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막장 치정극'의 당혹스런 변신…연극의 맛 살려낸 '반전의 반전' [연극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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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극단 올해 첫 신작 연극연극 ‘키스’는 관객을 당황하게 한다. 극이 절반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막을 내려 버린다. 스태프들은 부산하게 무대를 정리하고, 급기야 연출가와 배우들이 관객에게 마무리 인사까지 전한다. 관객들은 어리둥절하다. 이런 행동이 연극의 연장선인지 아니면 정말로 극이 끝난 건지 혼란이 최고조에 달할 무렵, 반전이 이어진다.
우스꽝스럽게 그려진 삼각관계
비극적 사연으로 변하면서 충격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키스’는 서울시극단의 올해 첫 신작이다. 칠레의 떠오르는 극작가 기예르모 칼데론의 희곡 작품이며 2014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연극으로 처음 선보여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칼데론 작품이 국내에서 공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연극의 1막은 평범한 ‘막장 드라마’다. 무대 배경은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어느 집이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두 커플이 이곳에 모인다. 그 가운데 한 커플의 아메드는 연인 하딜에게 마침내 결혼 프러포즈를 하는데 난장판이 된다. 친구인 유세프도 갑작스레 하딜에게 사랑 고백을 하면서 치정극이 펼쳐진다. 배우들의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연기가 웃음을 자아낸다.
관객을 당혹스럽게 하는 전개가 이뤄지는 것은 이쯤에서다. 극이 돌연 끝난 것처럼 조명이 환하게 켜진다. 우종희 연출가와 배우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인사한다. 관객들은 정말로 끝난 건지 반신반의하면서 어정쩡하게 박수를 친다. 박수 소리가 줄어들면서 레바논에 있다는 시리아 출신 작가와 화상으로 ‘작가와의 대화’를 시작한다.
작가와의 대화를 기점으로 극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집힌다. 연출가를 비롯해 배우들은 본인이 해석하고 연습한 대본의 내용이 작가의 의도와 전혀 달랐다는 것을 깨닫는다. 작가와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난감해하고 식은땀을 흘리는 연출가의 표정을 관찰하는 것도 재밌는 요소 중 하나.관객들은 연극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희곡이 무대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 같은 대사라도 연출가와 배우가 어떻게 해석하고 캐릭터를 구축하느냐에 따라서 얼마나 다른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는지 등을 체감할 수 있다. 작가와의 대화가 끝나면 극은 1막의 통속극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변신한다. 1막의 치정이나 삼각관계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작품 배경을 왜 하필 서아시아의 낯선 나라 시리아로 설정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여기서 풀린다.
‘연극의 맛’이 살아있는 작품이다. 극장에 나란히 앉은 다른 관객들과 함께 반전을 즐기고, 함께 놀라워하는 순간도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겠다. 반전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극장에 가서 직접 확인하길. 공연은 30일까지.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