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방을 사진으로 찍기 위해 20년을 기다린 '이 남자' [전시 리뷰]

"다른 이의 방을 사진으로 남겨본 적이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없다"라는 답변이 나올 것이다. 아무리 친구라 해도, 그의 방까지 들어가려면 꽤 오랜 유대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방문을 열어주는 것조차 힘든데, 방 사진을 찍는다니. 가족에게도 허용되기 힘든 상황이다.하지만 여기, 일면식도 없는 타인의 방에 들어가 그곳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10년, 20년 동안 기회를 엿본 한 남자가 있다. 바로 사진가 프랑수아 알라르. 그는 현재 서울 중구 회현동 피크닉에서 이런 은밀한 방 사진을 담은 '비지트 프리베' 전시를 열고 있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남의 집' 사진들이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사진들 옆엔 이 방의 주인 이름이 붙어 있다. 이름들을 찬찬히 보다 보면, 지금까지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인들의 방도 아주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크 시대 청동 조각상, 골동품 은석기, 중국과 아프리카 보물이 가득 놓인 방의 주인공은 대중에 잘 알려진 디자이너 생로랑이다. 그는 그의 연인 피에르 베르제와 함께 살았는데, 전 세계를 돌며 여러 문화권의 작품들을 모아놓고 마치 박물관처럼 집을 꾸몄다. 알라르는1984년 이 연인의 집을 방문하고는 심미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스무살도 채 되지 않은 알라르를 LA에 위치한 그의 집으로 불렀다. 잡지 촬영을 위해서였는데, 당시 신인이었던 알라르는 호크니의 상징과도 같은 눈부신 수영장을 보고 완전히 사로잡혔다고 한다.

알라르가 모든 이들의 집에 쉽게 초대되었던 건 결코 아니다. 그는 한 신문에서 벨기에 출신 작가 루크 루이멍스의 작품을 보게 된다. 그의 작품 세계에 빠졌던 알라르는, 그 신문을 스크랩해두고 '언젠간 그의 작업실에 가고 싶다'는 버킷리스트를 세웠다. 그리고 그는 루이멍스의 집을 사진으로 남기며 그 염원을 풀게 되는데, 이를 이루는 데엔 자그마치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알라르의 우상,롤 모델과도 같았던 작가 싸이 톰블리. 알라르는 첫 월급으로 톰블리의 미술품을 사고, 톰블리가 있는 아를에 집을 마련할 만큼 그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는 톰블리의 작업실을 사진으로 남기기까지 무려 15년을 기다려야만 했다.
15년 만에 들어가게 된 우상의 집은 알라르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루이 15세가 앉았던 의자, 로마 시대의 흉상 등에서 그는 톰블리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이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했다고 한다.

알라르는 이곳에서 자신이 쓰던 카메라 대신 톰블리가 즐겨 사용했던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이 또한 톰블리를 향한 존경의 표시였다. 그는 촬영을 마친 이후 "폴라로이드는 그야말로 '즉석 사진'인데 난 이런 바로 출력되는 즉각적인 사진을 찍기 위해 15년을 기다렸다"고 웃으며 소감을 밝혔다.

타인의 방 사진과 함께 알라르는 자신이 56일간 시간을 보냈던 프랑스 아를의 집 사진도 걸어뒀다. 매일매일 환경과 날씨에 따라 변하는 집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하루에 한 장씩, 총 56장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으며 관람객에게 자신의 방을 소개한다.전시를 보는 이들은 마치 알라르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방을 구석구석 구경하고, 사진을 찍는 '또 다른 알라르'가 된다.

알라르는 처음 카메라를 잡기 시작했을 때부터 현재까지 찍은 모든 사진들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내 손으로 담은 모든 사진들의 99.9%를 보관하고 있다"며 "묵은 사진은 좋은 와인과도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오르고, 풍미가 좋아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