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훌륭한 선생은 혼자 가르치지 않는다

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산수 문제를 칠판에 풀던 선생님이 분필을 들고 머뭇거릴 때 끝나는 종이 울렸다.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선생님이 “이 문제는 다음 시간에···”라며 칠판에 풀다 만 문제를 지우고 수업을 끝냈다. ‘선생님이 풀지 못한 문제’는 저녁때 집에 다니러 온 작은아버지가 바로 풀어줬다. 밤새 문제 풀이를 외웠다. 다음날 선생님이 지난 시간에 이어 한 사람씩 나와 다음 문제를 풀라고 했다. 그러나 선생님이 풀지 못한 문제는 넘어가고 그다음 문제부터 풀라고 시켰다.

학생들이 나와 칠판에 맡은 문제를 풀지 못하면 선생님이 풀어줬다. 다음 문제로 또 넘어가려 할 때 지난 시간에 풀다 만 문제가 있다고 내가 말하자 선생님이 풀 수 있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내가 손들고 풀겠다고 해 앞으로 나갔다. 외운 대로 풀다가 막혔다. 이해하지 못하고 다만 외워서 한 일은 언제나 막힌다. 선생님은 내가 채 풀지 못한 문제를 다 풀어주고 지우개로 지웠다. 분필을 건네주며 선생님은 내게 다시 풀어보라고 해 이해한 대로 제대로 문제를 다 풀었다.선생님이 다른 일로 아버지를 만나고 가신 뒤 아버지가 찾았다. 아버지는 “선생님이 자기도 풀지 못한 문제를 네가 풀었다더라”라며 칭찬했다고 했다. 작은아버지가 가르쳐 준 거라고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학문이 높은 선비도 집 가(家) 자가 막힐 때가 있다”라고 전제한 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배움이 깊을수록 겸허해진다는 뜻이다. 네가 공부해 깨달아 푼 문제도 아니고 작은아버지가 가르쳐 준 걸 선생님에게 뽐내려 한 일은 잘못이다”라고 지적했다. 아버지는 “학문이 아무리 깊다고 해도 가르쳐 보면,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며 가르쳐준 고사성어가 ‘교학상장(敎學相長)’이다.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이 모두 자신의 학업을 성장시킨다는 말이다. 예기(禮記)의 학기(學記) 편에 나온다. 원문은 “좋은 안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먹어 보아야만 그 맛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극한 진리가 있다고 해도 배우지 않으면 그것이 왜 좋은지 알지 못한다. 따라서 배워 본 이후에 자기의 부족함을 알 수 있으며, 가르친 후에야 비로소 어려움을 알게 된다. 그러기에 가르치고 배우면서 더불어 성장한다고 하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아버지는 “옛 어른들은 경전 등의 글이나 들은 말 중 몇 대목을 정해 스승이나 시관(試官) 또는 웃어른 앞에서 끊어 읽고 해석하는 것을 강(講)이라고 했다. 강을 듣고 스승이나 웃어른이 올바른지를 지적하고 평해주는 일을 의(義)라고 한다”라고 ‘강의’를 정의해 설명했다. 이어서 아버지는 “그래서 강의는 학생과 교사가 함께 하는 거다. 훌륭한 스승은 혼자 가르치지 않는다. 네게 문제를 풀어준 작은아버지는 선생님이다. 자신이 문제를 올바르게 풀어준 뒤 다시 풀어보라고 가르치는 네 선생님의 교수법은 훌륭하다”라며 “네 선생님은 다만 앞서 배운 선생이 아니라 요즘 보기 드문 진정한 스승이다”라고 높이 평가하면서 “선생님을 존경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아버지는 “요즘 선생은 흔하지만, 스승이 없다”라며 “‘스승’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선생이란 뜻만이 아니라 삶의 지혜까지도 가르치는 참 선생님을 가리키는 말이다”라고 했다.

스승의 은혜에 보답을 기념하는 5월 15일은 세종대왕의 탄생일에서 따왔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해 온 백성에 가르침을 주어 존경받는 것처럼 스승이 세종대왕처럼 존경받는 시대가 왔으면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원래는 충남 논산시 강경여고에서 ‘세계 적십자의 날’(5월 8일)을 맞아 자신의 스승을 찾아간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보통 교사는 지껄인다. 좋은 교사는 잘 가르친다. 훌륭한 교사는 스스로 해 보인다. 위대한 교사는 가슴에 불을 지른다.” 영국의 철학자, 수학자 알프레드 화이트헤드 명언이다. 사람은 사람에게 가장 많이 배운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선생님의 가르침은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자녀들에게는 절대적이다. 손주들이 선생님을 만나기 시작하면 먼저 가르쳐 줘야 할 인성이 ‘존경심(尊敬心)’이다. 이때 아니면 배울 기회나 가르칠 기회가 없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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