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대의 글쓰기란…"더 많이 쓰려는 욕심 내려놔야"[노경목의 미래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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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스마트 브레비티(smart brevity)>오늘날 글로 쓰여진 콘텐츠는 유튜브와 넷플릭스, 틱톡과 경쟁하고 있다. 하루 24시간이라는 정해진 조건에서 자극적인 동영상 콘텐츠 이상의 주목을 끌 수 있어야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폴리티코, 악시오스 창업자들
보다 짧고 간결한 글쓰기를 주장
"독자의 시간, 아껴주는 글이 팔릴 것"
한국어로 '똑똑한 간결성'으로 번역할 수 있는 <스마트 브레비티(smart brevity)>에서 저자들은 독자의 주목을 끌기 위해 글의 내용 뿐 아니라 서술 방식에서도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콘텐츠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음에도 200년 전과 비교해 달라지지 않은 텍스트 작성 방식이 문제라는 것이다.지난해 9월 미국에서 출간된 <스마트 브레비티>는 언론계를 중심으로 여러 나라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내용도 파격적이지만 최근 미디어 산업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매체들의 비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짐 밴더하이 등을 필두로 한 3명의 저자들은 2007년 미국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의 창업과 성장에 참여했다. 2017년에는 뉴스레터 서비스 악시오스를 함께 창업하기도 했다. 폴리티코는 10억달러, 악시오스는 5억2500만달러에 매각됐다. 언론계에서는 전례를 찾기 힘든 연속 창업에 성공한 것이다.
<스마트 브레비티>에서 소개하는 폴리티코와 악시오스의 성공비결은 간결성이다. 폴리티코의 핵심 유료 서비스인 '폴리티코 프로'는 200 단어, 악시오스는 300개 단어 이하로만 기사를 작성했다.이같은 서술 방식은 독자들의 콘텐츠 소비 행태에 대한 면밀한 관찰의 결과다. 연구에 따르면 독자가 클릭한 콘텐츠를 읽는데 소비하는 시간은 평균 15초에 불과했다. 스마트폰에서 뉴스 콘텐츠를 클릭한 독자의 80%는 490단어까지만 읽었다. "대부분의 텍스트는 '스캔'될 뿐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들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독자들이 읽는 범위 내에서 콘텐츠가 완결되도록 가능한 짧고 간단하게 쓸 것을 저자들은 주문한다. 지금까지의 글쓰기 습관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글의 길이가 글 내용의 깊이 및 중요성과 비례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긴 글은 작성자의 시간과 에너지를 빨아들이지만, 정작 독자는 이같은 글의 대부분을 읽지 않는다.
콘텐츠가 넘쳐 나는 세상인만큼 각자는 관심을 가진 콘텐츠도 충분히 소비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부족하다. 그만큼 읽는 이의 시간을 아껴주는 글쓰기가 독자들의 이목을 끌 수 밖에 없다는 저자들의 주장이다.이를 위해 꼭 필요한 단어만 남기고 불필요한 수식어는 삭제할 것을 권한다. 일반적인 글쓰기 역시 스마트폰에서 읽기 쉽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글에서는 가장 먼저 '새로운 것(new)'과 '왜 읽어야 하는지(why)'를 독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콘텐츠를 접하며 무엇이 중요한지는 물론, 그것에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가능한 빨리 이해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들은 6개 단어 이하로 구성되는 짧고 간결한 표제를 던지고, 다음에는 새로운 팩트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 제시할 것을 요구한다. 뒤이어 '이 내용이 왜 중요한가(why it matters)'를 3~4문장 이내로 설명해야 한다.여기까지 살펴본 독자라면 그 이후에 따라오는 내용을 더 읽을지 안 읽을지 결정할 수 있다.배경 지식에 대한 이해를 추가로 필요로 하는 독자들을 위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이 뒤따른다. 해당 정보가 필요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빨리 파악할 수 있도록 한만큼 모든 독자를 만족시키는 글쓰기다.
이같은 글쓰기 방식은 단순히 언론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회사 보고서부터 이메일 작성까지 모든 글쓰기에 응용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JP모건부터 NBA 사무국까지 <스마트 브레비티>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글쓰기 방법을 업무에 도입하고 있다.책에서도 여러 구체적인 예를 들어 어떻게 '똑똑한 간결함'을 다양한 텍스트에 적용할 수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간결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과거보다 고민할 부분이 늘어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짜여진 틀에 내용을 채워넣는 과정인만큼 글쓰기 시간은 짧아진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저자들은 <스마트 브레비티>를 저술하면서도 자신들의 독특한 글쓰기 방법을 사용했다. 책을 읽는 동안 여기에 맞는 글쓰기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다는 점도 책의 장점이다.
다만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장점이 잘 전달되지 않았다. 책에 사용되는 문장이 간결해지고 압축적이 된만큼 번역 작업은 한층어려워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원본을 읽어보지 않는다면 이해하기 힘들거나 뜻이 통하지 않는 내용이 번역본에서 종종 발견된다.예를 들어 '간결은 자신감이다. 장황은 두려움이다'는 귀절은 '간결한 글은 자신감을 의미하고, 긴 글은 (충분한 내용을 전달하지 못했다는) 두려움을 의미한다'는 말로 풀어냈으면 어땠을까 싶다. 간결한 글쓰기가 궁금하다면 원본도 함께 보길 권한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