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선·자기희생…자유주의가 '잃어버린' 것들 [책마을]

자유주의의 잃어버린 역사

헬레나 로젠블랫 지음
김승진 옮김
니케북스
488쪽│2만6000원
정치 언어 가운데 '자유주의'만큼 논쟁적인 개념이 또 있을까. 한국에서 자유주의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자유당을 시작으로 보수정당의 캐치프레이즈가 된 지 오래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자유'란 단어가 35차례나 나온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해외에서 자유주의의 의미는 그때그때 다르다. 영국에선 19세기 초반 지주·귀족 계급 등 보수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자유당이 결성됐다. 미국에서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옹호하는 신자유주의자부터 진보적 성향의 '리버럴주의자'까지 다양한 정치세력을 설명하는 데 동원된다.자유주의의 개념이 이처럼 모호한 이유는 뭘까. 대한민국 헌법 전문(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에 나올정도로 중요한 개념이지만, 정작 명쾌한 설명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질문에 대해 자유주의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헬레나 로젠블랫 뉴욕 시립대 교수는 "공동체가 지켜야 할 도덕"이라고 답한다. 최근 국내 출간된 <자유주의의 잃어버린 역사>를 통해서다. 로젠블랫 교수는 이 책에서 2000여년 전 로마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유주의가 변화한 과정을 추적한다.

로마 시대에 자유는 공공선, 사회를 위한 헌신 등 공적 규범이었다. 키케로의 <의무론>에 따르면 자유는 '자유롭게 태어난 로마 시민에 걸맞은 고귀한 자세'를 의미했다. 개인의 이익 추구 등 사적 경제활동은 오히려 '노예의 태도'로 격하됐다.저자는 자유 개념이 시대를 거치며 변질됐다고 말한다. 종교와 국가가 야합하고 대립하는 과정, 민중에 의한 혁명과 반동, 근대에 이르러 부상한 사회주의에 이르기까지 자유주의를 둘러싼 역사적 변곡점마다 용어에 대한 논쟁과 혼란이 발생했다고 설명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세기 중반 '미국식 자유주의'가 나왔다. 개인의 권리와 이익, 자유방임주의, 작은 정부론 등을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 얘기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에는 공공선과 의무, 자기희생이라는 자유주의의 핵심 요소가 누락됐다고 평가한다.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독재체제나 독일의 나치즘 등 역사적 사건을 거치며 나타난 결과로 풀이했다. 저자는 국가에 강한 권한을 준 뉴딜 자유주의나 사회적 자유주의가 전체주의로 귀결될 것이란 우려를 낳았고, 그 결과 자유주의가 개인주의적인 영역으로 축소됐다고 말한다.자유주의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공동체성의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포퓰리즘 등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세계 곳곳에서 지지를 받는 것에 대한 분석도 참고할만 하다. 저자는 오늘날 자유주의에 대해 "자유주의의 핵심 가치들을 회복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자유주의 전통의 지적 원천들과 다시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만 저자가 '진정한' 자유주의의 기준으로 삼은 로마의 자유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고대 로마에선 경제력이 있는 일부 남성만 '시민'이었다. 많은 경우 여성이나 노예는 시민이 아니었다. 특권층의 의무였던 '공동체적 도덕'이 전보다 평등해진 현대 사회에서 어떤 중요성을 갖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