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핫픽' 호퍼 전시회서 꼭 봐야 할 베스트 5 [전시 가이드]

서울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에드워드 호퍼, 햇빛 속의 여인, 1961
불 꺼진 어두운 방, 살짝 열린 문 틈새로 들어오는 빛, 그 속에 서 있는 벌거벗은 여인…. 최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이 그림을 자주 보셨을 겁니다. 바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를 다녀온 관람객들의 ‘인증샷’입니다.

호퍼 전시는 요즘 ‘미술 좀 아는 사람들’이라면 꼭 들리는 곳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미술관 앞에 ‘오픈런’을 위한 긴 줄이 늘어설 정도죠. 전시 개막 전 사전예매 티켓만 13만 장 넘게 팔렸고, 평일에도 하루 3500~4000명씩 전시장을 찾는다고 하네요. 전시 규모는 상당합니다. 유화 수채화 드로잉 판화 등 160여 점뿐 아니라, 아카이브 자료 110여 점까지, 호퍼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작품들이 두 개층에 걸쳐 펼쳐집니다.

‘이 중에서 꼭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은 뭘까?’ 규모가 꽤 크다 보니 이런 고민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이 분들을 위해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와 함께 ‘이번 전시에서 꼭 봐야 할 호퍼 작품 Best 5’를 꼽아봤습니다.

① 호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푸른 저녁'(1914)

에드워드 호퍼, 푸른 저녁, 1914
“이번 전시에서 딱 하나만 볼 수 있다면, 뭘 고르시겠어요?” 취재를 위해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아무래도 ‘푸른 저녁’(1914) 아닐까요?”

‘파리’ 섹션에 있는 이 그림을 찾으려면 하나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삐에로 분장을 한 남성이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모습이죠. 호퍼는 1906~1910년 파리를 세 차례 방문하면서 봤던 광경을 이 그림에 담아냈습니다.

왜 하필 이 작품일까요? 이 그림이 특별한 이유는 호퍼가 생전에 딱 한 번만 전시를 했기 때문입니다. ‘내 그림 솜씨를 보여주겠다’며 야심차게 폭 1.8m에 달하는 긴 캔버스에 그렸는데, 막상 1915년 그룹전에서 선보이자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분이 상한 호퍼는 다시는 이 작품을 공개하지 않았죠.이 작품은 나중에 재평가받게 됩니다. 호퍼의 작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미술관이자, 이번 전시를 공동 기획한 휘트니미술관은 “‘군중 속 내면의 고독’이라는 호퍼의 작품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작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고독이라는 깊고 심오한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한 거죠. ‘고독의 화가’란 호퍼의 별명이 실감나는 작품입니다.

② 美 대통령이 '인증샷' 찍은 '벌리 콥의 집…(1930~33)'

에드워드 호퍼, 벌리 콥의 집 사우스트루로, 1930-33
호퍼에게는 또 다른 별명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 국민 화가’죠. 그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바로 ‘케이프코드’ 섹션에 있는 ‘벌리 콥의 집, 사우스트루로’(1930~1933)입니다. 초록색 언덕과 들판을 배경으로 한 나무 집 그림은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에 걸려있던 그림입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 그림을 바라보는 뒷모습을 백악관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죠.

그림의 배경은 메사추세츠주 케이프코드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 ‘트루로(Truro)’입니다. 1930년 여름, 호퍼가 아내와 휴가를 보내기 위해 트루로를 방문했는데, 그곳의 우체국장인 벌리 콥의 집을 빌렸다고 합니다. 어찌나 마음에 들었던지 호퍼 부부는 이후 세 차례나 더 이 집을 방문했다네요. 호퍼는 특유의 감각적인 색채와 붓질이 잘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호퍼의 전반적인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힌트’를 주기도 합니다. 뒤에 있는 언덕과 들판은 ‘자연’을 상징하고, 그 앞의 집은 ‘문명’을 뜻합니다. 이 그림처럼 호퍼는 자연과 문명을 한 캔버스에 담곤 했습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처럼 이 그림을 감상하는 뒷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보면 어떨까요.

③ 호퍼가 가장 사랑했던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

에드워드 호퍼, 이층에 내리는 햇빛, 1960
호퍼의 밝고 감각적인 색채를 더 느끼고 싶다면 ‘뉴욕’ 섹션에 있는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을 추천합니다. 호퍼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은 작품입니다. 햇빛이 환하게 든 집 테라스에서 남녀 한 쌍이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그림입니다. 유화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맑고 청명한 색감이 두드러집니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건 바로 ‘빛’입니다. 호퍼는 집 앞면과 옆면의 색채 대비를 통해 빛을 감각적으로 구현했습니다.

같은 섹션에 있는 ‘밤의 창문’(1928)에서도 이런 기법을 볼 수 있습니다. 건물 밖에서 안을 몰래 엿보고 있는 듯한 그림이죠. 호퍼는 어두컴컴한 바깥과 환하게 불이 켜진 실내를 대비해 사실적으로 빛을 그려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은 ‘스릴러 소설의 삽화 같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에드워드 호퍼, 밤의 창문, 1928

④ 수채화의 매력을 알고 싶나요?...'맨해튼 다리(1925~1926)'

에드워드 호퍼, 맨해튼 다리, 1925-26
지금까지 소개한 작품은 다 유화입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기획한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가 기자간담회에서 유화만큼이나 강조했던 건 바로 ‘수채화’였습니다. “호퍼는 유화로 유명했지만, 그의 수채화는 유화만큼 아름답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호퍼가 그린 수채화의 매력을 마음껏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맨해튼 다리’(1925~1926)는 그 중에서도 대표작입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뉴욕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에요. 당시 뉴욕은 고층빌딩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지하철과 자동차가 막 보급되던 시기였습니다. 호퍼는 그 모습을 담기 위해 ‘문명’을 상징하는 맨해튼 다리와 자동차를 캔버스에 그렸습니다.

특히 수채화는 그가 좋아하던 기법이었습니다. 호퍼는 젊은 시절 ‘잘 나가는 삽화가’였는데, 정작 자신은 그 일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40대가 돼서야 본인이 진짜 그리고 싶었던 수채화를 시작했죠.

자신이 좋아하던 걸 그려서 그런지, 이 그림은 수채화만의 매력이 참 잘 드러납니다. 미술계에선 “이 작품은 꼭 실제로 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물기를 한껏 머금은 수채화의 아름다움이 사진으로는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죠.

⑤ 호퍼의 유일한 뮤즈, '햇빛 속의 여인(1961)'




에드워드 호퍼, 햇빛 속의 여인, 1961

마지막으로 꼭 봐야 할 작품은 가장 먼저 소개했던 벌거벗은 여인입니다. 제목은 ‘햇빛 속의 여인’(1961). 마지막 1층 전시장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작품이에요. 자연스럽게 이런 궁금증이 떠오르죠. ‘이 여자는 도대체 누구야?’

정답은 호퍼의 아내, ‘조세핀 호퍼’입니다. 미술을 전공했던 조세핀은 호퍼와 눈이 맞아, 만난 지 1년 만인 1924년 그와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호퍼 미술인생의 유일한 ‘여성 뮤즈’입니다. 호퍼가 말년에 그린 이 걸작도 조세핀이 실제 나체로 서 있으면서 모델이 되어줬다고 합니다.

물론 둘의 사이가 항상 좋았던 건 아닙니다. 어떨 땐 말다툼을 하다가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림 실력이 뛰어났던 조세핀을 호퍼가 질투해서 일부러 내조만 시켰다’는 비판도 일각에서 나옵니다.하지만 확실한 건 호퍼가 거장이 되기까지 조세핀의 역할이 컸다는 것입니다. 호퍼가 수채화를 시작한 것 역시 조세핀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네요. 미술관이 마지막 섹션에서 조세핀을 모델로 한 드로잉과 수채화를 배치한 이유입니다. 둘이 중고차를 사서 이곳저곳 여행을 다녔던 기록, 손 잡고 함께 봤던 공연 티켓 등도 전시장에 놓여있습니다.
호퍼 부부가 관람한 연극 티켓 모음, 1925-36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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