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 샤넬의 방에 카메라를 들이댄 사나이

프랑수아 알라르 사진전 '비지트 프리베'

'다른 사람의 집' 찍는 사진가
호크니·생로랑 등의 공간 촬영
사진 200여점 들고 한국 찾아

사진 찍기 위해 15년을 기다린
싸이 톰블리의 작업실도 공개
프랑스에 마련된 이브 생로랑과 그의 연인 피에르 베르제의 방.
1984년 프랑스 파리 바빌론 거리 55. 여기 들어선 집은 마치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았다. 지구촌 방방곡곡에서 흘러든 유물로 가득 차 있었다. 바로크 시대의 청동 조각상과 골동품 은석기들은 원목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자리를 잡았다. 유럽을 넘어 아프리카와 중동, 동아시아 국가의 예술품 수십 점이 바닥을 채웠다. 명품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의 집이었다. 당시 진열된 명작들의 모습은 고스란히 사진으로 남아 있다. 사진작가 프랑수아 알라르의 작품에서다.

알라르는 다른 사람들의 집을 찍는 사진가다. 그는 사람을 드러내는 데 집만 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 남들의 생활 공간을 피사체로 삼아왔다. 알라르가 수십 년간 진행한 작업의 결과는 서울 회현동 복합문화 공간 피크닉에서 열리고 있는 ‘비지트 프리베’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시의 이름은 프랑스어로 ‘은밀한 방문’이란 뜻이다.
프랑스 파리 캉봉가 31 샤넬 사옥 맨 위층에 있는 코코 샤넬의 방.
그곳에선 전 세계 유명인의 개인적 공간을 사진으로 볼 수 있다. 텍사스 말파라는 생소한 미국 지명을 세계에 알린 도널드 저드의 기념관, 뮤지션 레니 크래비츠의 프랑스 파리 아파트, 에일린 그레이가 사랑을 꿈꾸던 남프랑스의 별장 등 200여 점의 사진을 볼 수 있다.

명품 브랜드 샤넬의 창립자 코코 샤넬의 아파트 사진도 걸려 있다. 1918년 샤넬이 프랑스 파리의 여러 집 중에서 고르고 고른 캉봉가 31 사진이다. 샤넬의 집이면서 집무실로, 매장이자 패션쇼장으로 쓰인 곳이다. 연인 보이 카펠이 죽은 뒤에 상심을 달래기 위해 떠난 베네치아에서 사온 황금 사자상 사진이 특히 인상 깊다.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공간을 감각적으로 찍어주는 알라르에게 기꺼이 현관문을 열어줬다.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거장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알라르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집으로 불렀다. 호크니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수영장을 찍도록 허락했다. 작품 활동을 갓 시작한 신인 사진가 알라르는 호크니의 상징과도 같은 수영장을 보고 완전히 반했다고 한다.

물론 모두 흔쾌히 자신의 공간을 공개한 것은 아니다. 알라르는 신문에서 벨기에 출신 작가 루크 루이멍스의 작품을 보게 된다. 그의 작품 세계에 빠진 알라르는 신문을 스크랩해두고 ‘언젠간 그의 작업실에 가서 사진을 찍겠다’는 버킷리스트를 세웠다. 그의 목표가 이뤄지기까지는 자그마치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알라르의 우상이자 롤모델이던 현대미술가 사이 톰블리는 15년을 기다렸다. 자발적으로 기다린 측면이 있다. 그는 톰블리에게 먼저 연락하고 찾아가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전시 때마다 톰블리를 향한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렇게 15년이 흐르자 톰블리가 먼저 자신의 공간을 찍어달라고 제안해 왔다.톰블리의 집에 들어간 알라르는 깜짝 놀랐다. 루이 15세가 앉았던 의자, 로마 시대의 흉상 등에서 그는 톰블리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했다고 한다. 알라르는 이곳에서 자신이 쓰던 카메라 대신 톰블리가 즐겨 사용하던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전시회에서 남의 집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알라르의 집도 구경할 수 있다. 코로나19를 피해 56일간 보낸 프랑스 아를의 집 사진들이다. 그는 하루에 한 장씩 집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총 56장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으며 관람객에게 자신의 방을 소개한다.

‘비지트 프리베’는 평소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알라르의 대표 사진과 작품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시 작품이 많아 다소 산만한 느낌도 들지만 동시에 그만큼 많은 이들의 성격과 삶의 방식을 유추해볼 수 있게 해준다. 전시는 오는 7월 30일까지.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