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동 칼럼] 최고는커녕 중간도 안되는 與野 최고위원들
입력
수정
지면A30
매주 열리는 최고위원회의“기도하는 심정으로 지켜보겠다. 제발 사고 치지 말고 돌아오라. 빈손 외교라도 좋으니 대형 폭탄은 몰고 오지 말라.”(정청래 의원) “이번엔 또 어떤 사고를 칠지 걱정이 태산이다.”(박찬대 의원)
상대 당 비난·저격 경연장 전락
열성 지지층 향한 가짜뉴스까지
회의 초반 외부 공개가 문제
'최고' 되려면 스피커 역할 대신
정책·법안 경연으로 품격 높여야
서화동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국빈 방문을 위해 출국한 지난달 24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두 최고위원이 한 말이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겨냥해 “참 두통거리”라며 “가급적 개인 일정을 줄이라”고도 했다. 국빈 방문을 앞두고 윤 대통령이 외신 인터뷰에서 “일본이 100년 전 역사 때문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것은 분명 적절하지 않았다고 본다. 경제·안보 위기 대처를 위해 언제까지나 과거사에 발목 잡혀 있을 수 없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더욱 세련되고 완곡하게 표현했어야 좋았다. 하지만 정상 외교를 앞둔 대통령을 사고뭉치 내지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취급하는 건 무슨 경우인가.장경태 최고위원은 한술 더 떴다. 그는 미국에 도착한 윤 대통령이 환영행사에서 꽃다발을 선물한 어린이의 볼에 입맞춤한 데 대해 “아이가 동의하지 않는 경우 성적 학대행위로 간주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6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다. 인터넷 검색만 잠깐 해도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물론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이 화동(花童)의 볼에 입 맞추는 사진이 수두룩하다. 비판이 쏟아졌지만 그는 반성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김 여사의 캄보디아 심장병 어린이 방문 사진을 두고 조명 동원 의혹을 제기하며 ‘빈곤 포르노’라고 한 때와 마찬가지였다. 경찰 조사 결과 해당 의혹은 사실무근으로 결론 난 상태다. 그런데도 장 최고위원은 이날 회의에서 당시 영상을 틀면서 의혹을 다시 제기했다. 이재명 대표도 “육안으로 봐도 조명을 쓴 것 같다”며 “저도 고발하기 바란다”고 거들었다.
당무 집행의 최고 책임기관인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는 대표와 원내대표, 7명의 최고위원으로 구성된다. 최고위원 중 5명은 전당대회에서 뽑고, 2명은 대표가 지명한다. 국민의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표, 원내대표, 정책위 의장이 참여하고 선출직 최고위원이 4명인 대신 지명직 1명, 청년최고위원 1명이 있다. 민주당 당헌에 따르면 당무 집행 최고 책임기관인 최고위원회의는 법률안을 포함한 당 주요 정책과 당무의 심의 및 의결, 당무 전반의 조정과 감독 등 권한과 책임이 막중하다.
그런데 끝없이 정쟁을 유발하며 정치 문화의 저질화를 이끄는 게 최고위원회의다. 국민의힘은 1주일에 두 차례(월·목요일), 민주당은 세 차례(월·수·금요일) 회의를 연다. 회의가 시작되면 최고위원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상대 당을 거친 언사로 비판한다. 아니, 비판을 넘어 비난, 조롱, 저격이 난무한다. 회의 벽두의 이런 발언이 외부에 공개돼 일파만파 퍼진다는 게 문제다. 신문·방송 뉴스는 물론 회의 자체가 유튜브로 생중계되면서 열성 지지자들의 환호작약을 유도한다. 9명밖에 안 되는 최고위원회의 참석자가 나란히 앉아서 마이크를 잡고 발언할 이유가 뭔가. 내부용 회의가 아니라 대외용 ‘스피커’의 경연장이 돼버린 것이다.주요 정당의 최고위원회의는 그야말로 당 지도부 회의다. 회의 자체는 물론 각각의 구성원이 그에 걸맞은 품격과 내실을 갖춰야 하는데, 현실은 반대다. 지난 3월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 수석최고위원에 당선된 김재원 의원은 5·18민주화운동, 제주 4·3사건과 관련한 잇단 설화로 당 안팎의 거센 비판을 받았고, 결국 당 윤리위의 징계 절차가 시작됐다. 전광훈 목사를 옹호한 그의 발언은 둘이 특수관계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상식선을 벗어났다. 쓰레기, 돈, 성(性)을 뜻하는 ‘JMS 민주당’이라는 SNS 글과 4·3사건 관련 발언으로 당 윤리위에 회부된 태영호 최고위원도 초선이고 한국 생활이 길지 않은 만큼 더욱 신중한 언행이 요구된다. 이준석 대표 시절 이 대표와 배현진 최고위원의 ‘악수 패싱’ 사건은 격이 떨어진 최고위원회의의 하이라이트였다.
최고위원들이 모인 회의를 명실상부한 ‘최고’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국민의 짜증을 유발하는 상대 당 저격 경연이 아니라 법안과 정책을 두고 경연해야 한다. 대외 스피커 역할은 대변인단에 맡겨두고 문제를 만드는 회의가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회의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