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문화를 초월해 엄마처럼 우리를 끌어안는 비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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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순의 위 아 컨템포러리스많은 사람이 캐시미어가 고급 원단이라는 것을 알지만 비쿠냐라는 원단은 그것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럭셔리 ‘끝판왕’ 소재라는 것을 잘 모른다. 이 원단은 남아메리카 안데스 지역 일부에 서식하는 비쿠냐라는 동물의 털로 만들어지는데, 먼 이국의 동물도 낯설지만 이 소재는 잉카 제국 시절 황제와 황족의 특권이었을 정도이고, 현재도 비쿠냐 소재의 옷을 만나보기란 소수의 최상급 브랜드에서가 아니면 어렵기 때문이다.
세상에 없던 문화예술 플랫폼 아르떼 arte.co.kr
현재 나라에서 특별 관리할 정도로 한때 멸종 위기 종이었던 비쿠냐는 말 그대로 신의 섬유를 품었지만 여러 아픔을 겪은,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동물이다. 오늘은 이 비쿠냐와 이름이 같으며 그만큼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가진 예술가, 세실리아 비쿠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2022년은 비쿠냐에게 너무도 특별한 해였다. 4월 베네치아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5월에서 9월까지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진행됐으며, 10월 시작해 올해 4월 막을 내린 영국 런던 테이트 터빈홀의 현대자동차 커미션 전시까지 전 세계 미술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녀는 1948년 칠레 태생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설치 및 다양한 미디엄의 시각예술가이자 활동가, 시인이다. 1973년 칠레 군부가 정권을 잡게 되면서 런던에서 공부하던 그녀는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40년 넘게 뉴욕을 기반으로 평생을 환경, 원주민 문화, 독재 정권, 사랑과 전쟁 등의 주제에 대해 작업했다.
그녀가 오랜 작업 끝에 비로소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가 표현하는 사랑과 추억에 대한 경험과 감정이 인종과 문화가 다를지라도 관객에게 보편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어쩌면 나의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우선 그녀를 어렴풋이 안 건 뉴욕 MoMA(현대미술관)의 소장품 전시에서였다. 그때도 작품이 인상적이어서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그녀와 그녀의 작품에 대해 깊이 있게 찾아보게 된 계기는 2022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였다. 환희에 가득 차 59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평생공로 황금사자상을 번쩍 들어 올리고 있는 비쿠냐의 표정에 푹 빠져 방문한 그녀의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의 엄마를 그린 그림(1977) 앞에서 엄마를 포옹하고 있는 그녀를 봤다.
그림 속 비쿠냐의 엄마는 마치 세상을 다 알아버린 듯, 그러나 지혜와 유머를 잃지 않은 듯한 눈이 기타 구멍을 관통하고 있었고, 엄마의 초상 뒤에는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그녀의 인생 스토리가 담겨 있었다. 그 앞에서 나도 그녀처럼 내 엄마의 삶을 되돌아봤다. 분명 그녀도 어린 시절 꿈을 꾸고, 사랑하고, 가정을 꾸리고, 나를 낳고, 여자로서 아름다움을 가꾸고, 행복한 삶을 바랐을 것이다. 마지막 고통스러운 인생의 순간에도 유머와 지혜를 잃지 않고, 자식에 대한 사랑을 한가득 남기고 가신 엄마 생각에 눈물이 났다. 그림 속 엄마는 그렇게 모두의 엄마가 돼 관객에게 사랑과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있었다.
그녀의 작업은 잃어버린, 또는 잃어가고 있는 자연환경과 토착문화의 보전에 대해 매우 섬세하고 부드럽게 전달한다. 마치 엄마와 같이 포용하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전한다. 이는 세계적 담론과도 맞닿아 있다. 더욱 넓은 관점에서 세대의 기억과 역사를 탐구하는 그녀의 작업을 통해 현대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전 지구적 관점으로 살펴보는 기회가 된다. 그녀는 가공되지 않은 양모, 매듭, 자연에서 얻은 소재, 주운 물건들을 사용해 사라져버린 안데스 지역의 매듭을 이용한 언어인 퀴푸(Quipu)에서 영감을 받은 설치 작업을 50년 이상 해왔다.
그녀는 사회와 정치에 대해 자신이 가진 독창적 표현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온 행동가이기도 하다. 그녀와 동명의 동물이 함께 등장하는 작품(1977)이 그 예다. 그림 속 비쿠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