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는 왜 이제서야 '핫한 미술 도시'가 됐을까

[arte] 김선희의 아트 오브 라라랜드

핫한 미술 명소, 라라랜드

미술을 포함해 문화에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 자유롭게 쓰면 된다기에, 나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원고청탁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글솜씨가 없다 보니 그 결정이 금새 무거운 짐이 되고 말았다. 책임을 통찰하면서, 그래도 용기를 내어 활기차게 변화하고 있는 LA 소식으로 첫번째 칼럼을 시작해 본다. 과거의 ‘골드 러쉬’처럼 LA는 지금 ‘아트 러쉬’가 한창 붐이란 뉴스, 그동안 미술에 있어 뉴욕에 뒤처졌던 LA가 최근 그 간격을 바짝 좁혀가고 있다는 뉴스들이 LA에 4년째 살고 있는 나에게 즐거운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뉴욕과 LA의 서로 다른 모습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묘사되듯이, 상반되는 점이 많다. 뉴욕이 수직적이며 좁고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라면 LA는 평면적이며, 넓고, 느슨하게 움직이는 도시다. 뉴요커들이 낮에는 경쟁적으로 일하면서도 맛있는 식사와 예술로 밤문화를 즐긴다면, 자유분방한 LA 사람들은 한낮에 쨍쨍 내리쬐는 햇빛과 자연을 훨씬 많이 즐기는 편이다. 이처럼 다른 라이프스타일은 당연히 기후나 지형, 문화적으로 서로 다른 환경에서 연유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천사의 도시라는 LA의 명칭도 자연환경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따라서 지중해성 기후의 특혜를 받은 LA 사람들에게는 그 햇빛의 의미가 더 큰 것 같다. 사실 LA 사람들의 유별난 햇빛 사랑은 그 가치를 잘 몰랐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LA 사람들은 그 들이 지불해야하는 비싼 세금을 ‘햇살세금’(Sunshine tax)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이 단순한 유머에 불과한 말이 아니어서 놀란 것이다. 어쨌든 나도 아침의 투명한 햇살부터 시작해 석양까지 날마다 변화하는 태양빛을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삶이 좋아졌다. 무엇보다 그 좋은 기후 덕택에 LA에서 할리우드가 탄생하였고, LA는 영화와 엔터테인먼트의 가장 큰 허브 도시가 되었다. LA에는 50만명에 이르는 인구가 영화 및 엔터테인먼트업에 종사할 정도이고, 해마다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LA드림’을 꿈꾸며 계속 LA에 모여들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곳곳에서 영화촬영을 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고, 또 어느 거리에나 영화나 드라마에 관한 대형 광고 간판들이 가득하다. 그런 LA의 특수한 환경은 파티를 좋아하고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소비 문화를 형성했다. LA는 수많은 ‘라라랜드’ 스토리들을 탄생시키는 도시가 된 것이다.
영화산업 외에도 LA에는 항공, 석유, 농업이 주요 산업자원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그런 산업을 통해 수많은 자본가들이 탄생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수퍼리치들은 미술품 콜렉션에 열심이었고 LA의 미술관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Norton Simon, Armand Hammer, Paul Getty, Eli Broad가 대표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붙인 미술관을 설립했을 뿐만 아니라 LA시립미술관인 LACMA가 개관(1961년)할 때도, 현대미술관인 MoCA가 개관(1979년)할 때도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LA의 수많은 미술관중에 가장 대표적인 미술관으로는 LACMA와 Norton Simon 미술관, MoCA, Hammer Museum, Getty Villa와 Getty Center, Broad 미술관 등을 꼽을 수 있다. 가히 전설적인 소장품 규모와 위상을 지니고 있는 이들 미술관들을 통해 LA의 미술문화 수준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미술관에 대한 소개는 나중에 흥미로운 이벤트나 전시와 더불어서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LA에는 미술관과 더불어 수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해 낸 미술대학들도 많지만, 대학 이야기보다는 LA의 현대미술가들에 대해 언급하고 넘어가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지난 50년간 LA에서 활동했던 무수히 많은 작가들 가운데 가장 대표작인 작가로는 Sam Francis, James Turrell, Chris Burden, David Hockney, Mike Kelley, John Baldessari, Ed Ruscha, Robert Therrien, Bill Viola, Barbara Kruger, Paul McCarthy, Mark Bradford 등이 있다. 이 작가들은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이미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들 받고 현대미술계를 이끌어 온 예술가들이다. 최근에는 Charles Gaines, Mary Corse, Jonas Wood 등이 스타 아티스트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사실로 미뤄봐도 LA가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들을 배출하는 중요한 텃밭이란 걸 알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LA에는 일찍부터 상당수의 상업화랑들도 활약하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큰 갤러리들 중에 하나인 유명한 가고시안 갤러리도 LA에서 탄생한 갤러리다. 이 밖에 대표적인 갤러리로는 Regan Project, Blum & Poe Gallery, David Kordansky Gallery, Kayne & Griffen Gallery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해가 갈수록 새로 탄생한 갤러리들이 늘어났다. 알고 보면 이미 LA는 미술도시로서의 기반이 충분히 다져져 있었다.


그런데 왜 이제야 엘에이가 핫한 미술도시로 떠오른 것일까?

그 답은 아주 간단하다. 그것은 LA의 급성장한 미술시장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 프리즈 LA(Frieze LA)와 더불어 국제적인 대형 갤러리들을 포함한 많은 갤러리들이 LA에 문을 열어서 국제적인 거대한 미술시장이 형성됐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이야기다. 아시다시피 최근 미술시장은 아트페어가 트렌드다. LA에서도 2019년을 시작으로 프리즈 LA라고 하는 아트페어가 매년 열리고 있는데, 이게 미술도시 LA를 만든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처음 3년간 프리즈 LA는 할리우드의 파라마운트 영화사 스튜디오에서 이뤄졌는데,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최고의 갤러리들이 참여한 전시장과 영화사의 야외 세트장에 만들어진 아트 스트리트 프로젝트들 덕분에 LA에서만 할 수 있는 독특하고 역동적인 장이 이루어진 것이다.

말하자면 ‘영화와 현대미술’이 함께 어우러져 무척 흥미로운 볼거리가 되었다. 더불어 핫한 미술도시 LA가 이루어진 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2016년 봄 LA에 문을 연 초대형 다국적 갤러리 Hauser & Wirth (H&W)였다. H&W가 리틀도쿄 옆 옛 창고와 공장들이 즐비한 일종의 헬렘지역에 자리를 잡은 것도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그들이 선택한 장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밀가루 케이크 가루 공장인 필스버리(Pillsbury)의 옛 공장터였다.

낡은 건물들을 전시장으로 개조하고, 가운데 마당에는 레스토랑과 디자인샵, 심지어는 닭과 염소까지 키우는 농장까지 조성해 흥미로운 예술센터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러자 그곳은 단번에 LA의 가장 핫한 장소로 떠올랐고 대성공을 거뒀다. 그곳에서는 전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들이 밤낮으로 열렸다. 놀라운 것은 H&W 갤러리 주변 일대에 카페와 레스토랑, 흥미로운 샵들이 속속 모여들어 그 지역의 거리 풍경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도 치솟았다. 저렴하고 조용했던 아트 디스트릭트(art district)가 갑자기 LA의 힙한 문화예술의 명소가 된 것이다. 그런 원동력을 제공한 H&W는 얼마전 프리즈 LA 기간에 맞춰 웨스트 할리우드에 두번째 공간을 열고 조지 콘도 전시로 존재감을 보였다. H&W가 큰 성과를 내자 뉴욕의 대형 갤러리들과 새로운 갤러리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할리우드에도 Jeffery Deitch Gallery, Tanya Bonakdar Gallery, VSF Gallery,
Rodney Nonaka Hill Gallery, Sean Kelly Gallery 등 수많은 갤러리들이 잇달아 문을 열었다. 또한 Lisson Gallery, Marian Goodman Gallery도 할리우드에 자리를 잡았다. 할리우드는 이제 영화뿐만 아니라 예술로도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이 됐다. 이런 분위기에 Pace Gallery도 합류했다.
그들은 James Turrell이 디자인했던 Kayne & Griffen Gallery를 인수해 David Kordansky Gallery의 새 이웃으로 문을 열었다. 또 David Zwarner Gallery는 코리안 타운에 부지를 구입하고 개조공사를 한창 진행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 코리안타운이 예술·디자인 거리로 개발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여기서 덧붙이고 싶은 소식이 하나 더 있다. 할리우드의 갤러리 지역에 한국의 가나 갤러리가 ‘가나아트 LA’ 간판을 달고 입성했다는 소식이다. 아담한 규모의 낭만적인 미드센추리 건축물을 개조한 공간을 마련하고 지난 2월 프리즈 LA 기간에 맞춰 성황리에 개관행사를 치른 것이다. 윤명로, 김구림, 임동식, 오수환, 이수경, 박대성 등 여러 한국작가들과 일본작가 시오타 치하루, 그리고 미국작가 로버트 테리엔을 더해 만든 그룹 전시는 단번에 완판될 정도로 인기였다. 이에 가나아트 LA는 앞으로도 계속 한국 작가들을 세계 무대에 소개하면서 국제적인 활동에 더욱 진취적으로 다가가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LA가 핫한 미술도시로 주목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때는 홍콩이었지만, 지금은 서울과 LA가 세계 미술시장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트렌드란 발전하고 쇠퇴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LA의 골드러쉬가 이젠 옛 역사로만 존재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미술 도시’로서 LA의 유명세가 얼마나 유지될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인구와 경제력이 받쳐주는 미국의 제 2의 도시인만큼 그 위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