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나무 대신 빗물을 심자"…산불 예방하는 '산촉촉 운동'

산불 초기 대응, 피해 지역 홍수·산사태 등 방지 '묘책' 제시
한무영 교수, 오는 29일 강원 대학생 등과 삼척서 '물모이' 조성
"산불 예방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산에 빗물을 심을 것을 제안합니다. 산지 곳곳에 소규모 빗물 저장 시설인 '물모이'를 만들어 산을 촉촉하게 하고, 모아둔 빗물을 초기 진화에 활용하자는 게 핵심입니다.

"
축구장(0.714㏊)의 530배에 이르는 379ha(산림 179ha)를 집어삼키고 수백명의 이재민을 발생시킨 강릉 대형 산불로 여러 화재 예방책이 입에 오르내리는 가운데 빗물을 활용해 산불에 대응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빗물 박사'로 불리는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는 26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빗물을 더 이상 골칫덩이가 아닌 자원으로 인식해야 한다며 이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1년 강수량이 1천300㎜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 빗물을 단순히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모아두고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게 그의 견해다.

한 교수는 '물모이'를 통해 주변 토양에 일정 수준의 습기를 유지함으로써 선제적인 산불 예방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물모이는 산지 곳곳에 널려 있는 나무, 돌을 이용해 물이 모이도록 만든 높이 0.5∼1m의 자연 빗물 저장 시설이다. 물모이에 모인 빗물 일부는 지하수로 흘러 계곡의 건천화를 막고, 표면에 남은 물은 산불 초기 단계에서 소화용수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특히 소방차가 들어서기 쉽지 않거나 시야 확보가 어려운 야간 진화 작업 시 물모이가 톡톡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한 교수는 그 경제성과 효과성 등을 실험하기 위해 지난해 9월 경기도 광주 한 야산에서 1천㎡당 물모이 1개씩 총 3개를 설치하고 모니터링하고 있다.
"물모이는 산불 피해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도 줄일 수 있어요.

산림이 원상태로 회복하기까지는 30년 정도가 걸리는데, 그전까지 산불 피해지역에서 홍수, 토사 유출, 산사태 위험이 커져요.

물모이는 집중호우 기간 빗물을 보관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유출량을 현저히 줄이는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
한 교수에 따르면 전체 강우량 중 땅에 흡수되지 않고 밖으로 유출되는 비율인 '유출계수'가 일반 산림에서는 0.3 수준이지만, 산불 이후에는 0.7∼0.8까지 높아진다.

이는 같은 양의 비가 오더라도 빗물이 2배 이상 흘러 내려올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한 교수는 물모이를 산불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추가 피해에 대한 대응책으로도 활용하자는 입장을 내놨다.

실제 한 교수 연구팀이 서울 홍제천 상류부에서 물모이 모의 실험한 결과 집중호우 때 최대 유출량이 72% 감소하는 효과가 확인됐다.

한 교수는 "물모이는 적은 예산으로 수재와 화재를 동시에 예방할 수 있다"며 "2012년 슬로바키아에서 산지에 빗물 수집 시설을 설치한 결과 상습 홍수가 사라지고 생태계가 살아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가톨릭관동대학교, 강릉원주대학교 등 강릉 지역 대학생 20여명과 서울 지역 대학생 10여명, 환경단체 소속 활동가들과 오는 29∼30일 삼척시와 환경재단 등의 지원을 받아 노곡면 고자리 시유림 야산에서 물모이 30개를 조성하는 '산촉촉 운동'을 벌인다.

한 교수는 지역사회에서 민·관이 협력해 산불 등 재해에 대응할 수 있도록 토론회, 세미나 등을 개최할 예정이다. 그는 "유역의 물 보유량과 수분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치하고 초기 불을 진화할 수 있는 과학적인 지표를 세울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