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커피 한잔할까?" 2030 북적…요즘 '핫'한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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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리단길 방문객 대부분 2030 외지인"저기 천마총 앞에서 커피 한잔할까."
올해 벚꽃 축제 22만명 모여
상가 권리금 33㎡(10평)에 1억
3년 만에 2배 이상 뛰어
중개업소 "이마저도 6개월 기다려야"
고즈넉한 한옥 건물 사이로 젊은 남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달 열린 벚꽃 축제에만 22만 명이 모였다는 이곳은 천마총·고분과 같은 역사 유적들에 힙한 카페들이 어우러진 '황리단길'이다. 고풍스런 건물 앞에서 사진을 남기기 위해 2030세대가 거리를 가득 메운 황리단길의 특별함은 '위치'에 있다.
고분 보며 마시는 커피 한 잔에 2030 '북적'
지난 27일 오후 4시께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에 일명 '황리단길'이라고 불리는 거리를 찾았다. 황남동 이름을 딴 '황남 옥수수' '황남 쫀드기' '황남빵' 등 경주 지역 간식을 파는 가게들이 곳곳에 위치했다. 십 원짜리 동전에 불국사 다보탑 문양이 새겨진 '십원빵'을 먹기 위해 줄 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이날 서울에서 왔다는 김모 씨(28)는 "황리단길 근처에 볼거리(불국사·첨성대·석굴암)와 즐길 거리가 풍부해서 좋다"며 "다음에 가족들이랑 꼭 다시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에서 왔다는 이모 씨(30)는 "경주는 차로 오면 관광 거점을 중심으로 동해안까지 고루 둘러볼 수 있어서 방문하기 좋다"고 이야기했다. 본래 황리단길은 노포와 주점들로 가득해 젊은이들의 발길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 2016년 황리단길이 생겨나기 전만 해도 경주를 대표하는 거리라고 하긴 어려웠다. 지난해 MBC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 방영되는 등 여러 방송을 통해 '뉴트로(new+레트로) 상권'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역사 유적 근처에 거리가 형성됐다는 점이 젊은 층을 끌어들였다.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역사 유적(첨성대·불국사)이 '전통적 부분'을 채웠고 이후 의도적으로 예스럽게 조성된 힙한 점포들(문방구 등), 그리고 지역자원을 그대로 살리는 콘셉트의 점포들(한옥 주택)이 외부 고객을 유인했다.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골목관광상권 경쟁력분석 결과서'에 따르면 2021년 2분기 황리단길 관광객 수는 47만명으로 이 가운데 20~30대 외부 여성의 방문이 가장 많았다.
최근까지도 주 고객은 20대 여성이었다. 지난해 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상권분석 보고서를 보면 경주시 주요 상권 '황리단길'에 위치한 카페 업종의 월평균 매출건수 대비 매출액은 20대가 40.3%(629만원)로 가장 많았다.
경주, 인천 제치고 국내 여행 인기 지역 5위 차지
경주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가장 많이 성장한 지역으로 꼽힌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사이에선 그저 추억의 수학여행지였다면 지금은 달라졌다. 올해는 인천을 제치고 여행 인기 지역 5위를 차지하기도 했다.렌터카 플랫폼 카모아가 올해 1~3월 예약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경주 렌터카 예약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52% 증가했다. 지난해 5위였던 인천은 동기간 25% 증가해 올해 5위 자리를 경주에 내줬다.여행 업계에선 경주 여행객을 잡기 위해 분주하다.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 티몬은 올해 벚꽃 시즌 나들이 대표 상품으로 '경주월드 벚꽃 시즌 종일 이용권'을 특가로 판매했고 위메프는 내달 황금연휴를 앞두고 경주를 대표 여행지로 꼽아 '라한 셀렉트 경주'를 대표 여행상품으로 내놓기도 했다. 여기어때는 올해 처음으로 경주 벚꽃 시즌에 맞춰 여행과 음악을 결합한 여행 상품 '콘서트팩 경주'를 판매하기도 했다.
이 영향인지 올해 1분기(1~3월) 여행 플랫폼 여기어때에 경주 지역 호텔 숙박 부문 예약 건수는 전년 대비 10% 증가했다.
"억대 상권으로 살아남은 곳은 황리단길 뿐"
MZ 세대 사이에서 '핫'한 여행지로 떠오르자 황리단길 중심으로 힙한 카페와 식당, 소품가게 등이 늘어나는 추세다. '로컬 브랜드 리뷰 2023' 보고서의 경주시 통계에 의하면 숙박 및 요식업이 전체 산업의 약 1/4을 차지할 만큼 도시의 많은 부분이 관광업에 집중되어 있다.업계에선 '억대 상권으로 현재 살아남은 곳은 황리단길 뿐'이라는 얘기도 있다. 이에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상권으로 새로 진입하려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27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올해 2월 비알코올(카페) 업소 수는 68개로 작년 동월 대비 6.3% 증가했다.
이날 이 지역 A공인 관계자는 "황리단길 주변 상가는 모두 권리금이 있다고 보면 된다"며 "황리단길 메인 거리(황리단길 초입부터 대릉원까지 이어지는 거리)는 33㎡(10평)에 1억, 보증금 3000만원 월세 200만원 정도다. 메인 거리에서 벗어나도 권리금만 7000만~1억5000만원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권리금은 물론 매매가도 3년 만에 2배 이상 뛰었다. 그런데도 메인 거리는 웨이팅이 현재 4~5팀 정도 있어 반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게 인근 중개업자들의 말이다.
인근 B중개업소 관계자는 "2016년 초기만 해도 5000만원이었던 권리금은 계속 오름세를 보여 2019년도에 최고점 1억대를 찍었다"며 "특히 메인 거리는 코로나 19 팬데믹(대유행) 때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황리단길은 광안리와 함께 전국 1등 상권으로 불린다"며 "서울이나 부산, 대구 등 외부 상인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다만 너무 급격하게 성장하다 보니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급격히 뛰어버린 임대료에 기존 상인들이 외부로 쫓겨나는 경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골목관광상권 경쟁력분석 결과서'에 따르면 2021년 황리단길 내 점포 개업률은 5.6%(개업 점포 17개), 폐업률은 3.6% (폐업 점포 11개)로 개업 점포가 많았지만 폐업률이 다른 업종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황리단길 상인들은 여전히 불안함에 떨고 있었다. 황리단길에서 5년째 카페 '가배향주'를 운영 중인 김정렬 대표는 "코로나19 당시 관광객 발길이 끊겨 인근 상가가 주춤했다"며 "언제 또 관광객이 끊길지 모르기에 향후 2호점은 황리단길이 아닌 다소 저렴한 주거지 쪽에 오픈할 계획이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지역 정체성을 반영한 골목 관광 콘텐츠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모종린 교수는 "경주의 유적 및 건축 자원은 현재 경주 관광 생태계의 큰 중심축이자 좋은 모티브가 되고 있다"면서도 "앞으로 로컬 관광을 활성화하려면 (황리단길 외에) 머물고 싶은 동네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상태라면 황리단길이 아닌 다른 대체 상권을 찾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모 교수는 "실제로 황리단길의 영향으로 골목 상권 문화가 성건동, 불국사, 황오동 읍성앞, 감포항으로 번져 나갔다"며 "앞으로 황남동이 가야 할 길은 1단계 식음료(F&B) 상권에서 2단계 로컬 브랜드 상권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경주=이현주 한경닷컴 기자 wondering_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