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인정·유족과 합의에도 실형 못 막아…중대재해법 2호 판결

법원, 과거 고용부 근로감독 및 처벌 이력 눈 여겨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한국제강 대표이사 A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대표이사가 집행유예 없는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법원이 과거 동종 전과를 중요하게 고려한 점, 유족과 원만히 합의해 '처벌 불원'의 탄원서를 받았음에도 법정 구속을 한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창원지법 마산지원 형사1부(강지웅 부장판사)는 중대재해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고 26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3월 16일 경남 함안의 한국제강에서 작업 중이던 하청 소속 근로자 60대 B씨가 1.2t 무게의 방열판에 다리가 깔려 숨진 것과 관련해 기소됐다.법원은 A씨가 △안전보건총괄책임자로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 △경영책임자로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함께 위반했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먼저 A씨가 사망한 근로자가 소속된 하도급 업체의 중량물 취급 작업 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은 점을 근거로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또 △종사자의 안전·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등이 해당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하고 그 기준에 따라 반기 1회 이상 평가·관리하는 의무, △하도급인의 산재 예방 능력과 기술에 관한 평가 기준·절차에 관한 기준을 마련한 뒤 그 기준과 절차에 따라 도급이 이뤄지는지를 반기 1회 이상 점검 등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경영책임자로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시했다.

○법원, 과거 처벌 전력 눈여겨봐

법원은 양형 단계에서 A 대표이사에게 다수의 동종 전과가 있는 점을 중요하게 봤다.

한국제강은 2010년 6월 검찰청과 고용노동부 합동점검에서 안전조치의무 위반 사실이 적발돼 2011년 벌금형을 받은 바 있다. 2020년에도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창원지청의 예방 감독에서 안전조치의무 위반 사실이 적발돼 이듬해 벌금형 처벌을 받기도 했다.

2021년에는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했고, 항소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아 재판이 확정된 바 있으며, 이 산재 사망사고를 이유로 실시된 정기 감독에서 안전조치 의무 위반 사실이 적발됐다.법원은 이를 근거로 "수년간에 걸쳐 안전조치 의무 위반 사실이 여러 차례 적발되고 산재 사망사고까지 발생한 것은 근로자 등의 안전권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밖에도 "중대재해사고를 기업의 조직문화 또는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인한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는 견지에서 최근에 새로운 법률(중대재해법)이 만들어졌다"며 중대재해법의 입법 목적과 제정 경위를 살펴봐야 한다는 취지로도 판시했다.

법무법인 바른 정상태 변호사는 "산업안전법 위반으로 벌금을 3회 받은 사실이 있고, 산안법 사망사고로 재판을 받는 도중 중대재해가 발생한 데다, 중대재해 발생 후 3개월 후 실시된 안전점검에서 21개 항목 위반이 적발되는 등 안전보건에 관한 노력이 거의 없다고 본 것 같다"며 "법원이 중대재해법의 입법 취지 등을 중요하게 본 것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한국제강 측은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할 준비 기간이 부족했다는 점을 참작해 달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중대재해법 제정 공포된 날부터 시행일까지 1년 유예기간이 있었다"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소사실 인정·유족 처벌 불원서에도…실형 못 막았다

재판 과정에서 예상과 다르게 한국제강 측은 무죄를 주장하는 대신 공소사실 자체를 모두 인정하는 등 읍소 전략으로 나왔다.

한국제강과 A씨 등은 지난해 12월 열린 1차 공판기일부터, 재판부가 바뀌고 올해 3월 열린 2차 공판기일까지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 과정에서 유족 측과도 원만하게 합의해 유족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탄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일반적인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따른 재판에서는 양형에 상당히 유리한 정황으로 여겨진다.

특히 지난 6일 중대재해처벌법 1호 선고를 받은 온유파트너스의 경우 피고인 대표이사가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유족들과 원만하게 합의해 선처를 탄원 받는 등의 사정을 근거로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바 있다.

이런 정황에 비춰보면 법조계에서는 예상보다 강한 처벌이 나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법원이 중대재해법의 취지를 고려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강한 처벌 의지를 드러낸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합의도 했고 의무도 일부 이행했고, 범행을 인정했는데 '중대재해법의 취지'라는 기준으로 실형이 나왔다"며 "상당히 무거운 판결로 여겨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