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투어 대회 초청으로 이어진 배상문의 절실함

배상문 / KPGA 제공
배상문(37)은 한 때 한국의 간판 골프 선수였다. 한국(9승)과 일본(3승) 무대를 평정한 뒤 2012년 건너간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도 2승을 거두며 소위 잘 나갔다. 그러나 군복무 이후 '에이징 커브'를 탄 듯 급격히 기량이 떨어졌다. 지금은 나갈 수 있는 PGA투어 대회가 거의 없고, 콘페리(2부)투어에서도 시드가 후순위로 밀려 출전권을 따내기가 녹록지 않다.

그런 배상문은 최근 손으로 직접 꾹꾹 눌러 담은 편지를 썼다고 털어놨다. 수신처는 다음달 11일 열리는 AT&T 바이런넬슨 조직위원회. 바이런넬슨은 배상문이 2013년 PGA투어 첫 승을 거둔 바로 그 대회다. 28일 DP월드투어 코리아챔피언십이 열린 인천 송도 잭니클라우스GC에서 만난 그는 "역대 우승자로서 꼭 한 번 경기에 뛰고 싶다고 했더니 (바이런넬슨 측에서) 흔쾌히 초청을 해줬다"고 말했다.총상금 950만달러가 걸린 A&T 바이런넬슨은 메이저대회 5승을 거둔 골프 전설 바이런 넬슨의 이름을 따서 만든 대회다. 1944년 출범했을 정도로 역사가 깊어 '특급 대회'는 아니라도 다수의 톱랭커들이 출전하고 싶어하는 큰 대회다. 그런 대회 조직위 입장에선 초청할 선수를 신중히 고를 수 밖에 없다. 양 손을 위 아래로 크게 벌린 배상문은 "해마다 (손 벌린 크기만큼 정도 되는) 이정도 '레터'가 쌓인다. 그런데 나를 초청해 준 것을 보니 진심이 통한 것 같다"며 웃었다.

배상문은 부진했던 지난 몇 년의 시간에 대해 "골프와 권태기를 보낸 것 같다"고 했다. 그런 권태기에서 벗어난 계기는 우연히 출전권이 있는 것을 알게 된 아시안투어 인터내셔널 시리즈였다. 배상문은 "카타르와 오만 등 먼 곳을 다니면서 예전에 알던 아시안투어 선수들을 만나 경기하니 정말 반가웠고 새로웠다"며 "그러면서 골프가 재밌어졌다.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배상문은 모처럼 찾은 한국에서도 준수한 성적을 내고 2언더파 공동 32위로 가볍게 컷을 통과했다. 공동 선두 그룹과 6타 차여서 역전 우승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특히 이날 하이라이트는 '배상문 홀'로 불리는 18번홀(파5)이었다. 배상문은 8년 전인 2015년 프레지던츠컵 최종일 싱글매치플레이에서 '범프 앤 런' 샷을 시도하다 뒤땅을 치는 실수를 범했다. 이 실수로 인터내셔널팀의 무승부도 날아갔다. 이날도 비슷한 위치에서 세 번째 샷을 쳤고, 이를 홀 옆 1m에 붙여 버디로 연결했다. 배상문은 "공이 (프레지던츠컵 때와) 비슷한 곳에 떨어지자 캐디에게 '오늘 복수해야겠다'고 말했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났는데 이번에는 결과가 좋아 기쁘다"며 웃었다.

3라운드에는 비가 예보되어 있으나 배상문은 "비 예보는 오히려 중위권 선수들에게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한다"며 "잘 준비해 3라운드와 최종라운드까지 잘 해보겠다"고 말했다.

박상현(40)과 폴 야닉(독일)이 중간합계 8언더파 136타 공동 선두로 나섰다.

인천=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