는데 도대체 뭘 잡았는지 좀 얘기했으면 좋겠다. 잡을 발목이 없다.
그래서 더 고민스럽다. 정부·여당이 뭔가 일하려 하고, 야당과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한다면 서로 주고받을 게 있어야 한다. 협상이라면 우리도 줄 생각, 양보할 생각도 있다. 그런데 어떠한 것도 협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다.
쟁점 법안에 대해 여당이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하고, 해법을 내놓으려 한다면 우리가 못 기다릴 이유가 있겠나. 그런 건 전혀 없이 마냥 백지상태로 나온다. 말로만 더 논의하자고 하지 실제 논의는 없다. 이건 '침대 축구'도 아니고 '불참 축구'다. 윤석열 정부의 이런 행태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 전제다. 그렇다면 우리도 속도 조절하거나 재고할 수 있다. 진짜 일할 생각으로 협상할 자세를 보여달라."
설지연/한재영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