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한국서 열린 DP월드투어…성공 뒤엔 이 사람 있었다

이승호 PGA 아시아태평양 대표

PGA서 동양인 첫 대표에 올라
"조조·제네시스 찾아 후원 설득
대회 개최까지 이어져 안 믿겨"
최근 5년간 아시아는 세계 골프계가 주목하는 키플레이어로 떠올랐다. 2018년 일본 패션 브랜드 조조(ZOZO)가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대회를 열겠다고 나섰고, 현대자동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는 지난해부터 PGA투어, DP월드투어(옛 유러피언투어) 공동주관 대회인 스코티시오픈에 후원사로 참여했다. 한국 기업이 미국도 아니고 유럽 투어에 총상금 800만달러 규모의 ‘A급 대회’를 연 건 제네시스가 처음이다. 여기에 지난달 30일에는 DP월드투어와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공동주관 대회인 코리아 챔피언십이 인천 송도에서 열렸다. 1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린 DP월드투어 대회였다. 한국 골프팬들은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골퍼들의 경기를 가까이에서 직관할 수 있었고 선수들은 세계무대로 진출할 기회를 얻었다.

이 대회의 성공 뒤에는 늘 이승호 PGA투어 아시아태평양 대표(43·사진)가 있었다. 2018년 당시 떠오르는 패션기업이던 조조그룹을 PGA투어 스폰서로 영입해 기업의 격을 크게 끌어올렸고, 제네시스가 PGA투어와 함께 스코티시오픈 공동 주관사로 참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 인연으로 제네시스는 이번에 한국에서 열린 코리아 챔피언십에 흔쾌히 스폰서로 참여했다.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그는 지난해 대표로 승진했다. 2017년 아시아태평양 지부 부사장으로 PGA투어에 합류한 지 5년 만이다. 보수적인 PGA투어에서 동양인이 부사장은 물론 대표 직함을 단 건 이 대표가 처음이다. 이 대표는 1일 “국내에서 세계적인 규모의 대회가 열리게 돼 골프인으로서 기쁠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의 강점은 꽉 막힌 상황을 풀어내는 돌파력이다. 2018년 PGA투어와 6년 계약을 맺은 조조가 대표적이다. 조조와 PGA투어는 2019년 열린 첫 번째 대회 총상금으로 975만달러(약 130억원)를 책정했고, 해마다 상금을 올리는 데 합의했다.

이 대표는 “당시 조조는 한국의 ‘무신사’와 비슷한 신흥 패션 기업이었다”며 “메인 스폰서가 총상금의 약 두 배 금액을 쓰는 점을 감안하면 골프와 접점이 뚜렷하지 않은 기업이 해마다 200억원가량을 골프대회에 투자겠다고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안팎에서 우려가 적지 않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첫 대회에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8·미국)가 출전해 우승까지 하면서 역대급 흥행을 거뒀다.조조그룹을 스폰서로 영입한 것 역시 이 대표의 돌파력이었다. 마에자와 유사쿠 조조그룹 대표가 골프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찾아갔다고 한다. 그는 “일단 만나서 설명했다. 성사될 거라는 기대보다는 PGA투어를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려 했다”며 “다행히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왔고 대회 개최까지 이어져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원래 농구 선수를 꿈꿨다. 그러나 성장이 멈추면서 농구 선수를 포기해야 했고 대신 스포츠 마케팅으로 진로를 돌렸다. 미국프로농구(NBA) 아시아 사무국에서 스폰서십 매니저를 시작으로 2012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아·태 지부 본부장을 맡았다.

이 대표의 목표는 더 많은 골프대회를 아시아 국가에서 열어 세계 골프 산업에서 아시아의 영향력을 키우는 것이다. 이를 통해 더 많은 한국 선수에게 세계 진출을 위한 기회를 주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DP월드투어와 코리안투어는 한국 선수들의 DP월드투어 출전 기회를 확대하는 데 합의했다. 이 대표는 “앞으로 한국 선수들이 PGA투어와 DP월드투어 등 세계적인 무대에 진출하는 문호를 더 넓힐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인천=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