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판사 "사적 대화까지 압수 대상…기본권 침해 심각"
입력
수정
전국 영장판사 화상 간담회서 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 도입 주장
"사실상 '모든 것' 압수할 수 있는 영장 발부"…수사기관은 제도 반대이메일과 카카오톡 대화를 비롯해 사실상 모든 전자정보를 압수할 수 있는 영장이 남발돼 국민 기본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주장이 전국 영장전담판사들이 모인 회의에서 제기됐다.'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을 도입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 제도는 대법원이 추진하지만 수사기관이 반대하고 있다.
◇ "사적 대화까지 압수…어떻게 처리되는지도 몰라"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전날 '압수수색 영장 실무 관련 논의를 위한 영장전담법관 온라인 간담회'를 열었다.이 자리에는 영장 발부 여부를 판단하는 전국 영장전담판사들이 화상으로 참석했다.
발제를 맡은 법원행정처 형사지원심의관 정재우 판사(사법연수원 39기)는 대주주의 뇌물 혐의와 관련해 압수수색 대상이 된 사내변호사 A씨의 실제 사례를 제시하며 시민의 사생활 침해 위험이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해당 범죄는 A씨 입사 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A씨도 압수수색 대상이 됐다.당시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압수할 물건'의 범위는 '본건과 관련성이 인정되는 범위 내의 파일(이메일 포함), 내부 메신저 및 이메일 송수신 자료, 원격지 서버 저장 전자정보' 등이었다.
실제 현장에선 수백만 건의 파일을 선별하기가 불가능했기에, 수사기관이 전체를 가져가고 이튿날 A씨가 수사기관에 출석해 선별 작업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출석하니 선별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웬만하면 협조하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 유리하다'는 변호인의 조언에 따라 이 절차를 포기했다.결국 범죄에 관여한 적이 없는 A 변호사는 사건과 무관한 친구와 나눈 비공개 대화까지 넘겨주게 됐다.
압수수색 영장 청구는 2011년 10만8천992건에서 지난해 39만6천671건으로 3.6배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발부율도 87.3%에서 91.1%로 역시 증가했다.
정 판사는 "영장상 '본건과 관련성' 문구만으로는 압수 범위 제한이 불가하고 철저한 선별도 어려워 사실상 '모든 것'을 압수할 수 있는 영장이 발부되고 있다"며 "수사기관이 입수한 정보가 어떠한 방식으로 보관되는지, 무관 정보가 제대로 폐기되는지 알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압수수색 한 번 당한 사람은 평생 불안함에 떨며 살아야 한다는 말도 있다"며 "나쁜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논리만으로는 사생활 침해를 정당화하는 것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심문 대상은 피의자 아닌 수사기관…밀행성 해치지 않아"
정 판사는 이런 현실에서 대법원이 형사소송규칙(대법원 규칙) 개정을 통해 추진하는 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이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판사의 서면 심리 중 대상·범위·방법 등에 대한 의문점이 발생할 경우 이를 해소하거나 추가 심리를 할 방법이 없다"며 "담당 법관은 수사를 발목 잡는 부담감에 발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되고, 과도한 압수수색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정 판사는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강제수사 정보가 사전에 유출돼 수사의 밀행성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검찰·경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의 반발은 제도를 오해했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사전심문 대상은 '피의자'가 아닌 영장을 청구한 '수사기관'이 될 것이고, 절차도 비공개로 진행되기에 수사 밀행성을 확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같은 이유로 정치인 등 특정 인사에 유리한 제도라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정 판사는 수사 지연을 초래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복잡한 소수의 사안에 활용될 예정"이라며 "현재 영장 기각 후 재청구로 이어질 만한 사안은 제도가 도입되면 오히려 시간이 단축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제도를 법률이 아닌 대법원규칙 개정으로 도입하는 것이 헌법 위반이라는 주장도 반박했다.
그는 "국민 기본권을 제한하는 현재 절차에 신중을 기하자는 취지로, 반드시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보석심문, 구속영장실질심사 등 수도 없이 많은 형사절차가 대법원규칙에 규정돼 있다"고 주장했다.
정 판사는 "압수수색은 늘 사악하고 계획적인 범죄자에 대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증거인멸 우려가 큰 범죄자에겐 다소 (범위가) 넓은 영장을, 그렇지 않은 피의자에겐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적절히 운용할 수 있다"고 했다.법원행정처 관계자는 "간담회에서 공유된 의견을 정리해 향후 압수·수색영장 실무의 개선 방안 마련과 추진 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연합뉴스
"사실상 '모든 것' 압수할 수 있는 영장 발부"…수사기관은 제도 반대이메일과 카카오톡 대화를 비롯해 사실상 모든 전자정보를 압수할 수 있는 영장이 남발돼 국민 기본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주장이 전국 영장전담판사들이 모인 회의에서 제기됐다.'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을 도입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 제도는 대법원이 추진하지만 수사기관이 반대하고 있다.
◇ "사적 대화까지 압수…어떻게 처리되는지도 몰라"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전날 '압수수색 영장 실무 관련 논의를 위한 영장전담법관 온라인 간담회'를 열었다.이 자리에는 영장 발부 여부를 판단하는 전국 영장전담판사들이 화상으로 참석했다.
발제를 맡은 법원행정처 형사지원심의관 정재우 판사(사법연수원 39기)는 대주주의 뇌물 혐의와 관련해 압수수색 대상이 된 사내변호사 A씨의 실제 사례를 제시하며 시민의 사생활 침해 위험이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해당 범죄는 A씨 입사 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A씨도 압수수색 대상이 됐다.당시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압수할 물건'의 범위는 '본건과 관련성이 인정되는 범위 내의 파일(이메일 포함), 내부 메신저 및 이메일 송수신 자료, 원격지 서버 저장 전자정보' 등이었다.
실제 현장에선 수백만 건의 파일을 선별하기가 불가능했기에, 수사기관이 전체를 가져가고 이튿날 A씨가 수사기관에 출석해 선별 작업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출석하니 선별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웬만하면 협조하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 유리하다'는 변호인의 조언에 따라 이 절차를 포기했다.결국 범죄에 관여한 적이 없는 A 변호사는 사건과 무관한 친구와 나눈 비공개 대화까지 넘겨주게 됐다.
압수수색 영장 청구는 2011년 10만8천992건에서 지난해 39만6천671건으로 3.6배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발부율도 87.3%에서 91.1%로 역시 증가했다.
정 판사는 "영장상 '본건과 관련성' 문구만으로는 압수 범위 제한이 불가하고 철저한 선별도 어려워 사실상 '모든 것'을 압수할 수 있는 영장이 발부되고 있다"며 "수사기관이 입수한 정보가 어떠한 방식으로 보관되는지, 무관 정보가 제대로 폐기되는지 알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압수수색 한 번 당한 사람은 평생 불안함에 떨며 살아야 한다는 말도 있다"며 "나쁜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논리만으로는 사생활 침해를 정당화하는 것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심문 대상은 피의자 아닌 수사기관…밀행성 해치지 않아"
정 판사는 이런 현실에서 대법원이 형사소송규칙(대법원 규칙) 개정을 통해 추진하는 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이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판사의 서면 심리 중 대상·범위·방법 등에 대한 의문점이 발생할 경우 이를 해소하거나 추가 심리를 할 방법이 없다"며 "담당 법관은 수사를 발목 잡는 부담감에 발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되고, 과도한 압수수색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정 판사는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강제수사 정보가 사전에 유출돼 수사의 밀행성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검찰·경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의 반발은 제도를 오해했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사전심문 대상은 '피의자'가 아닌 영장을 청구한 '수사기관'이 될 것이고, 절차도 비공개로 진행되기에 수사 밀행성을 확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같은 이유로 정치인 등 특정 인사에 유리한 제도라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정 판사는 수사 지연을 초래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복잡한 소수의 사안에 활용될 예정"이라며 "현재 영장 기각 후 재청구로 이어질 만한 사안은 제도가 도입되면 오히려 시간이 단축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제도를 법률이 아닌 대법원규칙 개정으로 도입하는 것이 헌법 위반이라는 주장도 반박했다.
그는 "국민 기본권을 제한하는 현재 절차에 신중을 기하자는 취지로, 반드시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보석심문, 구속영장실질심사 등 수도 없이 많은 형사절차가 대법원규칙에 규정돼 있다"고 주장했다.
정 판사는 "압수수색은 늘 사악하고 계획적인 범죄자에 대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증거인멸 우려가 큰 범죄자에겐 다소 (범위가) 넓은 영장을, 그렇지 않은 피의자에겐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적절히 운용할 수 있다"고 했다.법원행정처 관계자는 "간담회에서 공유된 의견을 정리해 향후 압수·수색영장 실무의 개선 방안 마련과 추진 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