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없으니…반짝반짝 빛나는 캐릭터가 보였다 [뮤지컬 리뷰]

신과 함께 - 저승편

캐스팅 대신 스토리 자체에 주력

'배우'보다는 '배역' 돋보인 작품
무대 디자인도 작품 생생함 더해
다른 연예산업과 마찬가지로 뮤지컬업계도 ‘스타 캐스팅’에 사활을 건다. 유명 배우 한 명만 제대로 기용해도 흥행 성적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팬층이 두터운 배우들은 같은 작품을 여러 번 반복해 보도록 하는 ‘N차 관람’을 강하게 이끌어낸다.
얼마 전 개막한 뮤지컬 ‘신과 함께-저승편’은 통상의 흥행 공식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히트작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스타보다는 콘텐츠 자체의 힘을 십분 이용하면서다. 뮤지컬은 주호민 작가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제작해 2015년 초연한 이후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같은 웹툰으로 만든 영화도 14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했다.‘신과 함께-저승편’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망자 김자홍과 사후 세계 7개 지옥의 심판에서 김자홍을 변호해 주는 진기한에 대한 이야기다. 뮤지컬은 원작의 줄거리와 캐릭터 등을 충실히 살리는 데 초점을 맞췄고 이것이 ‘신의 한 수’가 됐다. 지옥마다 짧지만 기승전결을 갖춘 서사가 있고 볼거리가 다채로워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원작 콘텐츠가 지닌 힘을 잘 지켜냈다. 신선한 연출도 재미를 더했다. 인간이 죽으면 저승차사가 찾아온다는 설정까지는 낯설지 않지만 지하철을 타고 저승 입구까지 이동한다거나, 저승에서 심판을 도와주는 변호사가 있다는 설정 등이다.

뮤지컬은 배우가 보이는 게 아니라 캐릭터가 보인다. 변호사 진기한을 연기한 배우 권성찬부터 망자 김자홍을 연기한 윤태호를 비롯해 저승차사 강림을 맡은 이동규, 초연부터 염라대왕을 연기한 금승훈 등 만화 캐릭터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배우들의 분장과 캐릭터 소화력이 돋보인다. 초현실적인 배경이지만 현실 세계를 반영한 대사와 연기를 유치하지 않게 소화해내고, 노래 실력도 출중하다. 앙상블의 군무도 절도가 있다.
작품을 빛내주는 또 다른 요소는 무대 디자인이다. 뮤지컬의 작품성을 높인 일등공신 가운데 하나다. 수준 높은 무대 디자인이 판타지 세상의 개연성을 부여해준다. 예를 들어 무대 한가운데 지름 17m짜리 둥근 바퀴를 설치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배경을 표현했다.

바퀴 안쪽 무대 바닥엔 LED 스크린을 깔아 지옥 불구덩이와 얼음 도가니 등 각각의 지옥을 상징하는 시각 효과를 실감 나게 활용하기도 했다. 작품의 초현실적인 세계를 관객들이 어색하거나 유치하게 느끼지 않도록 잘 구현했다.

원작 만화를 미리 본 관객과 보지 않은 관객 모두 지루하지 않게 즐길 수 있는 뮤지컬이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극장을 나와 기억에 남는 넘버(노래)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연은 오는 30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