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강대강 대치 지방의회까지 번져…강제 사보임에 소송 맞불

청주시의회 의장 직권 사보임, 野의원 의결취소·효력정지 소송 제기
"4·5보선으로 여대야소 되자 '협치 버리고 힘의 정치'"

청주시의회에서 상임위원회 위원 선임 문제가 사법부 판단을 받게 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영신 의원이 2일 청주지법에 '지방의회 의결 취소 청구의 소'와 '사보임 의결 효력정지'를 신청한 것이다.

이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상임위원회 배정에 대해 당사자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고, 상임위원회 위원 개선의 건을 기습 상정해 표결로 사보임 시킨 것은 다수(국민의힘)의 횡포이자 전횡"이라며 소송 제기 배경을 설명했다.

지방의회 상임위원 사보임을 둘러싼 소송은 전국적으로 그 예를 찾기 힘들다.
이 의원은 국민의힘 소속 김병국 의장이 '청주시의회 교섭단체 및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관한 조례'를 위반해 자신을 강제 사보임 시켰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 의장은 지난달 17일 제78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이 조례에 따른 의장 고유권한이라며 도시건설위원회 소속이던 이 의원을 재정경제위원회로, 4·5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상조(국민의힘) 의원을 도시건설위로 배치하는 상임위원 개선의 건을 상정했다.

표결 결과 이 안건은 찬성 22표, 반대 20표로 가결됐다. 찬성표는 국민의힘 의원 수와 같았다.

상임위원은 의장이 각 교섭단체 소속 의원 수의 비율을 감안해 각 교섭단체 대표와 협의 후 추천해 본회의에서 의결·선임하도록 조례에 명시돼 있다.

다만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의장이 직권으로 교섭단체 소속 의원 수의 비율을 감안해 추천할 수 있다. 민주당 박완희 원내대표는 지난달 27일 제2차 본회의에서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이영신 의원 사보임 과정은 말 그대로 폭력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민의힘 박노학 원내대표가 이상조 의원을 고 한병수 의원이 소속됐던 재경위로 보임하면 다른 의원 이동 없이 정리된다고 해 그렇게 하자고 했다"면서 "그런데 당사자인 이영신 의원에게 일언반구 없이, 또 원내대표 간 사전 협의를 무시하고 의장이 직권상정했다"고 강조했다.

박노학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연합뉴스 통화에서 "박완희 원내대표와 협의 시 이영신 의원 사보임 건은 논의한 바 없다"고 확인했다.

김 의장은 지난해 연말 옛 청주시청 본관동 철거 문제로 촉발된 2개월간의 의회 파행 책임을 거론하며 박완희 대표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김 의장은 민주당 소속 김은숙 부의장에게 이영신 의원 사보임 건 상정 계획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장은 연합뉴스 통화에서 "이영신 의원이 (옛 시청 본관동 철거비 통과에 항의해) 도시건설위원장직을 사임했으니 도시건설위에 남는 것보다 사보임이 당연하지 않으냐"며 "박완희 원내대표와는 신뢰가 깨져 민주당의 책임 있는 분한테 이 의원 사보임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이영신 강제 사보임'은 국민의힘이 지난 보궐선거 승리로 여대야소 정국을 만들면서 어느 정도는 예상된 일이었다.

국민의힘은 도시건설위가 새 청주시청사 건립, 원도심 활성화 등 같은 당 이범석 시장의 주요 공약을 다룬다는 점에서 도시건설위원장 차지의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국민의힘은 지난달 27일 본회의장에서 수적 우위를 앞세워 민주당의 도시건설위원장직 원상회복 요청에도 자당 이우균 의원을 공석인 도시건설위원장으로 뽑았다.

앞서 김 의장은 지난달 5일 보선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승리하자 "(민주당과 합의했던) 후반기 의장·상임위원장 문제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며 협치 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보선이 있기 전까지 양당 의석수는 21대21로 같았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보궐 선거 승리로 힘의 균형이 깨졌다.

통상 지방의회의 상임위원장과 상임위원은 여야 합의로 선임하는 게 관례인데, 이 문제가 소송으로 비화했다는 점에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고 있다.

여야 협치만 가동되면 얼마든지 내부에서 풀 수 있는 사안이었기에 시민들도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충북참여연대는 성명에서 "의장직권이라는 것이 결코 의장 마음대로라는 의미가 아님에도 정치적인 계산에 따라 일사천리로 사보임을 강행했다"며 "의장 스스로 의장이 가진 권한과 그에 따른 의미와 무게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역 정가의 한 관계자는 "중앙정치의 여야 강대강 대치가 지방의회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의석 숫자를 앞세운 힘의 정치는 여든 야든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