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월가 세기의 대결…'공매도' 힌덴버그 vs '행동주의' 칼아이칸

기업사냥꾼으로 알려진 미국의 투자자 칼 아이컨. 최근 동물복지를 강조한 행동주의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공매도 투자 기법을 전문으로 하는 힌덴버그 리서치가 이번엔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의 투자 전문 지주회사를 겨냥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기업들의 경영 방식 및 지배구조 등을 문제삼으며 수익을 취하는 대표적인 투자 방식인 '공매도'와 '행동주의 투자'의 선수들이 맞붙은 양상이라는 분석이다.

힌덴버그는 2일(현지시간) "나스닥에 상장된 아이칸의 투자 전문 지주회사 '아이칸 엔터프라이즈(티커명 IEP)'의 가치가 지나치게 고평가됐다"며 아이칸 엔터프라이즈에 공매도 투자 중이라는 사실을 밝혔다.올 들어 1주당 50달러 내외를 유지하던 아이칸 회사의 주가는 이날 힌덴버그의 공격을 받은 뒤 20% 넘게 폭락해 40.36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장중 한때 30달러 선으로 내려앉기도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힌덴버그가 미국 월가의 먹고 먹히는 개판(dog-eats-dog) 싸움이 판치는 행동주의 투자 세계에서 아이칸을 한방 먹였다"고 전했다.

힌덴버그는 보고서를 통해 "아이칸 엔터프라이즈의 기업가치와 주가 모두 지나치게 고평가돼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가치는 75% 이상 부풀려져 있고, 주가는 순자산가치보다 200% 넘는 프리미엄이 붙은 채 거래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이칸 엔터프라이즈와 달리 빌 애크먼의 퍼싱스퀘어, 댄 롭의 써드포인트 같은 투자 전문 지주회사들의 주가는 순자산가치보다 저평가됐다는 게 힌덴버그의 판단이다.
이어 "월가 전설인 아이칸이 지속적인 손실을 내면서도 그 와중에 계속 과도하게 높은 레버리지를 취해 문어발식 투자를 늘리는 전형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투자 조합은 좋게 끝나는 일이 매우 드물고 지속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아이칸 엔터프라이즈가 높은 배당수익률로 투자자들을 현혹하고 있다는 주장도 내놨다. 회사의 투자 성적표와 현금흐름 등에 비춰볼 때 고배당은 타당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팩트셋에 따르면 아이칸 엔터프라이즈의 배당수익률은 15.9%에 이른다.아이칸은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거나 실적이 저조한 기업 등을 골라 지분을 늘린 뒤 경영 개선을 요구해 투자 차익을 얻는 월가의 대표적인 행동주의 투자자다. 1980년대 미 항공사 트랜스월드에어라인(TWA)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까지 시도해 '기업 사냥꾼'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최근엔 맥도날드, 월트디즈니 등의 지분을 공격적으로 매집하기도 했다. 그가 이끌고 있는 아이칸 엔터프라이즈는 에너지, 자동차, 식품 포장 등 다양한 영역의 기업에 분산 투자한 상태다. 힌덴버그는 2020년 수소트럭 제조사 니콜라에 대한 공매도 투자로 급부상한 뒤 최근엔 인도 재벌기업 아다니 그룹을 저격한 바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