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장비 제치고 애플·테슬라까지 뚫었다…40대 3인방의 뚝심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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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 문제는 2019년 처음 불거졌습니다.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했던 해입니다. 그로부터 4년, 토종 소부장 스타트업들은 그간 국내 산업 소재 공급망 다변화의 숨은 조력자로 평가받습니다. 한경 긱스(Geeks)가 산업용 디스펜서(액체 분사장치) 국산화에서 두각을 보인 스타트업 나노젯코리아의 공동창업자 3인방을 만나, 토종 소부장 스타트업의 생존비기를 살폈습니다.“1년에 아이폰이 2억 2000개 생산됩니다. 그 모든 기기에 한국 토종 장비가 만드는 부품이 들어가는 겁니다.”한태섭 나노젯코리아 대표는 글로벌 산업용 디스펜서(액체 분사장치) 시장을 ‘다윗과 골리앗’에 빗댔다. 일본의 ‘무사시(MUSASHI)’, 미국의 ‘아심텍(ASYMTEK)’은 오랜 기간 이 시장의 맹주 역할을 하던 업체들이었다. 양사 합산 점유율은 80% 이상으로 추정된다. “처음엔 한국 업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였다”는 그는 공동 창업자인 조휘원 공동대표, 노광선 연구소장과 함께 회사를 차리고 4년을 버텼다.
인고의 시간을 견딘 40대 창업가 3인이 개발한 장비로 생산한 부품은 누구나 아는 제품에 탑재되고 있다. 테슬라와 현대차 등 차량, 삼성전자와 애플의 휴대폰에도 들어간다. 특허를 낸 미세 컨트롤러와 원료 배합 기술은 무기가 됐다. 이들은 “올해 연간 매출액 200억원을 달성할 전망”이라며 “토종 장비도 글로벌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업용 디스펜서 장비 역시 외국계 대기업의 존재감이 뚜렷했다. 업력부터가 다르다는 평가다. 1983년 설립된 미국의 아심텍은 잉크젯 프린터를 연구하던 3인의 창업자들이 만들었다. 1996년 노드슨의 자회사로 인수되고 나선 영업망을 전 세계에 뻗쳤다. 나스닥 상장사인 노드슨은 시가총액 16조원짜리 회사다. 아심텍이 북미와 유럽 등지에서 힘을 키웠다면, 일본의 무사시는 아시아권의 강자다. 1978년 설립된 무사시는 도쿄에 본사를 두고 해외 10개 거점을 두고 있다. 유럽지사를 제외하면 전부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분포되어 있다. 산업용 디스펜서의 분야가 방대해 일괄 추산이 어렵지만, 업계에선 통상 양사 합산 점유율을 80% 이상으로 내다본다.
2019년 창업하고 나선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나름대로 영업에 잔뼈가 굵었다고 생각했지만, 일감을 주는 곳들이 많지 않았다. 시제품을 넣어놓는 6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때도 있었다. 디스펜서 장비로 생산되는 부품은 절대다수가 전자, 자동차 대기업의 구매력에 기댄다. 새로운 회사 제품을 쓰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기술 검증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퇴짜를 놓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국내 업체들 공장이 중국과 동남아에 포진해 있다 보니, 해외에서 먹고 자는 것은 일상이었다. 조 대표는 “코로나19까지 겹치며 베트남에서 석 달간 발이 묶였을 땐 아찔했다”고 소회했다.
국산화 도전이 차례차례 성과를 내고 있지만, 아직 풀어야할 과제도 남아있다. 디스펜서 사업의 리스크 요인에 대해 창업가 3인방은 “대기업의 구매 비즈니스라는 게 약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디스펜서를 가장 필요로 하는 분야 중 하나인 반도체를 예로 들면, 최근처럼 반도체 경기가 악화하면 대기업의 장비 구매력이 그만큼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 대표는 “제품을 다각화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이유가 경기변동에 덜 민감해지기 위한 것”이라며 “최근 자동차 전장(전자장비) 분야와 2차전지 고객사 영업에 적극인 이유는 시장 선점 목적도 있지만 실적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설비투자 비용도 고민이다. 현재 나노젯코리아의 장비 생산량은 월 30대 수준이다. 고객사 수요를 모두 응대하려면 월 60대 수준까진 늘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찮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주주를 늘리진 않겠다는 입장이다. 매출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어서다. 일단 파트너사 5곳과 장비를 공동 생산하는 체계를 유지하고, 지난해 벌어들인 매출액 60억원으로 재투자를 실시할 계획이다.현재까지 진행된 투자 라운드는 시리즈A로, 누적 투자금액은 30억원이다. SBI인베스트먼트, NBH캐피탈 등이 주요 주주다. 고성재 NBH캐피탈 상무는 “디스펜서 장비는 분야가 점차 세분화, 다양화되고 있고 고객사들이 생산시설을 이전할 때 대량 납품이 가능하단 점이 기대 요소였다”고 투자 이유를 설명했다. 한 대표는 “연내 60억원의 투자를 추가 유치하고, 하반기 주관사 선정을 거쳐 2025년 9월 기업공개(IPO)를 추진할 계획”이고 밝혔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인고의 시간을 견딘 40대 창업가 3인이 개발한 장비로 생산한 부품은 누구나 아는 제품에 탑재되고 있다. 테슬라와 현대차 등 차량, 삼성전자와 애플의 휴대폰에도 들어간다. 특허를 낸 미세 컨트롤러와 원료 배합 기술은 무기가 됐다. 이들은 “올해 연간 매출액 200억원을 달성할 전망”이라며 “토종 장비도 글로벌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료 뿌리고 굳힌다…'디스펜서'의 마법
디스펜서는 ‘도포액 정량 토출 장치’란 어려운 이름을 가진다. 쉽게 말하면 액체를 정해진 양만큼 뿌려주는 도구다. 최근엔 손을 인식하고 액체형 비누를 뿌려주는 ‘비누 디스펜서’가 많이 팔리기도 한다.디스펜서 장비는 산업계로 오면 형태와 쓰임이 달라진다. 현대 전자기기 생산 과정에서 산업용 디스펜서는 없어선 안 되는 필수품이다. 다양한 액체 시료를 뿌리고 굳혀 제품을 만들기 때문이다. 마치 접착제처럼 휴대폰 외장재나 카메라 부품들을 붙일 때 쓰거나, 반도체가 올려진 기판 위에 뿌리고 말려 전자회로를 보호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심지어 자동차 헤드램프 부품에 뿌려 빛 세기를 조절할 때 쓰기도 한다. 쓰임새마다 필요한 액체는 다르지만, 공통으로 요구되는 것은 정밀한 도포 기술이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양만 뿌리는 섬세함은 디스펜서 장비의 기술력을 가르는 핵심 요소다.산업용 디스펜서 장비 역시 외국계 대기업의 존재감이 뚜렷했다. 업력부터가 다르다는 평가다. 1983년 설립된 미국의 아심텍은 잉크젯 프린터를 연구하던 3인의 창업자들이 만들었다. 1996년 노드슨의 자회사로 인수되고 나선 영업망을 전 세계에 뻗쳤다. 나스닥 상장사인 노드슨은 시가총액 16조원짜리 회사다. 아심텍이 북미와 유럽 등지에서 힘을 키웠다면, 일본의 무사시는 아시아권의 강자다. 1978년 설립된 무사시는 도쿄에 본사를 두고 해외 10개 거점을 두고 있다. 유럽지사를 제외하면 전부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분포되어 있다. 산업용 디스펜서의 분야가 방대해 일괄 추산이 어렵지만, 업계에선 통상 양사 합산 점유율을 80% 이상으로 내다본다.
외국계로 흩어졌다가 2년만 '의기투합'
나노젯코리아의 창업가 3인은 지금은 코스닥시장 상장사가 된 프로텍에서 서로를 만났다. 1976년생 한 대표는 원래 항공정비사를 준비하던 청년이었다. 2001년 우연히 입사한 회사에서 동갑내기 노 연구소장, 6살이 어리지만 1년 선임이었던 조 대표와 함께 일하게 됐다. 당시 프로텍은 반도체 후공정과 디스펜싱 장비를 개발하던 작은 회사였다. 한 대표와 조 대표는 고객사에 장비를 설치해주는 필드 엔지니어, 노 연구소장은 제품을 점검하는 직무로 일했다. 회사가 작아 팀 구분 없이 어울려 일하고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세가 커진 프로텍은 디스펜서만 집중하기보단 공압 실린더와 방열 부품 등으로 사업 범위를 넓히는 전략을 택했다. 디스펜서 분야에서만 전문성을 쌓았던 이들은 2015년부터 2017년 사이 외국계 회사로 흩어졌다.창업의 불을 댕긴 것은 조 대표였다. 외국계 디스펜서 총판사로 자리를 옮겼던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그는 1위 업체였던 아심텍에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완벽한 줄로만 알았던 대기업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조 대표는 “회사 규모가 클수록 개별 국가 고객사의 요청에 장비 기능을 맞춰줄 수 없었다”며 “범용성을 갖추고 더 많은 나라에 장비를 팔아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틈새시장이 보이자 옛 회사 동료들이 생각났다. 각자 경력이 15년을 넘어가던 때였다. 다시 한번 토종 장비로 시장을 공략해보자는 제안에 한 대표와 노 연구소장이 응했다. 적어도 국내 부품사들이 원하는 디스펜서 장비는 무엇인지 훤히 알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2019년 창업하고 나선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나름대로 영업에 잔뼈가 굵었다고 생각했지만, 일감을 주는 곳들이 많지 않았다. 시제품을 넣어놓는 6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때도 있었다. 디스펜서 장비로 생산되는 부품은 절대다수가 전자, 자동차 대기업의 구매력에 기댄다. 새로운 회사 제품을 쓰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기술 검증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퇴짜를 놓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국내 업체들 공장이 중국과 동남아에 포진해 있다 보니, 해외에서 먹고 자는 것은 일상이었다. 조 대표는 “코로나19까지 겹치며 베트남에서 석 달간 발이 묶였을 땐 아찔했다”고 소회했다.
특허 기술로 日과 대결…납품처 다변화는 과제
원료 배합 기술과 미세 컨트롤러는 돌파구가 됐다. 모두 현장에서 고질적으로 제기됐던 문제지만 기존 디스펜서 장비들이 반영하지 못했던 요소였다. 노 연구소장은 “레미콘이 시멘트를 회전시키는 것처럼, 디스펜서 내부 액체를 회전시켜 원료를 잘 배합하는 자체 특허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도포 장치 인근에 정밀함을 더하는 추가 컨트롤러 장치 기술도 특허를 냈다”고 덧붙였다. 디스펜서 장비에는 컨트롤러가 탑재되는데, 실제 시료를 도포하는 부분과 컨트롤러 사이의 거리가 멀어 정밀함이 떨어진다는 지적 사항을 개선한 것이다. 고년차 엔지니어들이 포진해 있어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나노젯코리아는 21명 재직 인원의 업력 평균이 15년 상당이다. 기술 개발이 완료되자, 일본 무사시 장비 대신 나노젯코리아 장비를 쓰는 곳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카메라 모듈을 생산하는 국내 한 대기업은 지난해 말부터 생산라인 전체에 무사시 제품을 들어내고 나노젯코리아 장비를 적용하기도 했다.국산화 도전이 차례차례 성과를 내고 있지만, 아직 풀어야할 과제도 남아있다. 디스펜서 사업의 리스크 요인에 대해 창업가 3인방은 “대기업의 구매 비즈니스라는 게 약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디스펜서를 가장 필요로 하는 분야 중 하나인 반도체를 예로 들면, 최근처럼 반도체 경기가 악화하면 대기업의 장비 구매력이 그만큼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 대표는 “제품을 다각화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이유가 경기변동에 덜 민감해지기 위한 것”이라며 “최근 자동차 전장(전자장비) 분야와 2차전지 고객사 영업에 적극인 이유는 시장 선점 목적도 있지만 실적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설비투자 비용도 고민이다. 현재 나노젯코리아의 장비 생산량은 월 30대 수준이다. 고객사 수요를 모두 응대하려면 월 60대 수준까진 늘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찮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주주를 늘리진 않겠다는 입장이다. 매출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어서다. 일단 파트너사 5곳과 장비를 공동 생산하는 체계를 유지하고, 지난해 벌어들인 매출액 60억원으로 재투자를 실시할 계획이다.현재까지 진행된 투자 라운드는 시리즈A로, 누적 투자금액은 30억원이다. SBI인베스트먼트, NBH캐피탈 등이 주요 주주다. 고성재 NBH캐피탈 상무는 “디스펜서 장비는 분야가 점차 세분화, 다양화되고 있고 고객사들이 생산시설을 이전할 때 대량 납품이 가능하단 점이 기대 요소였다”고 투자 이유를 설명했다. 한 대표는 “연내 60억원의 투자를 추가 유치하고, 하반기 주관사 선정을 거쳐 2025년 9월 기업공개(IPO)를 추진할 계획”이고 밝혔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