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기 나토처럼…한미협의체 만들어 '핵우산 우려' 불식

'한미 핵협의그룹 모델' 나토 NPG도 소련 핵능력 우려 속 창설
한미 양국이 확장억제에 한국의 목소리를 더 반영하기 위한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NCG)을 신설하기로 한 것은 냉전 시기 나토(NATO) 핵기획그룹(Nuclear Planning Group·NPG) 탄생과 여러모로 맥락이 비슷하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당국자는 26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핵협의그룹은 우리가 지금처럼 잠재적 외부 위협에 직면했던 냉전이 한창일 때 유럽의 동맹과 한 것을 여러 면에서 모델로 했다"고 말했다.

고위당국자는 나토 핵기획그룹을 통해 미국이 유럽을 방어하는 데 핵무기 등 전략자산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정보를 공유해 유럽과 굳건한 동맹을 유지할 수 있었고 한미 핵협의그룹 설계를 고민할 때 그런 점에 착안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스스로 설명했듯 나토 NPG와 한미 NCG 모두 적대국의 핵 능력 고조로 미국의 핵 공약에 대한 동맹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1950년대 스푸트니크 위성 발사로 소련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을 갖췄다는 우려가 커지자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는 미국 핵우산에 대한 의구심이 늘어나게 됐다.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1961년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에게 했다는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포기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당시 유럽 국가들의 안보 우려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핵 사용 결정권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장치 마련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해상 다국적군(MLF) 창설 등의 아이디어도 검토됐지만 결실을 보지 못했고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는 1960년 핵실험에 성공하고 자체 핵무장에 나서기도 했다.

1966년 12월 나토 NPG의 창설은 이런 배경에서 이뤄졌다.

핵을 갖지 않은 동맹국들과도 함께 핵 정책을 기획,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한미도 ICBM을 비롯한 북한의 급속한 핵능력 증강으로 미국의 대(對)한국 확장억제 공약이 도전에 처한 가운데 핵협의그룹(NCG)을 출범시켰다.

연원부터 나토 NPG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은 전술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신형 KN계열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전술유도무기 등으로 남한을 선제타격할 수 있다는 위협을 가하며, 일본과 괌 미군기지, 미 본토를 타격할 신형 ICBM 등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고체연료를 사용한 신형 ICBM '화성-18형'을 첫 시험발사하며 미국의 선제공격 시 대미 '핵반격'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미국은 나토처럼 한국에 전술핵을 직접 배치하는 방안에는 선을 긋고 있다.

자체 핵무장에 대한 국내 여론의 요구가 높지만 이를 위해 한국이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서 탈퇴하는 것은 한미 모두에게 선택하기 어려운 옵션이다.

이런 가운데 현실적 대안으로 협의 체계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한국의 발언권을 제도화함으로써 확장억제 실효성을 높이는 길을 택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한미 NCG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운영될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정부는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등 한미 간에 이미 존재하는 확장억제 협의 기제보다 밀도와 빈도를 높여 더욱 실질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EDSCG는 한미 외교·국방 당국의 차관급 인사 4명이 '2+2'로 모이는 형태이기 때문에 회의를 자주 열기가 어려웠다.

반면 NPG는 회원국 국방장관들의 정기 회의를 중심으로 운영되지만 별도의 상설 지원조직도 존재한다.

일종의 사무국 역할을 하는 실무그룹이 1968년 구성됐다.

NCG가 NPG 같은 모델을 지향한다면 상시 협의가 가능하도록 상설 조직에 가까운 형태를 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EDSCG의 차관급보다 급을 격상한다면 상시 협의는 상대적으로 어려워질 수 있다.

다만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 이행 의지를 확인하려면 고위급 협의도 필요하기 때문에 고위급과 실무급이 병행되는 형태로 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NCG 창설 등 한미 확장억제 강화 내용에 중국은 달갑지 않은 반응을 보일 것으로 예상돼 앞으로 한중관계에 영향이 있을지도 관심이다.

중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동맹 중심 안보 구조가 강화되는 것에 반발해 왔다.

한미 연합훈련 등이 북한을 자극할 수 있어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등에서 펴 왔다. 여기엔 한미동맹의 대응태세 강화가 북한뿐 아니라 자국 견제 성격도 있다는 경계감도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