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이 다가온다 [김동훈의 고흐로 읽는 심리수업]

[arte] 김동훈의 고흐로 읽는 심리수업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한 늙지 않는다"
첫사랑이 다가온다
따스한 가정이 그리워 찾은 사랑
빈센트 반 고흐 '숲에 있는 두 여인(Two women in a wood)' (1882년)
이번 그림은 ‘숲에 있는 두 여인(Two women in a wood)’(1882년)이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숲 속에서 두 여인이 등을 돌리고 서 있다. 뒤쪽의 여인은 형태가 거의 보이지 않고 뒷모습만 어렴풋하다. 앞쪽의 여인은 분명하지 않은 무엇인가를 들고 얼굴엔 눈, 코, 귀, 입도 생략된 채 옆모습만 보인다. 단지 그려진 연도만 있을 뿐, 이 그림과 관련된 일화나 어떤 설명도 직접 소개되지 않았다.

이 그림을 완성한 시기는 1회에서 본 ‘숲에 있는 여인’과 같은 해, 그러니까 고흐가 홍등가의 여인 시엔과 동거하던 때다. 제목에 ‘두 여인’이 나타난다는 것이 이전 제목과 차이를 보인다. 마치 꿈속에서 환영을 보듯 흐릿하고 몽상적이며 섬뜩하기조차 하다. 다소 어두운 느낌이 들지만 상당히 닮은 듯 보이는 두 여인은 과연 누구일까? 이 그림에 나타난 두 여인도 고흐의 동거녀 시엔은 분명 아니다. 그렇다면 고흐의 애정사에서 두 여인과 관련되었으며 특히 어두운 의상을 입은 듯한 두 여인이 등장하는 때는 언제였을까?

첫사랑

빈센트 반 고흐에게 첫사랑이 찾아왔다. 그가 스무 살 되었을 때, 그러니까 1873년에 열아홉 살 소녀를 좋아했다. 학업을 중단하고 삼촌이 운영하는 구필 화랑의 헤이그지점에서 수습사원으로 일을 시작한 고흐가 성실함을 인정받아 4년 만에 런던지점으로 옮긴 때였다.

그의 첫사랑은 바로 런던 하숙집 여주인의 딸 유진 로이어였다. ‘숲에 있는 두 여인’이 첫사랑과 관련된 일화를 표현한 것이라면, 분명 그 음울한 분위기로 봐서 결말이 비극적이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또한 그 사랑이 두 여인과 관련됐다면, 이 그림은 첫사랑에 대한 묘사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고흐의 첫사랑에 어떤 비극이 있었기에 그림이 이토록 어두운 것일까? 하숙집 여주인은 미망인이었다. 검은 모자를 쓰고 어두운 갈색 옷을 입은 이 그림의 묘사에 잘 들어맞는다. 여주인에게는 두 명의 딸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고흐의 맘을 사로잡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고흐보다 한 살 어린 데다 우아한 여인이었다. 쓸쓸히 거닐던 고흐가 이러저러하게 하숙집의 한구석에서라도 그녀와 마주치면, 그녀는 항상 밝은 미소와 친절을 보였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상냥했다. 고흐의 가슴에서 한 가닥 사랑의 싹이 돋아나는 것 같더니, 그는 온통 그녀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고흐는 커져만 가는 자신의 연정을 견딜 수 없어 드디어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청혼했다.

하지만 늘 달콤한 말이 흘러나오고 항상 웃어주던 유진 로이어의 입에서 청천벽력 같은 답이 나와 고흐의 심장에 꽂혔다. 고흐보다 먼저 하숙했던 남자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란다. 이 말을 들은 고흐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고 절망에 빠졌다. 약혼한 사람이 왜 자신에게 미소와 친절을 보였단 말인가? 아름다운 가정을 꾸미고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장래 계획까지 세웠던 자신이 한없이 못나 보였다. 고흐의 제수, 그러니까 동생 테오의 아내인 요한나가 당시 고흐에 대해 “빈센트는 그 약혼을 깨려고 온갖 짓을 다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고 전한다.


두 여인에 대한 사랑

고흐가 유진 로이어에게 빠진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유진 자체가 아름답고 우아한 생기발랄한 여인이기도 했지만, 고흐가 생각했던 이상형, 즉 모성애를 느낄 수 있는 대상이 그녀의 어머니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고흐는 쉰여덟 살 과부인 여주인 어셜 로이어와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고흐는 그녀에게서 많은 칭찬을 들었으며 저녁이면 난로 옆에 앉아 그림과 책, 문화 일반에 관한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유진도 그 옆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이렇듯 고흐는 로이어 모녀에게서 안락한 가정의 따스함을 느꼈다. 기필코 유진과 결혼해 그녀의 어머니를 장모로 모신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할 것만 같았다.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이 가정은 슬픔에 빠져 있었다. 고흐는 미망인이 된 여주인에게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애끊는 그리움에 사무쳤던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상처 입고 고독하며 고향을 떠나온 나그네인 자신을 이 모녀가 따뜻하게 받아주리라 확신했었다.

두 여인을 사랑했다는 증거가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청혼을 거절당하고 그 가족을 떠나기 직전인 1874년 1월 6일 누이동생 안나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고흐는 그들이 자기를 싫어하지 않았고 존경할 만한 가족이었으며 두 여인을 사랑했다고 밝혔다. 고흐는 자신이 연상의 여인, 그것도 장모가 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손가락질 당할까봐 우려한 것인지, 아니면 청혼 거절 때문에 쓴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그 모녀 사이의 사랑 같은 것은 꿈도 꿔보지 못했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구나.”

또한 고흐는 두 여인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친구로서 소중히 여기는 것뿐”이라고 말하면서, 오해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어머니에게서 충족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사랑을 유진의 어머니에게서 보상받길 원했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한 늙지 않는다

‘숲에 있는 두 여인’에서 어두운 옷을 입은 두 여인은 유진과 그녀의 어머니로 보인다. 첫사랑의 실패는 자신이 그리워하는 이상적인 모성애를 좌절시키는 것이었기에, 앞에 있는 좀 더 뚜렷하게 보이는 여인이 아마도 유진의 어머니일 것이다. 무의식적으로는 유진에 대한 사랑보다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런던과 뉴욕에서 공연되었던 연극 ‘브릭스턴의 빈센트’가 이렇게 유진의 어머니에 대한 고흐의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해석된 작품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고흐는 청혼을 거절당한 이후, 테오의 친구 가운데 두 명이 자살하고 지인 한 명이 죽는 등 우울한 일들을 연속적으로 겪게 된다. 고흐는 점점 더 내면으로 숨어들었고 구필 화랑 런던지점에서 주변 사람들과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 고객들을 무시하는 언행을 보이다가 파리본사로 불려다니더니, 급기야는 헤이그에 있는 구필 화랑의 삼촌과 고흐의 아버지에게도 이 사실이 통보되었다.

결국 고흐는 파리로 전근 간 다음 해인 1876년에 해고당할 상황에서 먼저 사직서를 제출하고 직장생활을 영영 그만두게 되었다. 로이어 모녀와 비극적인 사랑이 있은 지 거의 1년 후에 고흐는 친구 안톤 판 라파르트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그 일은 내가 지고 가야 할 상처를 남겼네. 마음 깊이 남아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많은 세월이 흐르더라도 그건 마찬가지일 걸세.” 그리고 6년이 지난 후에 고흐는 ‘숲에 있는 두 여인’을 그림으로 남겼다. 이렇듯 고흐의 여인들 그림은 그의 진지한 사랑을 읽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위 그림 또한 고흐의 사랑, 그 과정의 상처와 관련되었다. 아마도 첫사랑에 성공했다면 고흐는 런던에서 안정적인 가정을 꾸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면 우리에게도 고흐의 ‘해바라기’나 ‘별이 빛나는 밤’은 없었을 것이다.

한참이나 연상이었던 어쩌면 장모가 될지도 모를 한 여인, 남편 잃은 이 여인의 빈자리를 채우고자 했던 고흐는 테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한 늙지 않는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1874년 7월 31일, 런던)

상처가 있을지언정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한 예술은 빛난다. 어쩌면 이 아이러니는 오늘도 계속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차라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김광석)이라는 노랫말이 있듯 고흐도 아픈 사랑에 대해 사랑이 아니라고 다부지게 마음먹고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았으면 어땠을까? 그리고 그 비극적인 추억에서 커다란 깨달음 하나 얻은 것으로 위안 삼았으면 좋지 않았을까?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한, 우리는 늙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