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위해 쓴 교향곡…베토벤은 왜 갈기갈기 찢어버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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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19
김수현의 마스터피스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나폴레옹 존경했던 베토벤
그가 황제로 즉위하자 실망
"야망만 채우는 폭군 되겠군"
희대 명작 교향곡 3번 '영웅'
원래 작품명은 '보나파르트'
베토벤이 각별히 애정한 곡
180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황제로 즉위하자 베토벤은 자신의 악보 표지를 찢어버리며 이렇게 소리쳤다. ‘보나파르트’라는 문구가 선명히 적힌 그의 세 번째 교향곡 표지는 그렇게 바닥에 던져져 한참을 나뒹군 뒤에야 비로소 움직임을 멈췄다. 부조리한 세상을 변화시킬 영웅이라 믿었던 보나파르트에 대한 베토벤의 존경심이 무너져내리는 순간이었다.그렇다. 애초에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에로이카)은 보나파르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쓰인 작품이었다. 지독한 공화주의자로 유명했던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의 계승자를 자처한 보나파르트가 군주제에 맞서 유럽의 민중에게 자유와 평등을 가져다줄 인물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랬던 그가 자신의 손으로 왕관을 머리 위에 올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베토벤은 크게 좌절했다. 그 즉시 자신의 곡에서 보나파르트의 흔적을 지워버린 베토벤은 이후 작품의 새 제목으로 ‘영웅’이란 문구를 적어넣었다. 특정 개인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할 만한, 시대를 초월할 만한 이상적인 존재에게 이 곡을 바치겠다는 의미였다.
‘장송 행진곡’으로 유명한 2악장에서는 악곡 전반에 깔린 저음역의 어둡고도 침울한 선율이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전진하는 영웅의 무거운 발걸음을 드러낸다. 악곡 중간에 등장하는 선명하고도 맑은 오보에, 플루트 선율은 영웅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순간을 회상하는 장면을 담은 듯 아련한 인상을 남긴다. 3악장은 스타카토(각 음을 짧게 끊어서 연주)로 이뤄진 선율과 대범한 악상 변화에서 역동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악곡이다. 특히 호른의 광대한 선율은 오로지 승리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군대의 행진을 표현해내듯 경쾌하다.
첫 소절부터 빠른 속도로 음표를 떨어뜨리며 묘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마지막 악장. 피치카토(현을 손끝으로 튕겨서 연주)로 이뤄진 선율과 간결한 리듬, 거대한 악상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면서 마치 영웅의 탄생을 축하하는 듯한 환희를 펼쳐낸다.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등장하는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의 풍성하면서도 따뜻한 앙상블에서는 베토벤의 깊은 서정성을 마주할 수 있다. 악곡의 끝에 다다랐을 무렵 호른과 트럼펫의 울림을 신호탄으로 질주하는 현악기와 목관악기의 열정적인 선율, 순식간에 음량을 키우며 만들어내는 호화스러운 색채에 온 감각을 집중한다면 베토벤이 표현하고자 한 영웅의 장대한 서사시를 온전히 맛볼 수 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