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서들이여…'1%의 마니아' 말고 '99%의 초심자'가 되라

[arte] 정옥희의 숨은 춤 찾기

세련된 관객, 무지한 예술가
최근 스트릿댄스 배틀 행사를 보러 갔습니다. TV나 유튜브론 종종 엿보았어도 직접 관람은 처음이었습니다. 치열한 티케팅에 성공한 후 당일이 되자 걱정이 생겼습니다. 어떤 복장으로 가야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당황했습니다. 저는 춤 전공자로서 숱한 춤 공연을 보았지만 배틀에 대해선 TPO(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에 적합한 의복 예절)를 모르는 문외한일 뿐이니까요. 스트릿댄스 배틀은 젊은이들의 전위적인 문화라는 통념 때문인지 저 같은 초심자 외부인이 나타나 분위기를 깨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습니다.배틀은 예매사이트를 통해 표를 팔고 공연장 무대에서 열렸습니다.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극장 예술 형식에 가까워진 셈이죠. 저는 가죽 자켓 차림으로 젊은 관객들 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MC는 초심자 관객들을 위해 배틀의 규칙을 설명하고 호응을 많이 해달라고 안내했습니다. 관객들이 심사위원처럼 엄숙해지거나 핸드폰으로 촬영하느라 조용해질 때마다 MC는 목소리를 높여 객석의 호응을 유도했습니다.

의식적으로 박수치고 소리 지르며 관람하려니 클래식 음악 공연장이 생각났습니다. 클래식 음악 초심자들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악장 사이에 혼자 박수를 친 상황이지요. 언제 박수를 쳐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저는 남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하면 슬며시 합류하곤 합니다.발레 공연에선 박수가 후합니다. 주인공이 무대에 등장하기만 해도, 32바퀴 회전 같은 시그니쳐 테크닉이 시작되기만 해도 박수가 쏟아집니다. 전통놀음에서도 관객의 멋들어진 추임새는 공연의 일부가 됩니다. 최근에 본 공연에선 장구춤을 추던 춤꾼이 관객들이 너무 밋밋하여 힘이 안 난다며 호응해달라고 직접 말을 건네기도 하더군요.

공연 장르마다 관습과 매너가 다릅니다. 무엇을 봐야 할지, 무엇이 당연한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미묘하게 다릅니다. 한 장르에 정통했다고 해서 다른 장르가 쉬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래 전 미국의 무용비평가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전통춤 공연을 관람하고선 무엇을 봐야 할지 모르겠다고 당황해한 적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익숙한 영역을 벗어나면 초심자일 뿐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곧 능숙해지니까요.

예술가들은 ‘교육 받은’ 관객, 혹은 세련된 관객 앞에 서길 꿈꿉니다. 특히 비주류 장르에 속한 예술가들은 ‘관객의 눈높이에 맞춘’ 공연에서 나아가 능숙한 관객들과 섬세한 상호작용을 주고받고 싶어 합니다. 예술가와 관객이 같은 지평에서 서는 순간은 짜릿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순간은 달성하기 어렵거니와 위험하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을 선 밖으로 밀어내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예술가들은 적극적으로 초심자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장르 안에서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을 낯설게 바라볼 때 성찰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낯설게 보기를 제일 잘 하는 사람은 초심 관객이죠.

최근 저는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지젤>을 초심자 관객과 관람했습니다. 1막이 끝나자 동행자는 남녀 주인공인 지젤과 알브레히트가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왜 갑자기 새로운 남녀가 등장해 한참을 춤추는지 물었습니다.

‘패전트 파 드 되(peasant pas de deux; 농부의 이인무)’이죠. 극 중 다양한 춤을 볼거리로 삽입하는 발레의 관습입니다. 전공자들에겐 익숙하다 못해 잊어버렸던 부분을 초심자의 한 마디에 새롭게 발견한 순간이었습니다.발레단에서 퇴직한 후 오랜만에 관람했던 <지젤> 공연도 떠오릅니다. 몸에 익은 작품이건만 객석에서 바라보니 무대에서와는 다른 것이 보였습니다. 무용수일 때는 테크닉과 칼군무, 표현과 같은 세부적인 요소에 집중했지만 관객이 되니 작품 전체의 구조와 논리가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 그 때에도 관객의 눈을 지녔더라면 더 나은 공연을 했을 텐데’라고 후회했습니다.

예술가와 관객은 각자의 시야를 재조정하며 서로를 향해 다가갑니다. 세련된 예술가와 무지한 관객이 무지한 예술가와 세련된 관객이 되어간다면 언젠가 같은 지평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은 분명 짜릿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