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發 매물 폭탄에 무더기 하한가

삼천리·하림지주 등 8개 종목
차액결제거래 반대매매 추정
특별한 호재 없이 폭등세를 타던 10개 종목이 24일 외국계 증권사 창구에서 쏟아진 대규모 매도 물량에 하한가로 직행하거나 폭락세로 마감했다. 장외파생상품의 일종인 차액결제거래(CFD·contract for difference) 관련 계좌에서 반대매매 물량이 쏟아진 데 따른 것으로 증권업계는 분석했다. 최근 신용잔액 급증 속에 상승세를 보인 국내 증시에 악재로 번질지 투자자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천리, 서울가스, 대성홀딩스, 세방, 다올투자증권 등 5개 종목은 가격제한폭까지 급락했다. 코스닥시장의 하림지주, 다우데이타, 선광 등 3개 종목도 하한가를 기록했다.이들 종목은 모두 외국계 증권사인 소시에테제네랄(SG) 거래 창구에서 이날 대규모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삼천리, 서울가스, 다우데이타, 세방은 매도창구 1위가 SG증권이었다. 하림지주 등 나머지 4개 종목도 SG증권이 매도창구 2~3위였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의 CJ와 국동도 SG증권 창구에서 매물이 쏟아지면서 각각 12% 넘게 급락했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레버리지를 일으킨 CFD 계좌가 손실 구간에 들어가면서 SG증권이 고객 주식을 강제로 처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CFD는 실제 투자상품을 보유하지 않으면서 차후 가격 변동에 따른 차익만 정산한다. 40%의 증거금으로 2.5배 레버리지를 일으켜 투자할 수 있다. 국내 K증권사가 CFD 거래를 중개하고 SG증권이 주문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다만 해당 CFD 계좌가 어떻게 손실 구간에 진입했는지 등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았다. 금융감독당국과 한국거래소는 진상 조사에 나섰다.

한국판 '빌 황 사태' 되나…투자자 전전긍긍

24일 하한가를 기록한 유가증권 및 코스닥시장의 8개 종목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돈복사기 주식’으로 불렸다. 지난 1~2년간 주가가 5~10배 오를 정도로 상승세가 가팔랐기 때문이다. 2020년 1만5000원대에 거래되던 선광은 이달 17만2000원까지 11배 급등했다. 삼천리, 서울가스, 세방 등도 저점 대비 4~5배 급등했다.

하지만 이들 종목이 외국계 증권사인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의 대규모 매도 물량 출회로 무더기 하한가로 직행하면서 상황이 급반전했다. 1~2년간 별다른 호재 없이 급등했다는 점에서 ‘작전’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의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투자자를 모집하고, 주가를 부양하는 다단계식 작전이 있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증권가는 특정 사모펀드 또는 단일 계좌에서 반대매매가 나왔을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8개 종목을 동시에 담고 있는 차액결제거래(CFD) 계좌에서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이 발생하고, 증거금이 채워지지 않자 증권사가 강제로 물량을 처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증권업계는 SG증권발 주가 폭락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날 8개 종목의 매도 물량이 거의 소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천리는 외국계 창구에서 나온 69억원어치(1만6725주) 순매도만으로 하한가를 기록했다. 전체 증권사에선 26만3790주가 하한가로 나왔지만 거래가 체결되지 않았다.

서울가스, 대성홀딩스, 하림지주 등 다른 종목들도 이날 순매도량의 5~6배에 달하는 매도 물량이 체결되지 않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날 나온 투매 물량이 시장에서 소화돼야 급락세가 멈출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거래일인 25일에도 이들 종목이 급락세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이들 종목의 급락이 주식시장 전체 하락을 부추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들어 ‘빚투’가 급증하며 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 신용잔액이 20조원을 돌파했기 때문이다. 다올투자증권은 21일 기준 신용잔액률이 14.5%에 달한다. 선광(12.49%), 세방(12.09%), 다우데이타(10.98%)도 신용잔액률이 높은 편이다.

증권업계 일각에선 CFD로 뉴욕증시 폭락세를 일으켰던 ‘빌 황 사태’가 한국 증시에서도 터진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2021년 3월 한국계 미국인 투자자 빌 황이 운용하는 아케고스캐피털은 CFD 계약을 통해 보유자산의 5배가 넘는 500억달러를 주식에 투자했다. 그가 투자한 주식이 폭락해 증권사들이 반대매매로 주식을 처분하자 고객과 금융사들은 총 12조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

박의명/류병화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