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장땐 中과 '외교적 마찰' 우려…"현실적으로 최상의 협상"
입력
수정
지면A4
'워싱턴 선언' 전문가 평가는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 선언’을 통해 발표한 ‘한국형 확장억제 정책’의 핵심은 핵협의그룹(NCG·Nuclear Consultative Group) 창설과 전략핵잠수함(SSBN) 등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수시 배치다. 미국은 이 선언을 통해 핵 자산의 기획·실행 과정 전반에서 한국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했다. 외교가에서는 “현실적으로 최상의 협상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핵협의체 1년에 네 차례 회의
美전략자산 한반도 상시 배치
"확장억제 신뢰 높일 중요 조치"
○바이든 “北 핵공격 시 정권 종말”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핵 관련 논의에 특화한 고위급 상설 협의체인 NCG 창설을 골자로 한 ‘워싱턴 선언’을 채택했다. 양국은 NCG를 통해 미국 핵 자산의 기획·실행 과정 전반을 함께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NCG는 차관보급 협의체로 운영되며 1년에 네 차례 분기별로 정기회의를 연다. 회의 결과는 양국 대통령에게도 보고된다.윤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미 양국은 북한의 핵공격 시 즉각적인 정상 간 협의를 하기로 했으며, 이를 통해 미국의 핵무기를 포함해 동맹의 모든 전력을 사용한 신속하고,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을 취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도 “북한이 핵공격을 감행하면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운용 중인 ‘핵기획그룹(NPG)’과 비교했을 때 한국에 전술핵이 직접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군당국자는 “NPG는 다자간 협의체로 만장일치로 의사결정을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핵운용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이뤄질 수 없다”며 “NCG의 경우 양자 간 협의체로서 다른 어디에도 없는 한국 맞춤형 확장억제책”이라고 말했다.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장착해 즉시 핵보복할 수 있는 SSBN은 한반도 인근에 정례적으로 배치된다. SSBN의 한반도 전개는 40년 만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략자산을 거의 정례적으로, ‘아주 자주’ 한반도에 배치하겠다는 계획이 (양국 간) 합치가 돼 있다”고 설명했다. SSBN은 24개의 SLBM 발사관을 갖추고 있는 데다 은밀하게 이동해 정밀한 타격이 가능한 만큼 억제 측면에서 탁월하다는 평가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우리 국민이 사실상 미국과 핵을 공유하면서 지내는 것으로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확장 억제의 신뢰성·실효성 강화
전문가들은 워싱턴 선언이 확장 억제에 대한 신뢰성과 실효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했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개발해 미국 본토를 핵으로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면서 미국이 자국 피해를 무릅쓰면서까지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많았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기 위해 전술핵을 재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배경이다.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은 이제까지 ‘안전보장을 해준다고 했는데 왜 불안해하느냐’는 반응을 보여왔는데, 한국이 불안해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움직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정책 조정관은 27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확장억제는 ‘심리’에 관한 것”이라며 “확장억제 과정에 한국 목소리가 더 많이 반영되도록 한 NCG는 확장억제의 신뢰도를 높이는 중요한 추가 조치”라고 평가했다.전술핵 재배치가 중국 등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할 때 최선의 대책이 도출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한국이 핵무장을 선택했을 때 얻는 이익보다 외교적으로 받을 불이익이 더 크다”며 “현실적으로 최상의 협상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준수를 재확인하면서 스스로 ‘핵 족쇄’를 강화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의 제7차 핵실험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국가 생존을 위해 NPT를 탈퇴할 수 있는 권리마저 자발적으로 포기한 것은 유감스러운 부분”이라고 했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