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AI는 신대륙일까, 스카이넷 서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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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원 이스트소프트 대표챗GPT 때문에 난리다. 인공지능(AI)업계에서는 “오랫동안 개발해온 것들이 하루아침에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며 허무해하고, 한편에선 어떻게 이 새로운 기술을 빨리 적용해야 할지 부산스럽기도 하다. 부모들은 자식에게 어떤 직업을 권유해야 할지 막막해한다.
20년 넘게 인터넷, 모바일, 클라우드와 같은 굵직한 변혁을 겪다 보니 새로이 쏟아지는 기술과 플랫폼이 사람들의 꿈을 담은 유행에 불과한지, 우리 삶에 천착해 세상을 바꿀 기술인지에 대한 감이 생긴 듯하다. 챗GPT로 촉발된 지금의 AI 기술혁명은 후자로, 그 파급력과 지속성이 상당할 것 같다. 게다가 이 기술은 직관적이고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터라 이해와 응용도 매우 쉽다. 투자업에 몸담은 지인은 “자율주행처럼 까다롭지도, 메타버스처럼 모호하지도, 블록체인처럼 어렵지도 않아 투자테마로도 적격”이라고 하니, 팔방미인이다.오랜 기간 이 업계에 있다 보니 ‘AI가 다음 세대에 미칠 영향’에 대해 자주 질문을 받는다. 그때마다 산업혁명 시기 증기기관이 나오고 많은 이가 위기를 느껴지만 결국은 새로운 일자리들이 생겨난 것처럼 이번 세대도 잘 극복할 것이라는 건성의 대답만 해왔었다. 하지만 얼마 전 내가 대변혁의 찬스에 집중하느라 이 문제를 너무 가벼이 여기지 않았나 하는 양심적 성찰이 삐죽 튀어나왔다. 과거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이 높아지자 개별 임금은 낮아졌고, 위기에 처한 가정은 아이까지 나서서 하루 18시간을 일했다. 이 시대가 새긴 깊은 상흔은 <올리버 트위스트> 같은 소설과 영화로 다뤄져 지금까지 읽히고 있지 않은가.
챗GPT가 미국에서 어떤 시험을 90% 등급의 성적으로 통과했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감탄은 했지만 실감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하루는 시간을 내 어려워 보이는 토익 문제 몇 개를 찾아 챗GPT에 넣어 풀어봤다. 답을 맞히는 것을 넘어 왜 그런 답을 냈는지 설명도 하고, 설명이 이해가 안 돼 물어보면 중2 때 친절했던 영어 선생님처럼 자상하고 정확하게 가르쳐준다. 심지어 비슷한 형태로 문제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지문과 객관식 선택 항목까지 작성해낸다.
영어 실력이 비루한 나조차도 영어 문제집을 만들어 출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아! 앞으로 긴장해야 할 직업과 역할이 주르륵 떠오른다. 비단 이런 경우가 영어교육만은 아닐 것이다. AI 기술은 기술적 분야에서 창작의 영역까지 영향을 주고 있으니, 폭포로 치면 나이아가라급이다.‘선조치 후보고’라는 말이 있다. 시급하거나 중요한 영역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일단 하고 보라는 얘긴데, 지금의 AI 기술을 대하는 업계의 태도가 그렇다. 이 기술의 속도에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란 위기감과 이 트렌드를 잘 타면 큰 기회가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고, 나 역시도 다급하게 ‘선조치’ 중이다.
AI가 만들어낼 거대한 신세계에 대한 기대와 우려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AI가 가져올 역사의 반복이 더 거칠어지지 않도록 기회에 대한 탐색과 더불어 우리,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한 논의도 함께 활발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