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버스 왜안와] ①"운전할 사람이 없어요"…박봉·격무에 떠나는 기사들

"하루 12시간 운전해도 月200만원대"…3년 새 기사 700여명 퇴사
"대기 줄만 70m"…배차시간 늘면서 승객 불만 커져

[※편집자 주 = 대중교통의 모세혈관이라 불리는 마을버스가 각종 어려움에 부닥쳤습니다. 운수회사는 극심한 재정난과 구인난을 겪고 있고, 운전기사들은 악화한 근무 환경에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길어진 배차 시간 탓에 승객들의 불만은 커집니다.

연합뉴스는 마을버스를 둘러싼 위기 실태를 점검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2편의 기획 기사를 송고합니다. ]

"바빠요 바빠. 지금 얘기 못 해요.

"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후문 주차장에서 만난 종로 02번 마을버스 기사 김모(71) 씨는 운행을 마친 뒤 시동을 끄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날 성대 후문에서 출발해 북촌한옥마을과 안국역, 종각역, 조계사 등을 거쳐 다시 성대 후문으로 복귀하는 데까지 40분을 운행한 김씨에게 주어진 휴게시간은 5분 미만이다.

운행일지를 작성하고, 기지개 한번 켠 후에 바로 출발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운전기사 20명으로 돌아갔지만, 최근 들어 4명이 퇴사하면서 근무 시간은 빡빡해지고 휴식 시간은 짧아졌다고 한다. 화장실을 갈 짬도 안 나서 물은 최대한 적게 마신다.
정오께 출근해 자정 넘어 운행을 마친다고 한 김씨는 "출퇴근 시간대처럼 교통량이 늘어날 때는 시동도 끄지 못하고 바로 나간다"며 "배차 시간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기사가 줄면서 불가피하게 배차 간격이 늘어난 탓에 버스를 오래 기다리게 됐다는 민원도 종종 나온다"며 "운행하는 게 갈수록 쉽지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마을버스 운전기사, 5년 새 3천명대서 2천명대로 '뚝'
지하철이나 시내버스가 가지 못하는 험로나 골목길 등을 누비며 대중교통의 모세혈관이라 불리는 마을버스가 각종 어려움에 몸살을 앓고 있다.

대중교통 요금 동결과 기름값 상승 등으로 인해 주요 운송회사의 재정이 악화했고, 버스 기사들은 열악한 근무 환경 등을 이유로 줄줄이 빠져나가고 있다.

이에 따라 불편을 호소하는 승객들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서울시에 따르면 관내 마을버스 운전기사는 2019년 3천496명에서 지난해 2천756명으로 26.9%(740명) 감소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 3천291명을 시작으로 매년 수백명씩 줄어든 결과다.

반면 같은 기간 노선 수는 249개에서 250개로, 차량 대수는 1천634대에서 1천662대로 증가했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마을버스 운수회사 대표 A씨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기사들이 (보수가 상대적으로 넉넉한) 배달업계로 많이 빠졌다"며 "처우가 워낙에 낮고, 근무 환경도 팍팍해지다 보니 채용이 어렵다"고 말했다.

마을버스 운수업체 관계자들이 꼽는 구인난의 근본적인 원인은 열악한 처우다.

마을버스 임금 단체협약에 따라 책정된 지난해 기준 서울 운전기사 임금은 292만원으로, 30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만난 마을버스 기사들은 이처럼 급여는 개선되지 않지만, 근무 강도는 세졌다고 입을 모았다.

신촌역을 중심으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과 홍은동 등을 도는 서울 마을버스 03번 운전기사 양래길(67) 씨는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다 5년 전 정년퇴직을 하고 마을버스로 운전대를 바꿔 잡았다"며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고되다"고 말했다.
오후 1시께 운행을 시작한 그는 약 40분이 걸리는 노선을 한 바퀴 돈 뒤 7∼8분을 쉰다.

출퇴근 시간이나 전철 막차 시간처럼 교통량이 늘어날 때는 이마저도 짬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저녁 시간 40분을 제외하면 제대로 쉴 틈이 없다.

마감 시간은 다음날 0시 15분이다.

기존 24명이었던 운전기사가 최근에는 20명까지 줄어든 탓이다.

양씨는 "이렇게 주 6일을 근무하지만, 시내버스와는 달리 초과 수당도 없고, 한 달에 쥘 수 있는 월급도 300만원 미만"이라며 "업계에서도 마을버스 노동 강도가 세기로 악명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오죽하면 마을버스 운전으로 3년 버티기가 힘들다는 얘기가 나오겠냐"며 "적어도 일한 만큼이라도 대우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 마을버스 운송사업조합 홈페이지를 파악한 결과, 최근 한 달간 올라온 구인·구직 게시물은 30건에 이르렀다.

서대문구의 한 운수업체 관계자는 "지원자가 없어서 채용 공고 글을 반복해서 올리고 있다"며 "1종대형면허와 버스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경력이 없어도 괜찮다고 명시했으나 지원서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 "버스 언제 오나"…기다림 길어지는 승객들
이처럼 열악한 근무 환경을 이유로 운전기사가 떠나자 운수업체는 궁여지책으로 배차 간격을 늘리거나 노선을 줄이고 있다.

서울 금천구에 있는 '우리마을버스'의 임송렬 지부장은 "지난해부터 평균 배차 간격을 6∼7분에서 약 10분으로 늘렸다"며 "지난해 18명에서 14명까지 기사가 줄고, 재정도 악화해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금천구를 중심으로 운행하는 '범일운수' 역시 지난해 11월부터 독산역과 가산디지털단지역 등을 잇는 일부 노선 운행을 잠정 중단했다.

실제로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승객들은 갈수록 버스 타기가 어렵다고 호소한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서 종로 08 마을버스를 탄 송모(74)씨는 "광장시장에 저녁거리를 사러 나왔다"며 "여기는 언덕이 많아 이 버스가 없으면 노인들이 시내까지 병원이나 시장, 약국 등에 나서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송씨는 "갈수록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진 게 아쉬울 따름"이라며 "그래도 다니는 게 어디냐"고 덧붙였다.

이 버스를 운영하는 '와룡운수'는 운전기사가 30명에서 17명으로 줄면서, 배차간격을 3∼4분에서 7∼8분으로 늘렸다.

서울대입구역에서 만난 박건희(21·서울대 역사교육과) 씨도 "(대면 강의를 시작한 이후) 등굣길에 관악 02 마을버스를 타는 게 쉽지 않다"며 "비가 내린 날에는 마을버스 대기 줄이 70m까지 이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배차간격을 좀 줄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고 아쉬워했다.

운송회사 측은 이러한 불만은 이미 알고 있지만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와룡운수의 권태성(44) 과장은 "버스 보기가 힘들다는 승객의 목소리는 우리도 인지하고 있다"며 "승객은 줄고, 유지비는 늘면서 갈수록 마을버스 운영이 녹록지 않다"고 말했다.

권 과장은 "버스비 인상과 정부나 지자체의 직간접적인 지원이 절실하다"며 "마을버스가 공익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 달라"고 호소했다.
권지원 한국교통안전공단 교수는 "운영난을 이유로 폐업하는 마을버스 운수 회사가 심심찮게 보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며 "결국 공적 지원을 늘리거나, 요금을 인상하는 방법뿐인데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광역 교통망이 닿지 않는 곳에 투입되는 게 바로 마을버스"라며 "저소득층이나 고령층 등 교통약자 발이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상황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